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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5 22:23 수정 : 2008.11.06 14:54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새 출입처에서 내가 제일 고참이다. 후배로 분석의 달인 ‘김 박사’와 ‘남기자 K’가 있다. 나는 무늬만 고참이지 실은 인간 메신저다. 뭐든지 김 박사한테 물어본 뒤 김 박사가 “K에게는 이런 걸 시켜 보시죠” 그러면 K에게 “김 박사가 이걸 하란다”라고 말한다. K가 보고를 하면 김 박사에게 그대로 전해 주고 김 박사의 다음 지시를 K에게 전달한다. 왜 복잡하게 나를 거치냐고? 고참이니까!

막내를 ‘남기자 K’라고 부르는 까닭은 삽질하는 게 나랑 비슷해서다. 강남의 한 산에 정부 기관이 철책을 놓아 등산객 불편이 심하다는 제보를 듣고 남기자 K를 보냈다. K는 어떤 지시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 “넵”이라고 답한다. 다음날 K는 새벽부터 산을 탔다. 오전 10시쯤 전화가 왔다. “철책을 못 찾겠습니다.(헥헥)” 어차피 내려와도 시킬 일도 없어 계속 찾아보라고 했다. 빨치산처럼 능선을 탄 끝에 K는 철책을 찾아냈고 주민 반응도 땄다. 피로에 절어 도착한 K에게 기사 쓸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또 “넵”이란다. “사진은 찍었지?” “….” K는 그 산을 다시 탔다. 나는 K가 저러다 산악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출입처에서 기자들을 데리고 문정동 사업현장 견학을 간 적이 있다. K에게 가 보라니까 또 바로 일어섰다. 그리고 30분 뒤 전화가 왔다. “선배, 여기 남산입니다. 제가 버스를 잘못 타서….”

지난주 화요일, 나는 ‘인간 메신저’라는 자괴감 탓에 과음을 하고 말았다. 너무 피곤해 다음날이 목요일인 줄 알았다. 수요일에 몸이 이토록 만신창이일 수는 없었다. 의심 없이 목요일 행사를 데스크에게 쫙 보고했다. 그 가운데 하나, 보도자료를 K에게 주며 당장 달려가 보라고 했다. “넵.” 얼마 뒤 내가 데스크에게 “너는 대체 정신이 있냐, 없냐”라고 깨지고 있을 때 K가 허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보도자료에 ‘목’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모르고 기자회견 장소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고 한다. 혼나 성질난 나는 K에게 “너는 또 가란다고 가냐”라고 면박을 줬다. 하필이면 그날 엄청나게 복잡한 법이 얽혀, 며느리도 모를 기자회견이 열렸다. 머리가 멍해 남기자 K에게 줬더니 바로 자료를 프린트해 공부에 들어갔다. 자료를 보면 볼수록 남기자 K의 낯빛은 똥색으로 변해갔다.

남들이 쉽게 하는 일도 그의 손에만 들어가면 힘들어지는 탓에 항상 눈에 핏발이 서 있는 남기자 K를 보면, ‘쟤 인생은 얼마나 힘들까’ 싶어 마음이 짠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더러운 사람하고 깔끔한 사람하고 살면 둘 다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항상 모자란 게 힘이 세다. 어리바리 기자가 나 포함해 벌써 두 명, 빠릿빠릿 김 박사가 과연 언제까지 견딜 것인가? 김 박사마저 두 번째 남기자 K가 되면 우리 팀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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