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0 19:49
수정 : 2008.11.1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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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가>수석요리사 겸 요리학교 <츠지원>디렉터, 요리사 노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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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2.0]
의대 졸업 뒤 미국 유학하다 유턴
“요리는 마법…매일매일이 감사”
이렇게 살아요 / 의사 접고 요리사 된 노종헌씨
요리사 노종헌(40)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공상의 나래를 편다. ‘그 골목에는 프랑스 레스토랑이 적당하겠어. 요리는 네 가지를 할까? 아니야, 열 가지는 넘어야겠지?’ 자신이 운영할 레스토랑 서너 채를 짓고 허물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장거리 여행 중에 그가 늘 하는 ‘놀이’다. 그에게 요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행복한 삶의 길을 가리켜준 이정표다.
그는 원래 의사가 되기로 약속돼 있었다. 큰 병원의 후계자인데다 명문대 의대생이었던 그가 하얀 가운을 입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에게 의사는 “좋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직업이었지만 부모가 모두 의사인 집안에서 그가 할 일은 애시당초 그것 말고는 없었다.
미리 정해진 대로 그는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을 떠났다. 병원 운영방법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 친구들은 그에게 “자신의 인생을 왜 다른 이를 위해 살려고 하느냐”고 질책했다.
그러던 중 “학비만이라도 한번 벌어보자란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일본 음식점 아르바이트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어준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음식 하나로 손님들을 행복에 빠뜨리는 마술 같은 광경에 쏙 빠져버렸다.
“난생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가 그의 나이 29살. 20대의 삶을 온통 바친 의학을 미련 없이 버리고, 그는 미국 요리학교 시아이에이(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차를 몰았다.
크고 넓은 서양식 주방은 170센티미터의 키와 작은 손을 가진 동양인에게 만만한 일터는 아니었다. 더구나 “동료들은 이미 요리의 기초를 닦은 이들”이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년 동안 단 하루도 6시에 시작하는 수업에 늦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반란은 당연히 부모의 극심한 반대 벽에 부닥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번진 행복한 웃음은 결국 부모의 성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버지를 제 차에 모시고 숙소로 가는데 차 안에서 음식 냄새가 났나 봐요. 아버지는 냄새가 역해 괴로우셨는데, 그때 제 얼굴을 보니 웃음이 가득하더랍니다.”
졸업장을 들고 한국에 돌아온 그는 워커힐호텔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서 택한 일이니만큼 일에 푹 빠져 살았다. 1년 뒤엔 수석조리장으로 승진까지 했다. 지금 그의 명함은 `포도플라자 와인바 뱅가’ 수석요리사 겸 요리학교 `츠지원아카데미’ 디렉터다.
그가 개발한 삼겹살찜은 손님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요리 가운데 하나다. 장조림처럼 만든 이 요리는 삼겹살 특유의 부드러운 지방과 쫄깃한 맛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하루에 열 그릇 이상 팔리니, 하루에 최소한 열 명 이상에게 행복감을 전해주는 셈이다. “접시에 나 있는 숟가락 흔적만 봐도 사람들이 요리를 어떻게 먹었는지 알 수 있어요. 빈 접시가 돌아왔을 땐 정말 기쁩니다. 사람들에게 맛으로 행복감을 선사했다는 뿌듯함이 남아요.”
그는 병든 몸을 고쳐주는 의사 대신 행복감을 맛보게 해주는 요리사가 된 것에 스스로 만족해한다. 최근에는 ‘삼겹살찜’에 ‘리소토’(리조토)를 붙여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삼겹살과 자스민쌀로 만든 리소토가 합쳐져 전혀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움 속에 탱탱한 삶의 기쁨이 숨어 있다.
서른 살 이전에 그는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요리사 길을 선택한 뒤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면서 사는 ‘자신’을 찾았다. 노종헌표 요리에는 남이 주는 화려한 명성이나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만들어냄으로써 삶의 행복을 찾은 이가 빚어내는 당당하고도 겸손한 맛이 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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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헌 요리사의 색다른 레시피 ‘삼겹살찜’과 ‘리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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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헌 요리사의 색다른 레시피 ‘삼겹살찜’과 ‘리소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이 이탈리아 쌀 요리 리소토(risotto)와 만났다. 리소토는 우리네 죽을 닮았지만 맛은 볶음밥처럼 쫀득하다. 두 나라의 먹을거리를 합쳐 색다른 맛을 만들어낸 요리사 노종헌씨의 인기 메뉴 ‘삼겹살찜과 리소토’를 집에서 해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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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찜
재료: 삼겹살 반근, 고추, 파, 마늘 적당량, 간장 육수
① 돼지고기 삼겹살을 가로 세로 15㎝ 크기로 썬다. ②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③ 고추, 파, 마늘을 볶은 뒤 육수와 간장을 넣는다. ④ 구운 삼겹살을 준비한 간장 육수에 넣어 약 4시간 동안 끓여낸다.
● 리소토
재료: 자스민 쌀(혹은 일반 쌀) 반컵, 맛국물 200~250㏄, 셜롯(Shallot)이나 양파 다진 것 1큰술 , 마늘 다진 것 1/2작은술, 버터 1작은술, 파르메산 치즈(Parmesan cheese) 약간, 파슬리 다진 것 약간, 소금 약간, 고추냉이 약간(튜브용)
맛국물 만드는 법: 물에 다시마를 넣고 10분 정도 끓이다가 끓어오를 때 다시마를 뺀다. 물이 끓으면 온도를 낮추고 거기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끓이다 가쓰오부시가 가라앉으면 고운 체에 물을 걸러낸다.
① 두꺼운 팬에 버터를 넣고 버터가 녹을 때쯤 셜롯(양파)을 넣고 3분간 볶는다. ② 마늘을 넣고 향이 날 때까지 2분간 더 볶는다. ③ 쌀을 넣고 마늘이나 셜롯(양파)이 타지 않게 3~5분간 볶는다. ④ 맛국물 중 1/2을 넣고 끓이면서 가끔 젓는다. ⑤ 맛국물이 거의 없어지면 나머지 맛국물 1/2을 넣고 끓인다. ⑥ 약간의 버터 치즈, 파슬리, 고추냉이로 마무리한다. 리소토 위에 삼겹살찜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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