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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내 깊은 잠 도반이여. 일러스트레이션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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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2.0] 베개, 내 깊은 잠 도반이여
‘잠에서 깨어나면 목이 아프거나, 머리가 무겁다. 모로 누우면 낫지만 팔이 저려 잠을 깨기 일쑤다.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발밑 저쪽에 가 있다.’ 베개를 사용하면서 흔히 겪는 일들이다. 하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는 베개로 아무리 바꿔 써 봐도 편한 잠을 이루는 데 신통찮은 경우가 많다. 일생의 3분의 1은 잠이요, 베개는 그 3분의 1을 함께하는 평생 친구다. 밤이 깊어가는 계절, 평생 친구인 베개를 올바로 사귀는 방법을 알아봤다. ■ 높지도 낮지도 않게 잠잘 때 베개는 과연 필요한가? 답은 ‘예스’다.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머리는 인체 무게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두 발로 선 인간의 몸은 그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도록 S자(측면 기준)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 베개는 누워서도 이런 자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자는 것보다 베개를 베어 머리를 약간 높게 해주는 것이 더 편안한 수면자세다. 베개를 벨 때는 바닥과 목 사이의 틈새를 메워줘야 한다. 베개를 베고 목에 수건을 감아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베개의 높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고침단명’이란 말이 있다. 높이 베면 일찍 죽는다는 말이다. 18만년을 살았다는 동방삭은 종이 석 장을 베고 잤다고 한다. 높은 베개는 좋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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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때 베개는 이마와 턱이 5도의 경사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베개의 높이는 한국인의 경우 6~10㎝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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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베개들. 뒤통수의 높이를 낮추고 양옆을 높여 눕는 각도에 따라 편안하게 설계했다. (맨 위) 누에고치를 속에 넣은 베개(가운데)와 메밀을 넣은 친환경 베개(맨 아래)도 인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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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결과, 왕겨·메밀 등을 넣은 친환경 베개는 여전히 괜찮은 선택인 것으로 나왔다.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형태를 스스로 만들 수 있고 머리 압력도 골고루 분산되기 때문이다. 통기성도 손꼽히는 요건이다. 가운데가 속이 비어 있는 파이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베개는 특히 일본에서 인기다. 파이프 베개는 세탁이 편리하다. 숯·메밀을 함께 넣은 친환경 파이프 베개도 있다. 최근 일본 도쿄에 매장을 낸 전통수공예 디자이너 강금성(빈 콜렉션)씨는 베갯속으로 누에고치를 넣은 ‘누에고치 베개’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씨는 “누에고치 베개는 원래 우리 전통 양식”이라며 “안동 고택에서 살던 어린 시절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만들어주던 베개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누에고치 베개 역시 지압 효과가 있고 속이 비어 통기성이 좋다. 매실 등 각종 씨앗 베개는 지압용으로 쓸모가 있다. 최근엔 제주도에서 나는 향기나무인 녹나무를 구슬 모양으로 깎아 속을 채운 녹나무 베개가 각광받고 있다. 지나치게 푹신한 스펀지·목화솜·폴리에스테르솜 베개는 피하는 게 좋다. 높이 조정이 안 되고 자세 유지가 어렵기 때문이다. 수면의 깊이가 얕아지고 머리의 열도 갇힌다. 또 베갯속 화학물질이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메모리폼 베개는 머리를 지탱하는 데는 좋지만 통기성이 떨어질 수 있다. 동물 깃털은 화학섬유보다 진드기 걱정은 적지만 자주 말리고 가끔 물세탁을 해 줘야 한다. 천식·알레르기 환자들은 소재가 부서지면서 먼지가 이는 메밀베개나 향베개를 피하는 게 좋다. 목침같이 딱딱한 베개는 머리·목의 일부분에 압박이 심하다. ■ 수면자세 나쁘면 말짱 황 아무리 좋은 베개라도 자세가 나쁘면 쓸모가 없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바른 자세로 누워 자길 권한다. 잘 땐 되도록 머리를 천장으로 향한다. 발은 어깨넓이로 벌리고, 자연스럽게 양손을 늘어뜨린다. 온몸 근육을 이완하고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라 기체조와 요가의 기본 자세가 된다. 엎드려 자는 것은 장기에 압박이 심하다. 목뼈, 등뼈의 모양도 왜곡시킨다. 옆으로 구부려 자는 ‘태아형’ 자세는 습관적으로 한쪽으로만 자게 돼 척추나 골반이 비틀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팔을 위로 올리고 자는 자세도 근육을 긴장시킬 수 있다. 돌아눕거나 모로 누울 땐 되도록 베개를 더 높이 괴는 버릇을 들이면 어깨 근육의 긴장을 덜어줄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베개들을 써 왔다. 낮잠용 목침, 목에 베는 경침, 안고 자는 죽부인, 향초를 넣은 약침 등이다. 사용 시간, 성별, 나이, 지위 고하에 따라 다양한 베개들이 전해 내려온다. 옛 문헌인 <고려도경>에 소개된 수 베개를 보면, 흰 모시로 베갯잇을 쓰고 베개통을 향초로 채운 뒤 금실로 꽃수를 놓았다. 베개 하나에도 멋과 건강을 함께 담은 셈이다. <동의보감> 내경편에는 베개 속에 수십 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사용했다는 ‘신침법’이 소개된다. 목침을 여름날 낮잠에 사용한 것은 열전도율이 낮아 시원했기 때문이다. 메밀·결명자 베개는 ‘두한족열’ 원리에 따라 머리를 차갑게 식히는 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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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메이드 2007-호텔이다’전에 출품된 데브라 클라크의 베개 작품. 상하좌우에 베개를 넣고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도록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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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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