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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은 지난달 열린 ‘서울패션 위크’에서 교복에 착안한 감각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비욘드 클로젯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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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교복에서 영감받은 프레피 룩의 세계적 유행, 품위있고 편한 아이템으로 스테디셀러
다시 교복을 입고 싶은데 어른이 되었다면 젊은 디자이너 고태용(27)씨의 옷을 탐낼 법하다. 지난달 ‘서울패션 위크’ 기간에 열린 고태용 쇼는 무대를 아예 학교 교실로 바꿔 놓았다. 모델들은 책과 노트를 끼고 걸어 나왔다. 똑 떨어지는 재킷이나 체크무늬 남방같이 교복‘처럼’ 보이는 옷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교복이라 해도 믿을 만한 것들도 있었다. 스트라이프 넥타이에 검은 정장은 바로 교복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직장인들이 우르르 회사 밖으로 밀려나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교복 입은 학생 일동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꽃보다 남자> 환상의 프레피 룩을 기대해
이 쇼의 주제는 ‘프레피 룩’이었다. 고태용 디자이너는 “가볍고 재치있는 클래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디자인의 의도를 전했다. 10대의 교복과 어른이 입는 양복 사이에서 그는 ‘위트있게!’를 강조했다. 색은 옅어지고 바지 폭은 좁아지고, 바지 길이는 복사뼈까지 얄궂게 내려오는 식의 변형을 꾀했다. 그래도 왜 하필 교복과 자신의 두번째 쇼를 연결했을까. 그는 “학교 다닐 때 날마다 입어야 했던 교복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이라며 “고등학교 시절 일기를 썼는데 거기에 담겨 있던 하루하루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옷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에게 교복은 10대 때만 입은 과거의 옷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된 그에겐 현재진행형의 창작력을 자극하는 게 교복이다. 이런 디자인을 패션 용어로는 ‘프레피 룩’ 또는 ‘스쿨 룩’으로 통칭한다.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을 비롯한 미국 동부 출신들이 입는 단순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을 일컫는 용어가 ‘프레피 룩’이다. 여기서 ‘프레피’(preppy)란 미국 동부 명문 사립고교(preparatory school)를 뜻하는 속어다.
고태용 디자이너에 따르면 한국 디자이너들은 아직 ‘프레피 룩’에 적극적이진 않다. 어른이 되어서 교복 같은 옷은 안 입으려는 경향이 있고 천편일률적인 학생의 옷에 불과하다는 약간의 폄하도 있다. 하지만 “교복 같은 느낌이 나서 더 멋이 날 수 있다”는 게 도전적이고 젊은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고 디자이너는 12월 시작될 한국방송(KBS)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꽃미남 4인방의 스타일링을 담당할 계획이다. 김현중·김범 등 세련되면서도 반항기 넘치는 꽃미남 교복 스타일과 ‘프레피 룩’의 절정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프레피 룩은 외국 드라마나 영화 또는 옷 잘 입는 스타들에게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피현정 뷰티스타일리스트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드라마 <가십걸> 속의 ‘프레피 룩’에 눈을 반짝일 수밖에 없다. 뉴욕의 부유층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가십걸>에선 ‘프레피 룩’이 굉장한 감상거리. 그는 “예쁘게 스타일링된 변형 교복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스타일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프레피 룩’의 인기에서 표피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삶의 방식도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읽는다.
주름치마와 체크 프린트 재킷, 폴로 셔츠라는 단어로 더 잘 알려진 피케 셔츠 등이 ‘프레피 룩’ 하면 즉각 떠오르는 옷들. 모두 유행을 타지 않는 오래된 클래식 아이템들로 교복을 구성하는 아이템들과 겹친다. 교복이 10대에 경험하는 ‘학교의 옷’이라면, ‘프레피 룩’은 나이에 상관없이 가능한 선택이다. 젊은 감각의 옷들로 관심을 모으는 하상백 디자이너는 ‘프레피 룩’이 유행과는 상관없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설명한다. “체크무늬나 니트, 카디건 등은 누구나 한번쯤은 입어봤던 옷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며 “패션이나 유행의 속도와 상관없이 클래식한 옷들의 매력은 어떤 이름이 붙든지간에 지속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패션에 눈 밝은 그에게 진짜 교복은 어떻게 보일까. 혹시 컬러티브이를 보다가 흑백티브이 앞에 앉은 듯 심심한 옷은 아닐까.
답은 의외였다. 학창시절 줄이거나 자르는 등 사적인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대신 교과서처럼 ‘반듯하게’ 교복을 입고 그 매무새를 좋아했다는 하 디자이너는 “교복을 비롯해 제복(유니폼)이란 것은 어떤 마음가짐, 태도를 옷을 입는 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 아닐까”라고 말했다. 하 디자이너는 “교복은 학생이라는 신분에 집중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 역할이 크다”며 “예비군 훈련복을 입어도 평소 몸동작과 달라지는 것처럼” 특별한 기능의 옷으로 설명했다.
학생 때는 그렇게 사복이 좋더니 어른 되니 교복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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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가십걸>엔 뉴욕 부유층 고등학생들이 입는 의상이 즐비하다. 멋을 안 부린 듯 절제된 디자인의 교복과 프레피룩.
온스타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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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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