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대륙횡단철도인 캐나다 횡단철도. 재스퍼역을 출발한 기차는 로키산맥을 넘으며 빙하와 호수, 초지 사이를 달린다. 비아레일 제공
|
[매거진 esc] 로키산맥에서 밴쿠버까지 20시간 기차여행
덜컹거리는 바퀴소리는 달콤한 자장가라네
우리는 여행이 목적지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알았다. 버스·기차·비행기 등 교통수단은 여행에 이르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여행 수단 자체가 훌륭한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으레 속도는 희생되지만, 더 좋은 풍광과 한가로움을 얻는다. 장거리 기차여행이 대표적이다.
|
지붕이 창문으로 뚫려 있는 돔카. 낮에는 전망차 구실을 하고, 밤에는 별빛이 반짝인다.
|
비행기로 한 시간, 속도 대신 풍광을 선택하다
캐나다 로키산맥의 관광지 재스퍼. 여기서 세 시간 거리의 에드먼턴 공항에서 밴쿠버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재스퍼에서 밴쿠버까지 기차를 타면 20시간12분이 걸린다. 이 기차는 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토론토에서 출발한 비아레일의 대륙횡단열차 ‘캐나디안’이다. 토론토에서 꼬박 사흘을 달려 재스퍼까지 온다.
캐나디안은 원래 오후 2시5분에 들어와 3시30분에 떠날 예정이었다. 승객들로 역이 북적일 즈음, 재스퍼역의 역무원들은 대합실에 커피와 스낵을 가져왔다.
“죄송합니다. 연착이 됐어요. 좀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장거리 대륙횡단열차는 연착하기 일쑤다. 그건 제3세계의 열차나 캐나다의 열차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기차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비행기 대신 열차를 탔다. 빠름 대신 느림을 선택한 것이다.
|
식당차 내부 모습. 침대칸 이상은 식사가 제공된다.
|
기차에 오르자마자 객실 구경을 했다. 객실은 일반실인 컴포트클래스(comfort class)와 간이침대칸(berth) 그리고 개인공간이 보장된 싱글룸·더블룸 등으로 구분된다. 컴포트클래스는 항공권 가격 이하이지만, 침대칸 이상은 관광열차 성격이 강해 비쌀 때가 많다. 컴포트클래스의 승객들은 몇 겹의 담요와 먹을거리, 게임을 쌓아두고 장거리에 임할 태세고, 싱글룸 승객들은 수건을 들고 샤워실에 들어가며 여유를 부린다.
기차는 재스퍼역을 출발하자마자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통과한다. 지붕이 창문으로 뚫려 있는 ‘돔카’로 달려갔다. 승객들은 하늘 천장 아래서 책을 보다가 창문을 바라보다가 잠에 빠져든다. 그사이 기차는 시속 50㎞로 로키를 기어오른다. 해발 2470미터의 휘슬러산을 휘감은 뒤, 마이에트강을 거슬러올라 옐로헤드 고개에 이른다. 해발 1131미터, 북아메리카 대륙을 좌우로 가르는 대륙분수령(Continental divide) 가운데 가장 낮은 지점이다. 인디언 부족과 모피무역상들이 수 세기 동안 오르내렸던 앨버타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잇는 고개. 여기서 손목시계의 시침을 한 시간 늦췄다. 해가 빙하 위로 떨어질 때까지, 기차는 옐로헤드 호수와 무스 호수 그리고 롭슨 마운틴과 알브레다 빙하를 차례로 휘감았다.
|
밥을 먹고 있는데, 화물차가 다가왔다. 레이크루이즈 스테이션 앤 레스토랑.
|
차장의 아침식사 안내 방송에 늦잠에서 깼다. 침대칸 이상 승객에게는 식사가 서비스된다. 식당차로 달려가 스크램블과 뜨거운 커피를 시키고 창밖을 바라봤다. 네모난 창문은 스크린이 되고, 스크린에는 풍경이 상영된다. 지난밤 스크린은 암전이었다가 해가 떠오르며 발랄해졌다. 이제 기차는 로키의 준봉을 내려와 밴쿠버를 앞에 두고 화려한 메트로폴리스에 진입하고 있다.
|
재스퍼역에 정차한 화물열차들. 뒤로는 로키의 연봉들이 펼쳐진다.
|
해가 뜨면 기차 창은 아름다운 풍경 화면으로 변신
컴포트클래스는 연중 붐비지 않는다. 젊은이라면 하룻밤 기차여행이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덜컹거리는 울림의 낭만을 기대하는 이는 침대칸 이상이 좋다. 기차를 여행의 목적으로 삼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여 늦게 밴쿠버역에 도착했다. 비행기보다 스무 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비행기로 날아왔으면 못 봤을 풍경을 기억에 담았다.
재스퍼·밴쿠버(캐나다)=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
|
앵커리지역에 정차한 글레이셔 디스커버리.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알래스카의 어촌마을 위티어를 잇는 유일한 육상교통수단이었다.
|
열차 타고 빙하를 건너볼까
북극곰과 고래 등 극지의 자연까지 즐길 수 있는 캐나다의 종단열차들
캐나디안이 아메리카대륙을 횡단한다면, 허드슨베이는 종단한다. 캐나다의 중부 프레리의 대도시 위니펙에서 허드슨만의 처칠까지 1700㎞의 종단선을 긋는다.
허드슨베이는 ‘북극곰 열차’로 유명하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북극곰 1200마리가 종착역인 처칠 마을 근처를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여름 또한 순백색 고래인 ‘벨루가’를 보러 가는 사람으로 열차는 붐빈다. 열차는 툰드라의 푸석푸석한 땅을 달린다. 군데군데 퍼진 호수와 땅 밑의 영구동토층 때문에 속도는 시속 50㎞ 안팎으로 떨어진다. 위니펙에서 처칠까지는 2박3일. 처칠과 연결되는 도로가 없기 때문에 허드슨베이 열차의 희소성은 더해진다. 그러므로 북극곰 철에는 예약이 필수다. 게다가 11월 말이면 북극곰은 하나둘씩 머나먼 북극 바다로 사냥길을 떠나니 서두르길. 티켓은 비아레일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일반실 164달러.
캐나디안이나 허드슨베이는 순수 관광열차가 아니다. 지역 주민의 이동수단에 관광객이 동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적이다. 미국 알래스카의 글레이셔 디스커버리도 그러하다. 이 열차는 알래스카의 중심 도시인 앵커리지에서 인구 300명의 마을 위티어를 연결한다. 위티어 역시 2000년 이전만 해도 도로가 없어서 유일한 육상교통수단은 열차였다.
글레이셔 디스커버리는 이름 그대로 빙하를 ‘발견’하면서 간다. 앵커리지를 떠난 뒤 터너게인만으로 바짝 붙어가는 열차 좌우로 트웬티마일 빙하와 스펜서 빙하가 차례로 나타난다. 운이 좋으면 바다에서 물을 내뿜는 고래와 추가치산맥을 기어오르는 산양과 독수리를 볼 수 있다. 평소 ‘승객’이 적은 관계로 관광객이 많은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만 운행한다. 편도 65달러. 2시간20분 걸리는 짧은 코스다. alaskarailroad.com
글·사진 남종영 기자
|
재스퍼역의 트레인스 앤 라테스. 캐나다의 기차 마니아들에게 유명한 카페다.
|
캐나다 횡단 철도 위의 아름다운 노천 카페들
무인역 카페에서 낭만 한잔
세상에 기차 카페는 많다. 하지만 거개는 객차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키치적 카페다. 기차역 카페도 많다. 물론 거대한 민자역사 쇼핑몰에 입주한 커피전문점이다.
◎ 정말로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기차역 노천카페가 캐나다 횡단철도상에 있다. 로키산맥 레이크루이즈의 ‘레이크루이즈 스테이션 앤 레스토랑’(Lake Louise Station & Restaurant). 기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은 없지만 저녁 정찬을 즐기러 오는 사람은 많은, 이색적인 무인역 레스토랑이다. 1910년 건축된, 백년 가까이 된 기차역을 1994년 레스토랑으로 개조했다. 손님들은 역사 대합실과 철길을 따라 선 ‘키치형 기차 카페’에서 밥을 먹거나 역 뒤로 흐르는 보강(Bow River)을 산책한다. 스테이션 버거, 안심·연어스테이크에서 팟타이까지 15~35달러에 팔린다.
팟타이를 후루룩거리는데 기적이 울렸다. 순간 레스토랑 앞뜰로 기차가 흘러들어왔다. 밥 먹던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플랫폼에 나갔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밴쿠버에서 출발한 화물열차였다. 열차는 디저트를 다 비울 때까지 서 있었다. 레스토랑 앞의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빨간색으로 바뀌고서야, 기차는 그르릉 소리 내며 무인역 레스토랑을 떠났다. lakelouisestation.com, (403)522-2600.
◎ 유인역 재스퍼역에도 멋진 카페가 있다. ‘트레인스 앤 라테스’(Trains & Lattes). 재스퍼역 한쪽 귀퉁이에 붙은 조그마한 매점이지만 역사 밖 플랫폼을 노천카페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크다. 노천카페의 전망은 좋다. 재스퍼를 감싸는 로키의 연봉들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뻗은 철길이 인상적이다. 플랫폼에서 라테를 홀짝이다 보면, 바로 옆으로 열차가 스칠 듯 지나간다. 에스프레소와 드립커피 외에도 기차 프라모델과 관련 책, 셔츠 등을 판다. (780)852-7444.
글·사진 남종영 기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