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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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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에르퀼 푸아로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나온 푸딩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먹으면 해롭다는 경고를 들었기 때문. 마르셀은 레모니 고모가 준 마들렌을 보고 과거를 떠올린다. 둘이 책 속에서 손으로 턱을 괴거나 말거나, 소보로빵과 초코빵과 카스텔라라는 단것 목록만 가지고 있던 나는 도대체 푸딩이 어떤 맛인지, 마들렌은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난해한 맛은 계속되었다. 쇼트케이크는 뭐지? 타르트는 뭐야? 머랭 과자는? ‘쇼콜라 피낭시에’라는 단어에 이르자 급기야 계란과자라도 사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어린 마음에 책 속에 나오는 제인이나 이자벨이 부러웠던 건, 내겐 오후 3시쯤 머핀을 좀 구웠다며 문을 두드리는 옆집 할머니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랬던 내가, 요즘은 제인이나 이자벨 못지않게 단것들 속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최근 한 달간 먹은 단것들을 모아보면 평생 섭취해야 할 포도당을 다 얻고도 남음직하다. 무화과를 얹은 팬케이크, 녹차 시폰케이크과 청포도 타르트, 피칸 파이, 브라우니, 카망베르 치즈 케이크, 다크 초콜릿 월넛 케이크 도넛 등등. 2006년을 기준으로 나의 와플 소비량을 보면 치솟은 환율만큼이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아니, 사실 2006년 이전에는 와플을 먹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와플이라는 것은 천안 호두과자처럼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까운, 친절한 디저트가 아니었다. 케이크 전문점, 타르트 전문점, 디저트 전문 카페 등 전문화되는 디저트 가게를 보면 한국에 이렇게나 많은 파티셰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사거리마다 도넛 가게가 있는 도시에서 우리는 모두 뚱뚱해진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와플에 밥값보다 더 많은 돈을 내게 된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단것이라곤 가끔 먹는 누군가의 생일케이크뿐이었는데 말이다. 여자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밥 먹고 2차로 디저트를 먹으러 가지 않으면 입안이 영 ‘쓰고 텁텁한’ 시대가 돼버렸다. 카페에서 수다 떠는 문화, 설탕 하나 안 들어간 쓴 커피의 유행, 카페에서 먹은 예쁜 마카롱과 에스프레소 잔을 올리는 블로거 세대가 ‘단것의 유행’을 이끌었다. 식사 뒤에 단것을 먹는 습관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서울 거리를 지배하는 버터, 우유, 달걀, 설탕 냄새는 우리에게 ‘달콤한 트렌드’ 안으로 어서 들어오라고 유혹한다. 와플 하나가 만원에 가까우니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지만,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까 싶어 침이 고인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카페의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들 열 중 아홉은 꼭 그렇게 팬케이크나 와플을 먹어대던데, 도대체 몸매는 어떻게 유지하는 거지? 이 트렌드가 지속된다는 건 뚱뚱한 싱글 여자들이 늘어난다는 것 아닌가?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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