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7 18:31
수정 : 2008.11.17 19:02
날이 추워지면서 감기 환자가 늘고 있다. 그런데 이 감기를 술로 이기자는 사람들도 있다. 감기 때문에 술자리를 가려 하지 않거나 참석해서 몸을 사리면 ‘감기쯤이야 소주에 고춧가루 타 마시고 이불 뒤집어쓰고 한잠 자면 낫는데 뭘 그래!’ 하며 마구 술을 권한다. 그게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일까?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고추는 맵고 뜨거워서 채소를 먹는 시골 사람의 위장에 좋다’고 했다. 일본 문헌을 봐도 ‘차가운 성질의 수박을 많이 먹어 생긴 복통이나 설사에 고추를 끓여 먹어 해독하는 방법을 조선의 통신사에게서 배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고추는 맵고 뜨거운 성질의 음식이어서 속이 차가운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이며 속에 열이 있는 사람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 ‘고추를 많이 먹으면 불기운이 동하여 종창이 생기고 낙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불기운이 동한다는 것은 곧 물기운은 부족하고 불기운은 많은 소양인의 병리이므로 소양인이 고추를 많이 먹었을 때의 부작용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추는 대개 소음인과 태음인의 음식으로 분류된다.
이제마의 유고에서는 ‘태음인은 감국, 뽕나무, 창포로 소주를 빚어 마시면 좋다’고 해 소주가 태음인에게 맞는 술임을 밝히고 있다. 소주는 탁주나 청주, 약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취기가 빨리 오르고 심장과 폐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므로 조금씩 먹으면 태음인의 약한 폐 기운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감기 초기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질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시면 폐 기운이 최대한 가동돼 오한이 없어지며 감기 기운이 풀릴 수도 있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시고 땀을 내는 것은 태음인의 멋진 감기퇴치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다’는 부분이 중요하다.
태음인은 땀이 많이 나야 건강한 체질인데 감기가 들면 땀구멍이 막히며 한기가 들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미뤄볼 때 꼭 소주가 아니라 양주나 고량주와 같은 독주라도 효과가 있을 것이며, 고추가 아니라도 매운 음식, 예를 들어 얼큰한 매운탕이나 육개장 국물이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술을 쓰는 방법은 감기 초기에만 잠시 쓸 수 있는 방법임에 유의해야 한다. 한기가 조금씩 드는 단계를 지나 열이 마구 오르는 때에 술을 마시면 오히려 염증 반응이 심해질 것이다. 또 감기가 끝날 무렵 기운이 바닥나서 지쳐 있을 때에 술을 먹으면 없는 기운을 더욱 탕진해 도로 감기가 심해질 수 있다.
다만 태음인은 감기에 걸렸을 때 아무 때나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어도 감기가 낫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김종열/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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