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면의학 선구자 변영돈(52·변영돈신경정신과)원장.
|
최면의학 선구자 변영돈 원장
정신과 수련의 때 최면에 관심
원인 모를 육체·정신 질환 도움
금연·비만 인터넷치료법 개발
변영돈(52·변영돈신경정신과 원장)씨는 우리나라 최면의학의 선구자다. 1987년 한국최면치료학회 설립을 주도했고, 90년 최면의학 미국 전문의 자격을 땄다. 96년에는 세계 최초로 자동응답전화를 통한 최면치료가 대인공포나 불안, 불면에 효과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국제최면학회에 발표하기도 했다. 2000년엔 인터넷최면(www.choimyun.co.kr)을 개발했고, 2년 뒤 이를 통한 금연과 비만 치료법을 만들었다.변 원장은 최면 치료를 통해 마음이 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종합병원 정신과 과장으로 일할 때 만난 임산부가 그랬다. 그 여성은 아이를 낳은 뒤 갑자기 앞을 보지 못했다.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 여성은 친척의 소개로 그 병원에 특진을 신청했는데 우연히 레지던트가 자신의 출산을 도왔음을 알았어요. 병원 의사나 레지던트 모두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변 원장은 최면 상태에서 그 여성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최면 상태에서는 깨어 있을 때보다 설득이 쉽다고 한다. 꼴 보기 싫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육체를 통해 보지 않을 필요까지 있느냐, 눈으로 보면서 마음으로 외면하면 된다는 쪽으로 암시를 줬다. 그 여성은 사흘쯤 지나 다시 시력을 되찾아 퇴원했다.
기억상실증으로 병원을 찾은 18살의 여성도 최면 치료로 기억을 되찾았다. 그 여성은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 뒤부터 모든 기억을 잃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거기 있었는지도 몰랐다. 머리에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최면을 통해 알아보니 그는 그날 버스 안에서 한 군인 장교와 서로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육사를 나온 전도양양한 남성에 비해 고졸이 학력의 전부인 자신의 신분 차이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 여성은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 여성도 최면 치료를 통해 기억을 되찾았다.
최면 치료는 이처럼 현대 의학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적 현상뿐 아니라 불안, 불면증, 우울증, 공포장애, 강박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된다. 틱이나 투렛증후군의 경우도 스트레스나 긴장 상태가 지속되어 나타난 증상이므로 성인의 경우 최면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연령 퇴행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변 원장은 귀신이 들러붙었다고 말하는 빙의 현상에도 최면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절이나 교회에서 귀신을 쫓지 못한 환자를 최면을 통해 고친 경우도 있다. 그는 빙의를 일종의 해리장애로 본다. 귀신이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은 무의식이 귀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빙의가 된 사람들은 외롭거나, 분노가 가득하거나, 처절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며 “무의식이 필요로 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물론 최면이 정신질환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더구나 두 명에 한 명 정도는 최면 자체가 되지 않는다. 최면감수성이 낮은 사람들이다. 최면 치료 병원을 찾는 사람은 이미 최면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에 80% 이상이 최면에 걸린다. 변 원장은 “1년에 한두 명 정도 최면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변 원장이 최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시절 정신질환자의 치료에 어려움을 겪으면서였다. 많은 환자들이 입원 뒤 약물치료를 받아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니니까 말도 안 통했다.” 치료 기간은 3~5년씩 걸렸지만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최면을 걸면 말이라도 잘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배울 만한 곳이 없었다. 레지던트를 마친 뒤 1주일 동안 미국에서 열린 최면의학 워크숍을 다녀왔는데 최면을 하는 신기한 의사라고 방송을 탄 뒤 환자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10명 가운데 2명 정도만 증세가 나아졌다.” 최면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89년부터 1년 동안 하버드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최면의학을 공부하고 전문의 자격을 땄다. 그는 지금 서울대를 비롯해 여러 의과대학에서 최면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최면의학이 다른 방법으로 고칠 수 없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들은 이를 통해 치유되고, 의료인들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무기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 |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