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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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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언제나 문제는 핏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앨범을 보고 있노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2차 성징이 일찍 끝나 겨드랑이가 거뭇거뭇한 녀석들이나 입을 법한 옷에 푹 묻혀 있는 내 모습 때문이다. 엄마가 사온 옷들은 죄다 컸다. “앞으로 자랄 걸 생각하고 입어야지.” 엄마의 고집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계속됐다. 성장이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멈췄는데도 말이다. 대학 시절 앨범을 보면 좀 나으냐? 그건 또 아니다. 90년대 초·중반 유행했던 옷들은 죄다 오버-사이즈였다. 남자건 여자건 당시에는 랄프로렌 폴로 로고가 찍힌 축 늘어지는 스웨터를 제 몸보다 두 사이즈는 크게 입는 게 유행이었다. 다들 벨트 없이는 흘러내릴 청바지와 카고팬츠를 입고 도서관 바닥을 질질 끌고 다녔다. 대학 앨범 사진들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시절이 지나가 버렸다는 게 기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옷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핏이다. 혹시 이거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클 텐데, 그렇게 꽉 끼는 옷을 사면 어떡하냐”고 주장해오신 엄마의 ‘아들내미 패션 오지랖’에 대한 반발심인가? 하지만 30대 직장인들의 패션을 보고 있노라면 그건 또 아닌 듯하다. 어깨선이 추욱 늘어지고 바지 허리춤이 접히는 수트를 입은 직장인들을 보라. 그들은 어린시절 어머님들의 조언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 남자들은 이탈리아 남자들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마마보이들 아닌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핏에 민감하지 않은 한국 남자들의 패션을 모조리 마마보이 근성 탓으로 돌리기도 힘들다. 문제는 한국의 옷가게들에서는 에스(S) 사이즈를 찾는 게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 찾는 것만큼 어렵다는 거다. 대부분의 한국 브랜드들은 ‘남자 중의 남자, 조선 남아들은 에스 따위 입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나 싶을 정도다. 수입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남자 옷의 사이즈는 언제나 엠(M)부터 시작된다. 미니멀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종종 쇼핑을 하는 일본 중가 브랜드 매장에서 나는 분통이 터지곤 한다. 대체 일본에는 있는 에스 사이즈가 왜 한국에는 없는 것일까. 한국 남자들이 일본 남자들보다 체격이 좋아서 그렇다고? 요즘은 체격도 세계화됐다. 그 남자들도 더 이상 왜놈은 아니다. 옷을 고르는 것과 결혼 상대를 고르는 것에는 따지고 보면 똑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내 몸에 맞는 게 평생 간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독신 남자들에게는 브랜드가 좋거나(=가세가 굳건하거나) 색상과 디자인이 흡족한(=면상이 반반하다는) 결혼 상대를 구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에서도 핏이 중요한 시대는 아직도 오지 않은 걸까, 혹은 남자들도 쫄쫄이 나팔바지를 딱 맞춰 입던 70년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렸거나. 김도훈 〈씨네21〉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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