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4 19:46
수정 : 2008.11.24 19:46
오랜만에 집안 정리를 하다가, 장식장 한구석에 묵혀 있던 사진첩을 꺼내보게 되었다. 디카와 미니홈페이지의 등장으로 이제는 참 낯설어진 물건과의 갑작스러운 대면이 마치 길에서 오랜 시간 연락되지 않았던 친구를 만났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은 카메라가 일상생활 소지품이 되었지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카메라는 특별한 행사나 여행지에서 추억을 담을 때만 이용되던 그다지 일상적인 용품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내 사진첩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진도 대학교 졸업식, 친구가 외국 갔다 돌아온 날 공항에서 찍은 기념사진, 가족들과 여행지에서 찍은 특별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사진이 그다지 익숙지 않았던 탓인지 대부분 사진 속의 사람들은 사진기를 뚫어지게 주시하는 경직된 모습이었다.
사진첩에는 미처 버리지 못한 추억의 잔재들도 남아 잠깐 아련함을 느끼게도 했다. 눈을 감은 사진, 서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연출하고 있는 사진, 흔들린 사진, 촌스런 사진 등 …. 이상하게도 잘 나온 사진보다는 그런 사진들이 훨씬 많았다.
미니홈페이지라는 공간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개입되면서 사이버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사진에 대한 우리의 시선도 점차 변해간 것 같다. 극히 소수의 지인들끼리만 공유하던 그 추억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버상의 사람들과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남이 본다고 여기는 까닭인지 항상 홈페이지에는 잘 나온 사진만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또 사진을 찍고 바로 볼 수 있는, 디카라는 물건의 특성과 맞물려 못 나온 사진은 바로바로 삭제하게 되었다.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찰나의 추억을 담은 그 종이 한 장을 단지 못 나왔다는 이유로 찢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내 사진첩을 보며 참 많은 묘한 감정이 생겼다. 디카로 찍었다면 바로 사장되었을 이 사진들이 이토록 오래도록 내 추억의 한 페이지에 머물러 웃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하며 하루, 이틀을 기다렸던 그때의 설렘도 되살아나 그 느낌이 그리워졌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아름답게 재생시키는 도구다’라는 말. 그 사진첩 속에서 내 추억들은 이토록 오래도록 재생되고 있었나 보다. 그 찰나의 순간에서 난 그 시간에 했던 생각들, 상황들, 친구들의 행동들을 다 반추해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들여다보며 내 추억에 웃음 지을 수 있는 날들을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감히 이렇게 외쳐본다. 세상은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기에 아름다운 거라고.
원은숙/마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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