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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스홈쇼핑 남성 사원들이 모여 뜨개질을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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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이를 위해 내 어머니 아내를 위해
마음 담으니 명상이 절로…그들의 ‘사랑질’
뜨개질하는 ‘훈훈한 남자’들이 늘고 있다. 방학 숙제나 가사 실습용으로 엄마 손을 잡고 뜨개방에서 실을 사는 남자 초등학생부터, 지하철에서 짬짬이 실을 꿰고 있는 남자 어른들까지 …. 예부터 뜨개질은 여성들의 전유물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7~18세기 영국에선 뜨개질이 대단히 큰 규모의 가족산업이었다. 북유럽에선 거친 어부들과 그 아내들이 그물을 짜던 솜씨로 스웨터를 짰다. ‘니팅의 귀공자’로 불리는 일본의 편물 디자이너 히로세 미쓰하루 또한 남자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그가 세운 학원은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더 많은 남성들이 뜨개질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뜨개질 삼매’에 든 남자들을 만나보았다.
뜨개질하는 ‘훈남들’이 회사에 무더기로 있다고 해서 지에스홈쇼핑을 찾았다. 이 회사는 국제아동권리기관 ‘세이브 더 칠드런’(sc.or.kr)과 함께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교차가 심한 아프리카로 저체온증을 막는 털모자를 보내 어린 천사들을 살리려는 것이다. 이 뜨개키트는 1개 1만원. 최근 3주간 자사 판매율 1위를 기록해 불황기의 ‘미담’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모자 뜨기에 적극적인 이들이 바로 이 회사의 남성 사원들. 올해만 모두 1500여개의 모자 키트를 사원들이 신청했고, 그중 상당수가 남성 사원들의 손으로 돌아갔다. 이승제 기업문화팀 대리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절반 가량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사내에서 가장 많은 41개의 모자 뜨기를 기록한 사람도 남성이었다. 매월 1만원씩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는 서비스차별화 티에프팀의 김낙호(27)씨는 “통장 자동이체로 후원을 할 땐 남을 돕는 게 실감나지 않았는데, 뜨개질을 하니 내 마음까지 함께 담기는 듯하다”고 했다. 그의 손놀림은 이제 제법 전문가 티가 난다. “여직원들에게 배웠는데, 겉뜨기와 안뜨기 두 가지만 익히면 돼요. 하나 뜨는 데 보름쯤 걸렸고요.” 이시사업기획팀의 이응철(26)씨는 “여자친구가 자기 것도 하나 떠 달라더라”며 “하다 보니 재미를 느끼고, 마음도 따뜻해져 작지만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고 했다. (모자뜨기 동영상 moja.s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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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줄 거예요.” 왕초보 김도현씨.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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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옷도, 제 옷도 제가 떠요.” 대학생 이세진씨. 이세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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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엔 명상 기능이 있다. 한 코라도 빠뜨리면 안 되니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머리가 맑아지니 손놀림에 재미가 있다. 김주(34·뜨쥬)씨는 뜨개질 경력 10년의 패브릭 아티스트다. 원래는 기계설계를 전공했다. “책방에서 우연히 니트책을 보고 지인에게 스웨터를 짜주다가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재밌어서요.” 지금은 서울 홍익대 근처에 가게를 내 각종 바느질 제품들과 니트 가방, 옷, 패션소품들을 만들어 팔고 수강생들도 가르친다. 실로 짠 5천원짜리 동백꽃 코사주는 팔아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에 기부한다. 학원에서 정통 프랑스 방식 뜨개질을 배웠다는 그는 지난달 니트 전시회를 열었다. 홍대 앞의 다채로운 문화는 활동의 자양분이 됐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사내가 무슨 계집애처럼 뜨개질이냐’고들 했는데, 이곳에선 누가 뭘 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가장 아끼는 작품은 돌아가신 어머니께 떠 드린 카디건. 지금은 이종사촌이 입고 있다. “니트는 입는 사람의 체형과 체온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옷이에요. 그래서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더 재밌죠.”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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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열 때 재밌는 포즈 한번해봤죠.” 김주씨. 김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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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어떻게?
‘장비’ 구하고 인터넷 뒤지면 오케이 뜨개질을 하려면 실·바늘·패턴이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각종 뜨개질 용품과 부자재를 팔고 있으며 큰 시장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인기가 있는 곳은 서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종합시장. 싸고 품질이 좋아 지방에서 올라오는 이들도 많다. 뜨개질 방법은 시장 상인들에게 간단한 방법을 배우거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배우면 된다. 인터넷에서는 뜨개질 방법을 알려주는 시디까지 패키지로 파는 곳이 많다. 겨울철 수요가 급증하는 털실은 보통 80~100%의 모제품들이 많다. 아토피나 피부가 예민한 사람에게는 피부가 가렵지 않은 천연모 제품을 권한다. 중금속 없는 천연염색을 한 유기농 털실도 나온다. 하지만 요즘 환율이 크게 오르는 바람에 수입 실 가격이 폭등해 업체들의 근심이 많다. 패턴책은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다. 완성품 하나를 뜰 때 들어가는 비용은 천양지차다. 목도리나 모자 같은 작은 소품의 경우 실값을 2만~3만원대부터 잡는 것이 좋다. 빨리 뜨려면 굵은 실을 이용하거나 손가락 뜨개질을 이용하면 된다. 실도 굵을 뿐만 아니라 올이 성기게 엮어져 부피감을 주는 데 편하다. 이유진 기자 참고사이트: 김정란의 손뜨개디자인연구소(jrkim.co.kr), 니트스쿨(knit-school.co.kr), 송영예의 바늘이야기(banul.co.kr), 니트캐슬(knitcast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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