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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26 19:53 수정 : 2008.11.26 19:53

저 다정한 글자가 뜨거운 초콜릿 원액을 부른다. 충남대 앞 ‘더 초콜릿’. 사진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한국에는 김·이·박 씨가 넘친다. 올림픽 금메달을 몇 개 가문이 독식하는 줄 안다. 커피 공화국에서는 ‘모카’씨가 그런 존재다. 모카(Mocha)는 초창기 커피 무역을 독점한 예멘의 항구인데, 이로 인해 ‘모카 포트’에서처럼 ‘커피’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커피라는 말이 좀더 일반화되면서는 ‘모카 마타리’처럼 예멘 특산의 품종을 일컫는 말로 제한된다. 그러나 커피 블렌딩이 번성하면서 각국의 원두를 모카 항구에 들여와 섞은 뒤에 모카라는 이름을 찍어댔고, 이제는 길거리에서 파는 짝퉁 인스턴트 커피 ‘모카 어쩌고’처럼 발에 차이는 이름이 되었다.

‘모카’를 성으로 쓰는 가문에서 가장 별종인 친구는 ‘카페 모카’의 식구들이다. 여기에서 ‘모카’는 초콜릿을 말한다. 모카 항구가 커피뿐만 아니라 초콜릿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모카 종의 커피 원두에 초콜릿 향이 강해서라고도 한다. 어쨌든 모카는 커피와 초콜릿 양쪽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여러 식물 종들이 대서양 양쪽 해안을 오고 갔다. 커피와 초콜릿은 그 목록에서도 대표적인 맞상대다. 신대륙의 대표인 오리노코강의 카카오나무는 아프리카로 이사 갔고, 구대륙 에티오피아 원산의 커피 묘목은 카리브해에서 더욱 번성했다. 이 둘은 검은 색채, 놀라운 향취, 마법에 비유되는 효과로 인해 악마의 열매로 금기시되는 공통의 운명을 겪기도 했다.

이제 초콜릿은 원액으로, 가루로, 시럽으로 커피를 장식하고 카페를 빛내는 존재가 되었다. 내가 음료로서 초콜릿을 만난 가장 강렬한 체험은 마드리드에서였다. 유럽을 대표하는 이 나이트라이프의 도시에서는 밤새 클럽에서 논 뒤 새벽녘 해장용으로 뜨겁고 진한 초콜릿 음료를 마신다. 생각만으로는 속이 니글거렸지만, 막상 위장 안에 쏟아부으니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맞은 것과 같은 섬광이 일어났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가끔 카페의 초콜릿 음료들을 만나곤 했지만, 대학 시절 배를 채우던 가루 코코아 음료의 변형이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충남대학교 앞의 골목을 걸어가다 너무나 정겨운 노란색의 ‘The Chocolate’이라는 글자를 만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만났던 100% 초콜릿은 아니었지만, 우유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뜨거운 초콜릿은 다정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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