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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3 17:31 수정 : 2008.12.03 17:31

나지언의 싱글라이프

[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뜻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언어로 진열된 면세점 화장품 진열대 앞에서 다시 발신번호를 누른다.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게 파란색 불투명 유리병인 거지?” 친구는 용기 디자인과 제품 사이즈, 그리고 ‘익스텐션’이었던가 ‘어드밴스’였던가 하여간에 ‘매장 직원에게 설명해야 할 단어들을 잔뜩 가르쳐주지만, ‘뷰티 초보’인 나는 ‘그 제품’이 뭔지 못 찾겠다. 졸려 죽겠는데 클린징하기가 귀찮아 화장은 ‘초간단’으로 하고 뷰티 제품을 용기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보고 사는 무식한 나에게 대학 시절부터 화장을 잘했던 친구는 외국 뷰티 브랜드에서 스카우트 제의라도 올 것 같은 프로로 보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다. 아무리 (코밑 잔털까지 제거하는) 여자라도, 다음과 같은 제품이 무슨 뜻인지 알겠냔 말이다.

랑콤의 블랑 엑스퍼트 뉴로화이트 X3 안티 다크써클 아이 트리트먼트, 크리니크의 듀얼 앤디드 풀 포텐셜 립스, 맥의 셀렉트쉬어 프레스드 파우더, 바비 브라운의 에브리 씽/래쉬 글래머 마스카라 듀오, 뜨레스엠므의 뜨레스 젤 클린 홀드, 코스메 데코르테의 화이트로지스트 데이 어드밴스드…. 화장 전과 화장 후라는 이중생활을 해야 하는 여자의 비밀을 남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암호라도 되는 걸까? 로레알 창시자인 프랑스 화학자 유젠 슈엘레르는 ‘화장품은 과학이다’ 라고 말했지만 21세기에 와서 그 말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화장품은 영어다’. <성문 종합 영어>를 뗐다고 해도 해독하기 힘든 아주 어려운 영어.

‘콜드 크림’이란 단어 하나로 만사가 해결되는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아침에 바르는 것, 저녁에 바르는 것, 더울 때 바르는 것, 추울 때 바르는 것, 파우더를 쓰기 전 바르는 것, 파우더를 쓴 후 바르는 것 등 잡지에서 하라는 뷰티 메뉴얼을 읽고 있노라면, ‘여자라서 행복해요’가 아니라 ‘여자라서 피곤해요’다. 여자 연예인들은 항상 ‘잠을 많이 자서 피부가 좋다’고 말하던데 도대체 뷰티 브랜드들은 우리에게 잠을 재울 셈일까 궁금해진다. 잠을 자기 전 발라야 하는 뷰티 제품 목록이 역대 대통령이 저지른 과오보다 더 기니까 말이다. 뷰티 브랜드들은 ‘이것만 쓰면 얼굴이 심은하처럼 된다’는 특별한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서, 지난해보다 더 어렵고 긴 이름을 단 제품들을 출시하는 것이리라. ‘뷰티 아마추어’의 관문을 통과하려면 제품 이름부터 정신 차리고 외워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경쟁이라도 붙었는지 조드퍼 팬츠, 시가렛 팬츠, 메카닉 팬츠 등 뭔 소린지 모를 바지를 자꾸 고안해 내고, 체크무늬 셔츠 하나 사려 해도 플레이드 체크, 타탄체크, 하운즈 투스 체크 등 생소한 단어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찾아내야 한다. 모두 똑같은 옷에 똑같은 화장품을 쓰던 시대로부터 분명 진화한 건 맞을 텐데, 왜 이리 피곤하단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나지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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