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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사파리에 있는 라이거, 크리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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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난 막내 라이거 크리스
크리스(사진)는 2002년 태어난 일곱 살 된 라이거입니다. 크리스 역시 사룡이와 명랑이가 낳았죠. 라피도의 여동생입니다. 크리스는 마지막 라이거입니다. 2002년 크리스가 태어난 뒤, 한국에서 라이거는 더 태어나지 않았어요. 사랑을 키웠던 사룡이와 명랑이가 죽은 탓입니다. 크리스는 겁 많은 라피도와 달리 호기심이 많고 적극적이라고 사육사 아저씨들은 귀띔합니다. 맹수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오빠 라피도를 툭툭 건드리며, 같이 놀자고 조르곤 하지요. 사자·호랑이와도 친하답니다. 한때 크리스는 사자·호랑이가 합사된 넓은 사파리 구역에 나가 함께 뛰논 적도 있었어요.(일반적으로 라이거는 사자·호랑이 집단과 습성이 다르기 때문에 사파리에서 따로 구획돼 전시됩니다.) 어렸을 적 함께 자란 사자와 호랑이들은 반갑게 크리스를 맞아주었지요. 사육사 아저씨가 웃으면서 말하길, “나쁜 말로 박쥐라고 할까요?” 크리스는 ‘착한 박쥐’처럼 놀았습니다. 오전에는 사자와 뒹굴다가 오후에는 호랑이와 함께 지프차 지붕에 올라타고 드라이브를 했죠. 다른 라이거도 마찬가지지만, 크리스는 사자와 호랑이의 특성을 모두 갖췄지요. 사자는 물을 보면 기겁하지만, 호랑이는 한여름 물장구를 치기 좋아해요. 크리스는 호랑이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곤 했어요. 크리스는 호랑이·사자와 한 번도 안 싸웠어요. 하지만 사육사 아저씨들은 내심 걱정을 했어요. “크리스는 지프차 타이어를 하루에 서너 번이나 펑크 냈어요. 맹수들은 겁이 많을수록 공격적이거든요. 크리스는 성격이 좋아 호랑이·사자 집단과 두루 어울렸지만,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크리스는 라피도와 달리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크리스는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컸어요. 다른 희귀동물처럼 태어날 때 보도자료도 나오지 않았고, 네 발로 걷기 시작했을 때도, ‘어흥’ 포효를 시작했을 때도, 크리스를 알아준 건 아저씨들밖에 없었죠. 크리스는 무명 라이거였어요.첫눈이 오던 날, 내년이면 여덟 살이 되는 크리스는 오랜만에 라피도와 함께 맹수사를 나왔습니다. 운동장에서 크리스는 힘껏 뛰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라피도 오빠, 달려 달려!” 글 남종영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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