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03 21:49
수정 : 2008.12.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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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밍한 맥주 범인은 탄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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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10종 블라인드 테이스팅, 양대 맥주회사의 과점이 맛 향상 발목 잡는다
“밍밍하다.”(waterly)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 한국판은 한국 맥주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부분 이 평가에 동의한다. 한국 맥주에 대한 폄하는 “수입산이 맛있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국 맥주는 정말 밍밍한가? 브루마스터(맥주 양조 전문가)에게 한국 맥주를 포함해 열 종류의 병맥주를 블라인드 테이스팅(상표를 가리고 맛을 평가하는 것)해 달라고 부탁했다.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이 운영하는 하우스맥주 전문점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의 오진영(32·위 사진) 브루마스터가 ‘악역’을 담당했다. 그는 독일의 월드 브루잉 아카데미에서 맥주 양조 과정을 수료한 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다. 맥주는 서울시내 할인점에서 구입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은 지난달 26일 오후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에서 진행했다.
수입산이 맛있다는 건 편견일까
공정한 비교를 위해 열 종류 모두 라거 스타일로 구입했다. ‘라거’란 색이 맑고 맛이 깨끗한 하면 발효 맥주를 가리킨다. 평가 기준은 색·향·거품의 조밀도와 지속도·바디(머금었을 때 묵직하게 느껴지는 정도)·맛·청량감·피니시(끝맛) 등이다. 향의 경우 맥아향·홉(쌉쌀한 맛을 내기 위해 맥주에 첨가하는 꽃)향을 주로 본다. 거품 입자가 촘촘하고 오래 지속되는 게 좋다. 거품은 맥주가 공기와 닿는 것을 막아 산화를 방지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맥주가 산화하면 시큼한 맛이 난다. 다음은 오진영 브루마스터의 품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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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번: 전형적인 라거 스타일이다. 색이 맑고 라이트 바디이다.
⊙ 2번: 전형적인 라거 스타일이다. 홉향이 1번보다는 약간 더 난다. 피니시는 깔끔하다. 약간 효모 냄새(효모취)가 나는데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다. 피니시가 깔끔하다.
⊙ 3번: 잔당이 많이 남아 있다. 발효를 일찍 끝내거나 다른 부원료를 넣은 것처럼 향에서 단내가 난다. 맥주 특유의 단내가 아니라 마치 뻥튀기에서 나는 인공적인 단내다. 거품 입자가 크다. 맥주 거품이 크림처럼 부드럽고 오래 지속하려면 단백질 성분이 적정하게 들어 있어야 한다. 3번 맥주는 거품에 단백질이 부족해 입자가 크다.
⊙ 4번: 4번 맥주는 3번 맥주보다 거품이 조금 더 조밀하지만 좋은 편은 아니다. 단맛이 약간 있다.
⊙ 5번: 탄산이 계속 올라오는 것도 중요하다. 5번 맥주는 잔에 따른 뒤에도 탄산이 계속 올라온다. 거품도 3번과 4번보다 더 조밀하다. 다크맥아(갈색을 띨 정도로 볶은 맥아)를 섞은 듯, 라거치곤 색이 어둡다. 다크맥아를 섞으면 색과 풍미가 풍부해진다.
⊙ 6번: 국산 맥주 같다. 향이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탄산향이 난다. 맥주 특유의 호프향이 거의 없다. 다만, 약간 톡 쏘는 특징은 느껴진다.
⊙ 7번: 탄산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도 좋고 거품의 조밀도도 균형이 좋다. 톡 쏘는 쌉쌀한 호프향도 많이 나는 걸로 보아 호프가 많이 들어간 것 같다.
⊙ 8번: 향이 인위적이다. 본연의 향은 아닌 것 같다. 특이하다. 향과 맛이 향긋하다. 그러나 맥아에서 나는 몰티(malty)한 향은 아니다. 거품의 조밀도는 낮다.
⊙ 9번: 국산 맥주는 아닌 것 같다. 거품의 조밀도도 좋고, 홉향도 풍부하다. 향이 굉장히 좋다.
⊙ 10번: 거품의 조밀도는 약간 떨어진다. 전형적인 라거다. 홉향이 좋은 편이다. 역시 품질상 국산 맥주는 아닌 것 같다. 라이트 바디이고, 상쾌한 끝맛이 독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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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트 맥스 그중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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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입자가 적당히 촘촘하고 거품이 오래 지속해야 좋은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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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브루마스터는 5번과 7번을 인상적인 맥주로 꼽았다. 9번과 10번도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나머지는 그런저런 평을 받았으며, 3번과 6번에 대한 평가가 가혹했다. 1번 칭다오, 2번 하이네켄, 3번 하이트, 4번 버드와이저, 5번 필스너 우르켈, 6번 카스, 7번 벡스, 8번 하이트 맥스, 9번 코로나 엑스트라, 10번 아사히 슈퍼드라이다.(왼쪽사진 촬영 뒤 다시 순서를 바꿨다.) 칭다오는 중국, 하이네켄은 네덜란드 맥주이며, 필스너 우르켈은 체코 맥주다. 벡스·코로나·아사히는 각각 독일·멕시코·일본 맥주다. 국내 맥주 가운데는 하이트 맥스가 가장 나은 평을 받았다.
똑같은 라거인데 왜 이런 품질 차이가 생길까? 우선 맥아 사용량이다. 80~90%는 맥아를 쓰고 나머지 부족한 전분은 옥수수·쌀 전분으로 보충해 만든 제품이 있다. 맥아가 비싸기 때문에 단가를 낮추려는 게 목적이다. 옥수수·쌀을 쓰면 좀더 가볍고(라이트 바디) 깔끔한 맛이 난다. 홉을 적정량 사용해 쌉쌀한 풍미를 내야 좋은 맥주다. 그러나 홉은 킬로그램당 수만원에 이르는 고가인 탓에 어떤 맥주회사는 홉향을 인위적으로 주입한다.
한국 맥주는 왜 밍밍한 걸까? 취재 결과 ‘워털리’(waterly)라는 표현처럼, 정말 물을 섞는 것으로 밝혀졌다. 라거 스타일 맥주는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4~5도 안팎이다. 맥주 발효 과정에서 8~9도 정도의 고알코올로 발효시킨 뒤 여과 과정에서 탄산수를 섞어 도수를 4~5도에 맞추는 공법이 ‘하이 그래비티 브루잉’(High Gravity Brewing)이다. 국내 업체 둘 다 이 공법을 사용한다. 하이트맥주는 지난달 24일 “하이 그래비티 브루잉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하이트맥주는 “이 공법이 질을 떨어뜨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공법은 공정별 용량을 증대시키고 에너지 절감 효과 등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대부분의 맥주회사에서 고농도 사입(HGB)을 실시한다. 하이트는 효모 사용량과 공정 조정 등을 통해 노멀 브루잉(Normal brewing)과 품질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품질관리를 한다”고 덧붙였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오비맥주 공장 직원도 “이 공법을 사용하지만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맥주업체들이 모두 이 공법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롯데아사히 주류는 “아사히는 하이 그래비티 양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생산성 향상이 용이하지만, 향과 맛 등 특징을 끌어내기 어려워 오리지널 그래비티(자연적인 양조 방법) 제조법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도 하이 그래비티 공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독일은 ‘맥주는 물·맥아·홉·효모로만 만든다’는 ‘맥주 순수령’이 지켜지며, 탄산수는 이물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 맥주가 밍밍한 게 탄산수를 섞는 공법 때문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공법으로 만들어진 맥주도 질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맥주 맛이 떨어지는 게 하이 그래비티 공법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맥주 맛을 좋게 하려고 사용하는 공법이 아닌 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맥주 선택에도 다양성의 미덕을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한국 맥주의 수준이 높아지려면 두 국내 맥주회사의 과점을 보호하는 현행 주세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하우스맥주 전문점에서 병입한 뒤 판매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마트·백화점 납품 등 유통은 여전히 금지된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마이크로 브루어리(소규모 맥주양조장)의 경우 하이트나 오비와 달리 여과·살균 작업을 거치지 않아 변질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동일 법인으로밖에 맥주를 공급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가령, 누군가 생맥주집을 차린 뒤 오킴스의 맥주를 공급받고 싶어도 같은 법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맥주 전문가 마이클 잭슨이 저서에 종종 인용했던 다음 문구를 떠올리는 맥주 애호가들에게 한국은 여전히 불친절한 나라다.
“비브 라 디페랑스!”(Vive la difference·다양성 만세!)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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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는 여름 술이라는 편견을 버려
‘맥주는 여름에 마시는 술’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오진영 브루마스터는 겨울에 어울리는 맥주로, 도수가 8~9도에 이르는 복(Bock)이나 에일을 추천했다. 복은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에서 판매한다. 에일 맥주 가운데 편의점·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은 벨기에의 ‘뒤벨’(Duvel)이다. 플랑드르어로 ‘악마’를 뜻하는 이름처럼, 향긋한 거품과 달리 도수는 8도가 넘는다. 맥주 전문가 마이클 잭슨은 <비어>(돌링킨더슬리)에서 겨울에 어울리는 맥주로 흑맥주를 추천했다. 포도가 재배되지 않는 벨기에나 영국의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 와인 대신 굴 등 해산물과 흑맥주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고 한다.
고나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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