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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폭탄주를 둘러싼 논란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폐해를 주장하는 ‘해악론’이 거스르기 어려운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유용론’도 끊이지 않는다. 사진은 폭탄주를 소탕하는 의원모임 ‘폭소클럽’ 회장인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2006년 3월3일 폭탄주를 망치로 깨뜨리는 장면.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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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잘만 터뜨리면 `소통주’ 아차 실수땐 `추태주’ 퇴출운동 벌인 `폭소클럽’ 18대서 대거 ‘퇴출’ 박희태 대표 취임 뒤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의원들은 종종 박 대표에게 “폭탄주를 자제하고, 얼굴 화장도 하시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친이계 한 의원은 “70살인 여당 대표의 대중적 이미지를 좀더 생동감 있게 관리하자는 나름의 충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최근까지도 폭탄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각종 모임에서 심심찮게 맥주잔에 소주를 ‘뇌관’으로 넣은 ‘소주 폭탄주’를 몇 순배씩 돌린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이상 무’ 판정을 받은 뒤 더 적극적이라는 얘기도 나돈다. 검사 시절부터 유명한 폭탄주 대가인 그는 “다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이 별 무리 없이 여러 사람과 공평하게 술을 마시며, 짧은 시간에 즐겁게 화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게 폭탄주”라고 말한다. 대화와 타협, 소통이 절실한 정치권에서, 항상 여러 사람과 함께 술을 마셔야 하는 정치인에게 폭탄주는 건강도 지키고 소통의 폭도 넓히는 순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폭탄주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달리, 정치권에는 폭탄주를 즐기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 정치인들 사이에 폭탄주의 유용성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폭탄주는 소통의 깊이를 측정하는 잣대로 종종 활용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청와대 만찬이 끝나면 소주 폭탄주가 몇 순배나 돌았는지, 누가 대통령에게 폭탄주를 만들어 건넸는지가 여권의 관심사로 등장한다. 대통령과 얼마나 허물없는 대화가 오갔는지, 최고 권력자와 의원들의 친밀도를 가늠하는 나름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폭탄주는 실제 정치권에서 상대를 설득하고 유용한 정보를 취득·유통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2일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과 유기준·한선교·김선동 등 한나라당 친박근혜 쪽 의원들의 만남에서도 예외 없이 폭탄주가 돌았다. 한 참석 의원은 “먼저 폭탄주를 몇 순배씩 돌리고, 그렇게 분위기를 살린 뒤 속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말했다.폭탄주를 활용한 의원외교의 ‘무용담’도 회자된다. 열린우리당 시절 당대표단이 중국공산당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이 워낙 의전을 따져 딱딱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보다 못한 김부겸 의원이 만찬장에서 “우리나라에는 폭탄주가 있다. 이걸로 화합의 의미를 다진다”는 취지의 ‘폭탄사’를 한 뒤, 조정식 의원이 능숙한 솜씨로 ‘회오리주’를 만들어 돌렸더니, 그 뒤부터 분위기가 확 풀렸다고 한다. 나이를 뛰어넘는 젊음과 활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고건 전 총리는 이른바 ‘텐텐 폭탄주’로 유명하다. 뇌관인 양주잔을 가득 채운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곤 했다. 1935년생인 이 총재와 38년생인 고 전 총리는 30~40대 젊은 의원들과 거침없이 텐텐 폭탄주를 돌리는 주량을 선보임으로써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입소문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물론, 폭탄주 문화에 대해 퇴출되어야 할 낡은 문화, 힘있는 자들의 고급 술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몇몇 실세들이 몇십만원짜리 고급 양주인 ‘발렌타인 30년’을 폭탄주로 만들어 먹었다가 입방아에 올랐고,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1999년), 김태환 의원 경비원 폭행사건(2004년), 곽성문 의원 맥주병 투척 사건(2005년), 최연희 의원 여기자 성추행사건(2006년) 등 폭탄주 관련 추태가 각인된 때문이기도 하다. 탈권위를 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청와대 비서진과 여당 의원들에게 “고급 음식점에서 양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셔야 소통이 되느냐”며 폭탄주 근절에 나선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발언 뒤 손님이 줄어든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한정식집 주인이 청와대 인사에게 “우리 집에서 백세주도 팔아요. 대통령님께 꼭 전해주세요”라고 ‘탄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6년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폭탄주 잔을 망치로 깨는 이벤트까지 벌이며 ‘폭탄주 소탕 클럽’(약칭 폭소클럽)을 만들기도 했다. 17대 의원 30여명이 가입해 한때 폭탄주 안 마시기를 실천했으나 18대 들어 많은 의원들이 낙선하면서 해체됐다. 박 의원은 여전히 폭탄주를 안 마신다고 한다. 하지만 폭탄주는 아직 정치권의 주요한 소통 문화로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일부 의원들이 폭탄주 대신 와인 등으로 주종을 변경했지만, 술문화의 대세는 여전히 폭탄주다. 때문에 어렵지만 적응하려 애쓰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재선 의원인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나는 매일 밤 겔포스를 먹고, 폭탄주 전투에 임한다”고 말한다. 신승근 강희철 기자 skshin@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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