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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4 20:23 수정 : 2008.12.05 15:52

이름 고친다고 ‘동네 팔자’도 고쳐질까 . 그림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뉴스 쏙]

나쁜 어감·집창촌·달동네 벗어나려
“땅값 오를줄 알았더니 변동 없네요”

이쯤 되면 삼순이도 울고 갈 정도다. 서울 광진구 모진동 말이다. 남으로는 자양강장제를 생각나게 하는 ‘불끈’ 자양동과 북으로는 공자왈 맹자왈을 떠올리게 하는 ‘범생’ 군자동과 맞닿아 있는 ‘까칠’ 모진동은 그 이름이 범상치 않다. 왜 하필 모진동이 된 걸까?

조선시대, 지금 건국대학교가 있는 모진동 자리에는 말을 기르던 양마장이 있었다. 이 양마장 주변 수렁에 말들이 가끔 발을 헛디뎌 빠져 죽곤 했는데, 단백질이 부족하던 시대 동네 여자들이 수렁에 빠져 죽은 말을 건져 고기를 나눠 먹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이웃 동네 주민들이 ‘모진 여인’들이 산다며 ‘모진 동네’로 불렀고, 1914년 경기도 고양군 둑도면 ‘모진리’로 덜컥 정식 지명이 되었다.

이 모진동이 94년 만에 이름을 바꾼다. 광진구는 지난달 26일 지역주민 설문조사와 동의를 거쳐 모진동을 화양동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름을 바꾸자는 주민의 비율은 무려 90.6%. 모진동 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건국대학교도 동이름을 바꾸는 데 찬성했다고 한다.

최근 서울시 여러 동들이 새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동 통폐합을 하면서 서울 시내 동네가 518개 동에서 436개로 줄어들면서 모진동처럼 오랜 세월 동네 이름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온 동네들이 숙원을 풀고 있다.

이름 문제로는 미아동을 빼놓을 수 없다. 미아동은 ‘두루 펼쳐진 언덕’이라는 뜻의 예쁜 이름으로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아사에서 유래됐다. 그러나 서울 시민들은 ‘미아리’ ‘미아동’이라고 하면 집창촌부터 떠올리게 된다. 1970년대 초반 서울역 앞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되면서 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집창촌이 옮겨와 이후 ‘미아리 텍사스’로 불렸기 때문이다.


실제 집창촌과는 2㎞ 이상 떨어진 강북구 미아동으로선 환장할 노릇이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름 바꾸기를 추진했다. 먼저 나선 곳은 오히려 성북구였다. 미아리란 이름이 집창촌 이미지와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한 많은 고개’로 인식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성북구는 ‘미아로, 미아리고개, 미아사거리, 미아리구름다리’ 등의 이름을 공모로 새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실제 미아동 행정지명을 갖고 있는 강북구가 ‘미아동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발끈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정작 강북구도 지난6월 동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미아3동을 미아동으로 바꾼 데 이어 미아1동에서 9동까지 8개 동이름을 삼양동, 송중동, 송천동, 삼각산동 등으로 모두 바꿔버렸다. 미아동을 세 번 죽인 셈이다.

달동네 이미지가 강한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은 9월1일부터 신사동, 삼성동, 은천동, 청룡동, 난곡동, 낙성대동, 보라매동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중에서 신사동과 삼성동이 문제가 됐다. 신사동은 이미 은평구와 강남구에서 사용하고 있어 서울 시내 신사동만 3곳이 되어버렸고, 삼성동 역시 강남구에서 쓰고 있는 이름이었다.

혼란을 준다는 지적에도 관악구는 “주민 80% 이상이 신림4동에서 ‘림’자를 뺀 ‘신사동’을 요구했다”고 버텼다. 이 주장대로라면 신림6동과 신림10동이 통합된 동은 ‘신육십동’이 돼야 했지만 관악구는 이 동네는 삼성동으로 바꿨다. 강남구 삼성동과 한자가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강남구가 ‘행정동명칭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결국 법적 다툼까지 진행 중이다.

그러면 새 이름 덕에 땅값은 올랐을까. 신림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하나같이 “변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신림동 ㅇ공인중개사의 오재하(51)씨는 “동이름이 바뀌어 땅값이 조금은 오를 줄 알았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다”고 전했다.

낙후된 공단 이미지를 떨치려는 가리봉동과 구로동은 동이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2005년 지하철역 이름은 바뀌었다. 가리봉역이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 것이다. 구로구는 이에 앞서 동이름도 바꾸려고 검토했지만 적합한 이름이 없어 포기했다. 구로구 디지털홍보과 정남기 과장은 “2005년 가리봉동의 새 이름을 공모했는데 최우수작은 뽑지 못했고 우수작으로 ‘첨단동’을 선정했는데 발음이 어렵고 광주광역시에 이미 첨단동이 있어 동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가 2012년부터 동이름과 번지 중심의 지번주소를 길이름 중심의 생활주소로 전면 개편할 예정이어서 동이름 논란은 앞으로 보기 힘들어질 전망이다. 대신 이제는 길이름 차례다. 인천에 있는 야동길과 부고길, 전북 군산의 사정길 같은 길이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름 모진 동네 주민들의 고민은 이제 또 시작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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