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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네임은 그 어떤 것보다 발빠르게 동시대 감수성과 유행을 보여주는 강력한 아이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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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불러서 꽃이 된 그 이름
당신은 몇 명의 이름을 부르며 살고 있습니까? ‘팀장님!’, ‘저기요~’, ‘엄마아?’에서 ‘야!’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대체할 만한 수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알고 기억하는 건, 행인 1과 그를 구별하는 첫 번째 신호탄인 셈입니다. 누군가에게 붙은 고유한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인물의 기운이 담겨 있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브랜드의 이름은 어떨까요? 지구의 풍경화를 그린다고 할 때 브랜드 네임을 꼭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조금 이상할까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폭파된 지구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 누구는 콘크리트 댐을 만들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거죠. 한순간에 팡! 없어진 지구를 그럴듯하게 재생하려는 그들은 본인들이 누렸던 이 세계의 풍경을 되살리느라 분주합니다. 마치 레고블록의 인물들처럼 일사불란하지만 여기엔 빠진 장면이 있습니다. ‘맥도널드’, ‘스타벅스’, ‘애플’, ‘듀라셀’ 등등등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브랜드 이름들이 바로 그것이죠.
브랜드 네임은 그 어떤 것보다 발빠르게 동시대 감수성과 유행을 보여주는 강력한 아이콘입니다. 물론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름이란 뭘까? 우리가 장미라 일컫는 것은 다른 어떤 이름으로 달리 불린다 해도 똑같이 달콤한 향기가 날 것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셰익스피어가 브랜드 네임 업계에 취직한다면 아마 고생 좀 했겠지요.
오늘날 브랜드 전략에선 너와 다른 나만의 차별화된 이름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화려하게 튄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입체적인 네이밍 2.0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벌써 십여년 전 ‘하이트 맥주’의 이름을 지은 ‘브레인컴퍼니’ 박병천 대표는 “다른 맥주를 마시면 오금이 저린다. 내 평생 기억해야 할 그 이름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여전히 설레고 흥분된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반드시 그 이름을 단 맥주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향기가 나는 맥주이기 때문입니다.
글 현시원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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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브랜드 네임을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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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폰 들고 2% 채워 쇼를 하라
한 음절, 문장형, 펫네임 등 2008년 시장을 강타한 브랜드 네이밍의 3가지 경향
미끼로 끝날 것인가, 소비자를 움직일 것인가. 브랜드 네이밍의 세계에선 신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뭔가 ‘있어’ 보이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다. 과감한 압축과 단순화 그리고 화려한 치장 끝에 탄생하는 브랜드 이름. 어떤 것들은 ‘코카콜라’처럼 동시대 만인에게 회자되고 때론 시대상을 비추는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소비자의 환심을 산 2008 브랜드 이름의 트렌드를 세 가지로 짚어봤다.
1. 쇼처럼 한 방에 날려라
성공한 브랜드 이름은 슬로건이나 후렴구가 된다. 2008년 ‘대박’ 난 브랜드 이름은 뭐니 뭐니 해도 케이티에프의 브랜드 ‘쇼’(Show). 단어 ‘쇼’는 ‘하다’라는 평범한 동사와 만나 날개 단 듯 널리 회자됐다. 짧은 음절, 단순함, 명확함은 브랜드 이름 짓기의 기본 원칙에 가깝다. 늘어지고 애매모호한 것은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20여개의 알파벳 카드 상표권을 확보한 현대카드의 ‘M’, ‘H’, ‘K’와 온라인 쇼핑몰 ‘G마켓’만 떠올려도, 간명한 이름은 다양한 확장이 가능하다. 특히 인기를 끈 알파벳 ‘W’의 경우 호텔에서 잡지 이름까지 다채로운 이름으로 쓰였다. 브랜드 전문회사 ‘메타브랜딩’의 김자성 이사는 “최근 이니셜과 부호를 결합해 디자인 상표권을 획득하는 것은 네이밍 등록 포화상태에 이른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콘솔게임기 ‘위’나 델타항공의 ‘송’,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에스케이텔레콤의 ‘준’은 모두 간결함의 매력을 뽐냈다. 사실 무슨 의미인지 힌트가 부족한데도 군더더기 없이 핵심과 직결된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 ‘쇼’와 같이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브랜드의 경우 대규모로 노출된 광고 덕택에 더욱 힘을 얻었다.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국영은 카피라이터는 “신규 브랜드를 알려야 할 때는 센 인상을 남기면서도 입에 오르기 쉬운 구호를 적극 활용한다”고 말했다. ‘룰루∼하세요’ 광고로 잘 알려진 웅진코웨이의 ‘룰루비데’도 브랜드 이름을 끝까지 밀고 나간 예로 사실상 브랜드의 핵심을 가장 잘 표현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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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에게 회자된 브랜드 네임은 시대를 비추는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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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길게 구체적으로∼
‘들기름을 섞어 바삭바삭하게 고소하게 튀겨낸 김’ 주세요!
요리사에게 부탁하는 말이 아니다. 마트에 가서 직원에게 건네는 말이다. 최근에는 설명조로 제품의 특성을 충분히 정직하게 전달하려는 브랜드 이름이 두드러진다. 특히 식료품업계에서 긴 이름은 강력한 트렌드로 소비자들의 반향을 이끌고 있다. ‘두 번 우려낸 녹차’, ‘원두커피에 대한 4가지 진실’, ‘계란을 입혀 부쳐 먹으면 정말 맛있는 소시지’, ‘자글자글 끓여낸 강된장’에 이르기까지 문장형 브랜드 이름을 쉽게 볼 수 있다. 제품 제작 과정을 설명하기도 하고, 요리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감성을 곁들여 맛을 느끼게 해준다.
억지스럽게 꾸며낸 이름보다 실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긴 이름은 경제 불황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그래서 근래엔 더욱 각광받는다. 유행어로 여전히 사용되는 문구 ‘2% 부족할 때’의 경우 톡톡 튀는 감성과 기교가 포인트였다. 최근엔 평범한 화법으로 정보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메이저브랜드’의 손봉선 실장은 “한 번 들어봐서 제품 정보를 알 수 없는 이름은 지속적인 광고가 필요해 비용이 많이 든다”며 “반면 긴 이름에는 제품 정보를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어 광고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우리쌀로 빚은 새참파이’의 경우엔 제품 원료를 ‘말해주고’ 싶은 제작자의 태도도 같이 사 먹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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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엣지폰’. 기업이 만든 애칭은 트렌드를 의식한 고도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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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펫네임 유포시키기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 이름에 반응하는 경우도 있을까? 소비자들은 좋아하는 제품에 애칭을 붙인다. 기업이 애칭을 만들거나 의도적으로 애칭 사용을 유도하기도 한다. 제품의 애칭을 ‘펫네임’(pet name)이라고 한다. 펫네임은 사람의 별명처럼 가장 대표적인 한 가지 특성을 끄집어 제품을 설명하는 것이다.
2005년 ‘삼성전자’의 블루투스폰이 소비자들에게 ‘문근영폰’으로 불리면서 애칭 마케팅이 관심을 끌었다. 첫눈처럼 새하얀 디자인의 한 핸드폰은 그 애칭도 앙증맞아 ‘아이스크림’폰이다. ‘엘지전자’ 홍보팀의 최준혁 과장은 “아이스크림폰’이라는 별칭은 바닐라·스트로베리 등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파스텔톤 색상에서 착안한 것”이라며 “최근 출시한 폰의 펫네임 ‘엣지’는 메탈 소재를 사용한 독특한 디자인의 세련된 면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업이 만든 애칭은 전략적이다.
펫네임은 감각과 감성을 자극하는 쉬운 이름이다. 구체적이면서도 친근한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초콜릿폰’, ‘뮤제MUSE’, ‘보르도’, ‘바람의 여신’처럼 애칭은 제품 디자인, 기능, 색상, 은유적 이미지 등 다양한 특성에 기댄다. 친구의 별명을 짓기 위해 그를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하듯 브랜드도 다르지 않다. 엘리자베스와 친해지면 엘리자베스를 ‘베스’로 부르듯, 펫네임은 브랜드에 대한 선호와 애정의 표명이다. ‘버드와이저’는 버드가 되고, ‘코카콜라’는 코크가 된다. 손봉선 실장은 “기업이 만든 펫네임보다 자연스럽게 소비자들 입길에 오르는 펫네임이 제품 판매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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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컨버스, 호빵, 포스트잇 등 특정 브랜드가 일반적 단어로 자리잡은 전설의 네이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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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신발인 ‘컨버스’는 1908년 최초의 전문 농구화로 시작한 브랜드로, 지금은 목이 긴 신발을 뜻할 만큼 잘 알려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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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위기일발>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제임스 본드는 ‘민톤’ 도자기 컵에 담긴 ‘드브리’ 커피와 함께 ‘타임’지를 읽는다.” 이런 문구는 식상하리만치 흔하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설명이 계속되는 것은 타인의 취향을 이해하는 데 브랜드 이름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가에 주목하면 한 인물과 시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 이름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지위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 브랜드 이름은 보편성을 띤 보통명사의 자리에 오른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캐주얼 신발인 ‘컨버스’(사진)는 1908년 최초의 전문 농구화로 시작한 브랜드로, 지금은 목이 긴 신발을 뜻할 만큼 잘 알려진 이름. 엘비스 프레슬리, 존 레넌, 존 에프 케네디가 즐겨 신었고 유독 음악·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가 깊다. 지금은 “스트리트 패션의 당당함과 자유를 표현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차별과 독특함을 내세웠던 브랜드의 고유함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 보통명사가 되는 일은 국내에도 종종 있다. ‘삼립호빵’은 1971년 “맛이 좋아 호호, 뜨거워서 호호”라는 문구를 한껏 살리며 등장했다. ‘호빵’이라는 이름은 ‘호호 분다’는 의미로 임원회의에서 쉽게 결정됐다. ‘호호 호빵 빵빵빵 호호빵 삼립빵’이라는 시엠송은 들을 수 없지만, 호빵은 여전히 있다. ‘미원’이나 ‘대일밴드’, ‘샤프’, ‘포스트잇’ 등은 자주 사용되는 명칭. 알고 보면 특정 기업에서 내놓은 이름이다.
‘김아무개’처럼 고유명사인 사람 이름과 브랜드 이름의 관계는 어떨까? 거리의 식당과 부동산 간판만 보더라도 주인의 이름을 내건 경우가 많다. 열여섯살에 파리로 와서 트렁크 꾸리는 사람에게 도제교육을 받았던 ‘루이 뷔통’, 13세의 나이에 위스키 양조 일을 시작했던 ‘잭 대니얼스’, 고향 뉴햄프셔를 떠나 할리우드에서 행운을 찾아보려 했던 ‘맥도널드’는 본인의 생보다 더 드라마틱한 브랜드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비비안’은 브랜드 개념이 전무하던 1973년,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대표적인 여자 이름인 동시에 짧고 발음하기 쉬운 ‘비비안’을 이름으로 내걸었다.
참고 <최고의 브랜드 네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계 500대 브랜드 사전>, <브랜딩 트렌드 30>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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