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러니라도 그냥 있어줘
|
[매거진 esc] 오기사의 도시와 건축
국립민속박물관은 옳은가?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도시도 그렇다. 그리고 도시 안에 존재하는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서울에 존재하는 수많은 건물 중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일 아이러니한 것 같다. 언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경복궁에 관광 온 외국인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장소가 국립민속박물관이라고. 그게 왜 우스운 이야기냐고 묻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실상은 이렇다.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법주사의 팔상전, 화엄사의 각황전, 금산사의 미륵전이 국립민속박물관의 원재료들이다. 이와 같은 우리 고건축의 명작들이 조선의 궁궐 안에 콘크리트로 콜라주되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설계지침이 그랬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것은 한참 고건축의 매력에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문득 박물관의 기단부가 불국사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던 것이다. 건물의 내막을 알게 된 뒤 곧바로 법주사와 화엄사, 금산사로 떠나 실물을 보았다. 그러고는 어린 마음에 분개해서 대한민국에서 내일 당장 부숴버려야 할 건물은 국립민속박물관이라고 부르르 떨었다. 옛 건물 하나를 콘크리트로 본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러운데 그것들을 한데 모아 조합하다니! 루브르 궁전을 기단으로 만들고 그 위에 에펠탑을 얹고 옆에는 개선문을 세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세워진다?! 프랑스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건축물을 세우겠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미 세상도, 나도 그리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조금은 알아버린 지금 경복궁 담장 너머로 보이는 법주사 팔상전의 콘크리트 모형에 그다지 반감이 일지 않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이미 충분히 가짜가 많은 세상. 어쩌면 우리의 아이러니한 근대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설치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오늘도 민속박물관의 외관은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에 담겨 한국의 전통건축을 대변하고 있다. 외관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보통 민속박물관의 전시는 재미있다. 게다가 세상에는 저런 식으로 모방해 놓은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비록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잠시나마 옳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이렇다 할지라도 카이로에 콘크리트 피라미드들이 난무하거나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콘크리트 만리장성을 연장하는 식의 개발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개신교 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경복궁 경내에 불교 건축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누군가에 의해 어느 날 문득, 박물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한 걱정도 해 본다. 오영욱/건축가·오기사디자인 대표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