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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민 디자이너가 작업한 책들. 화려한 표지보다는 책의 콘셉트를 살리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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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갈수록 다양화, 전문화되는 책 디자인의 세계,화려함에서 내용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으로 ‘표지로 그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도 있지만 책 디자인은 원고를 구체적인 사물로 만들어 세상에 내미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작가의 흑백사진이 굵은 테두리 안에 박혀 있던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시리즈, 4×6 양장 포맷을 처음으로 도입한 ‘열린책들’의 폴 오스터 시리즈, 베스트셀러인 황석영의 <바리데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은 우리에게 ‘이미지’로 말을 건넨다.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책 제목과 작가명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책 디자이너들은 책의 글자와 이미지, 표지와 속지, 내용과 디자인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적의 <지문사냥꾼>, ‘이건 된다’ 감 와 <공중그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지문사냥꾼> 등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은 오진경 디자이너는 지난 11월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한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상’을 받았다. 그는 “저자가 만들어낸 텍스트 이외의 것들을 책의 꼴로 만들어내기까지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책에 푹 빠져서 기획 의도를 명백히 파악해야 하고 거리감각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 디자인은 집약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적의 <지문사냥꾼>을 디자인하면서는 ‘이건 반드시 된다!’는 감이 왔고 20세기 초 모던걸을 표지에 넣은 <매체로 본 근대여성 풍속사-신여성>을 하면서는 책에 담긴 사유와 기술의 능력에 스스로 반했다. 겉표지뿐 아니라 속커버, 면지의 색과 재질에 민감한 그는 “모던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대 감수성을 전달하는 표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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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위)책 표지는 서가에 놓인 책들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윤운식 기자
(아래)오필민 디자이너의 컴퓨터. 책의 표지를 결정하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하다. |
독자와의 만남을 전제한 디자인 작업이기에 책 디자인에선 내용과 형식 사이의 연관이 핵심이 된다. 다양한 영역의 디자인 작업을 보여주는 디자인 그룹 ‘슬기와 민’은 “독자를 ‘소비자’로만 취급하는 책 표지나 내용을 부풀리는 ‘거짓말’ 표지도 의심한다”고 했다. 이들은 책의 뒤표지에 내용과 디자인의 콘셉트를 설명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을 통해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일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 감각적인 디자인을 보여줬던 젊은 디자이너 김형균(35)씨도 책 디자인은 “단순히 튀거나 유행하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책 디자인을 마케팅 차원의 상품적 가치에 한정하는 시각이 아쉽다”고 했다. 소설보다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디자인했던 오필민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책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하는 데 몰두한다.” <서구지성사 3부작>, <지방은 식민지다> 등 흑백톤의 간명한 이미지로 책의 본질에 접근하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편. 오필민 디자이너는 “책의 내용과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한 후엔 글자의 모양새와 위치를 많이 고민한다”며, 그래서 “색을 많이 쓰는 화려한 표지보다는 어두운 표지가 많다”며 웃었다. 북디자이너가 자기 철학을 밀고 나가기엔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와 경제불황 등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글자가 책에 올라가 앉는 공간미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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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판도시에서는 21일까지 '한국의 젊은 북디자이너 19인전'이 열린다. 갤러리 지지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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