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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0 20:02 수정 : 2008.12.14 14:09

오필민 디자이너가 작업한 책들. 화려한 표지보다는 책의 콘셉트를 살리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매거진 esc]

갈수록 다양화, 전문화되는 책 디자인의 세계,
화려함에서 내용과 어울리는 아름다움으로

‘표지로 그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도 있지만 책 디자인은 원고를 구체적인 사물로 만들어 세상에 내미는 필수적인 작업이다. 작가의 흑백사진이 굵은 테두리 안에 박혀 있던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시리즈, 4×6 양장 포맷을 처음으로 도입한 ‘열린책들’의 폴 오스터 시리즈, 베스트셀러인 황석영의 <바리데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은 우리에게 ‘이미지’로 말을 건넨다.

내가 이 책을 손에 잡은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책 제목과 작가명이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말하는 이도 있겠다. 하지만 책 디자이너들은 책의 글자와 이미지, 표지와 속지, 내용과 디자인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임을 강조한다.

이적의 <지문사냥꾼>, ‘이건 된다’ 감 와

<공중그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지문사냥꾼> 등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은 오진경 디자이너는 지난 11월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한 ‘올해의 출판인 디자인상’을 받았다. 그는 “저자가 만들어낸 텍스트 이외의 것들을 책의 꼴로 만들어내기까지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책에 푹 빠져서 기획 의도를 명백히 파악해야 하고 거리감각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책 디자인은 집약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적의 <지문사냥꾼>을 디자인하면서는 ‘이건 반드시 된다!’는 감이 왔고 20세기 초 모던걸을 표지에 넣은 <매체로 본 근대여성 풍속사-신여성>을 하면서는 책에 담긴 사유와 기술의 능력에 스스로 반했다. 겉표지뿐 아니라 속커버, 면지의 색과 재질에 민감한 그는 “모던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대 감수성을 전달하는 표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사진 위)책 표지는 서가에 놓인 책들의 첫인상을 결정한다. 윤운식 기자
(아래)오필민 디자이너의 컴퓨터. 책의 표지를 결정하기 위한 작업으로 분주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책 표지가 화려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시선을 확 사로잡는 일러스트레이션과 강렬한 색감같이 임팩트가 강한 표지가 상업적 면에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최근엔 기본과 책의 콘셉트에 충실한 책 디자인이 관심을 끈다. 좋은 책 디자인의 요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진 것이 큰 이유. ‘현실문화연구’의 김수기 대표는 “최근 몇년 책 디자인의 스펙터클은 굉장했다. 화려한 책 표지가 각광받았던 것은 출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 분위기의 영향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베스트셀러의 경우엔 하룻밤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내용을 포장해 주는 디자인이 많았다”는 것. 반면 최근 인문과학과 실용 서적들의 경우 책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다소 담백한 디자인이 각광받는다.


독자와의 만남을 전제한 디자인 작업이기에 책 디자인에선 내용과 형식 사이의 연관이 핵심이 된다. 다양한 영역의 디자인 작업을 보여주는 디자인 그룹 ‘슬기와 민’은 “독자를 ‘소비자’로만 취급하는 책 표지나 내용을 부풀리는 ‘거짓말’ 표지도 의심한다”고 했다. 이들은 책의 뒤표지에 내용과 디자인의 콘셉트를 설명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을 통해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일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 <플라이, 대디, 플라이> 등 감각적인 디자인을 보여줬던 젊은 디자이너 김형균(35)씨도 책 디자인은 “단순히 튀거나 유행하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책 디자인을 마케팅 차원의 상품적 가치에 한정하는 시각이 아쉽다”고 했다.

소설보다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주로 디자인했던 오필민 디자이너는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책의 콘셉트를 명확하게 하는 데 몰두한다.” <서구지성사 3부작>, <지방은 식민지다> 등 흑백톤의 간명한 이미지로 책의 본질에 접근하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편. 오필민 디자이너는 “책의 내용과 의도를 이해하고 공감한 후엔 글자의 모양새와 위치를 많이 고민한다”며, 그래서 “색을 많이 쓰는 화려한 표지보다는 어두운 표지가 많다”며 웃었다. 북디자이너가 자기 철학을 밀고 나가기엔 출판사의 상업적 의도와 경제불황 등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글자가 책에 올라가 앉는 공간미를 고민한다.


파주출판도시에서는 21일까지 '한국의 젊은 북디자이너 19인전'이 열린다. 갤러리 지지향 제공
쉽게 읽는 베스트셀러일수록 디자인 화려해

한국의 1세대 북디자이너인 정병규씨에 따르면, 책 디자인이 시작된 “70년대는 한글에 대한 타이포그래피의 의식 변화가 본격화된 시대”와 맞물린다. 따라서 한글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생산형 디자인의 한 예인 책 디자인 작업에서 한글은 출발이자 끝이다. “70년대 납활자 시대에 시작된 한국 책 디자인은 사진 식자 시대를 거쳐 지금의 디지털 활자 시대”에 도달했다. 책이 어중간하고 밋밋한가, 아름다운가는 책의 형식과 내용이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21일까지 파주 출판도시 갤러리 지지향에서 열리는 ‘한국의 젊은 북디자이너 19인전’이나 다음달 출간 예정인 북디자이너 40여명의 작업을 모은 단행본(계간 ‘그래픽’ 기획)도 책 디자인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괜찮은 기회다.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국의 대표 북디자이너들이 꼽은
2008년 나의 최고작


⊙ 정병규/<백색인간 1, 2>(김성종, 남도)

두 책의 표지 모두 마스킹 테이프를 이어 붙여 책 제목 글자를 형상화했다. 검고 흰색의 한글이 표지 한가운데 놓여 강한 인상을 남긴다. “책 디자인의 바탕은 한글이고 문자가 가진 이미지성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디자인이다. ‘백색인간’이라는 글자의 의미와 이미지에 힘을 집중시켰다.


⊙ 오진경/<아케이드 프로젝트 1-5>(발터 벤야민, 새물결), <청소년문학시리즈>(고려대학교 출판부)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기존 인문과학 서적의 무겁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해 “휴대 가능한 기능성에 동시대성을 전달하는 이미지”를 고려했다. 죽은 텍스트가 아닌 살아 있는 텍스트를 보여주자는 의도로, 앞표지에는 컬러 포스트잇처럼 알파벳에 따른 책 내용을 일별했다. 문고판 크기의 <청소년문학시리즈>는 담백함과 호사스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흰 커버를 벗기면 무지개 홀로그램 은박지가 반짝인다.


⊙ 오필민/<헝그리 플래닛>(피터 멘젤, 페이스 달뤼시오, 윌북), <포스트워>(토니 주트, 플래닛)

<헝그리 플래닛>은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라는 책의 콘셉트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포스트 워> 디자인처럼 “표지는 책의 뒤에 숨어야 한다. 튀는 건 싫다. 책이라는 ‘덩어리’ 자체가 가슴에 팍 다가와야 한다”는 게 오씨의 디자인 철학.


⊙ 슬기와 민/<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슬기와 민, 안그라픽스)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2008년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을 직접 쓰고 디자인했다. 앞표지는 처음부터 계획이 서 있었지만 뒤표지가 문제였다. “여러 아이디어를 놓고 씨름한 결과 결국은 뒤표지에 대한 고민을 글로 적는 것”으로 결정했다. 뒤표지 디자인에는 어떤 아이디어들을 고려했는지의 과정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 김형균/<드래곤 라자> 세트(이영도, 황금가지), <네 멋대로 찍어라>(조선희, 황금가지)

<드래곤 라자> 10주년 기념 양장본 세트와 <네 멋대로 찍어라>를 비롯해 다양한 책을 디자인했다. <드래곤 라자>는 표지에 목각조각 느낌이 나는 강렬한 그림과 나무 재질의 구김주름지를 활용했다. <네 멋대로 찍어라>는 반사판 앞에서 찍은 작가의 셀프사진을 재료로 시원하게 날아 올라가는 필체의 손글씨를 넣어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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