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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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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도훈의 싱글 라이프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쾌재를 불렀다. 공인된 마약 삼종 세트, 카페인, 알코올, 니코틴이 없으면 숨도 쉴 수 없는 직장 아니던가. 주말에도 집에서 원고를 써야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근처에 스타벅스가 생겼다는 것은 예멘의 시골 마을에 에비앙이 솟구치는 우물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다. 된장남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24시간 커피 인생을 길거리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자판기에 맡길 마음 추호도 없다. 스타벅스는 종이컵도 예쁘지 않나. 물컵으로 재활용도 가능하고. 아니다, 그만두자. 예쁜 건 예쁜 거다. 미학적 차원에서 스타벅스 종이컵을 자판기 컵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거다. 스타벅스가 생긴 지 3주일이 지나자 문제가 생겼다. 아침마다 출근하며 에스프레소 한잔, 퇴근하며 화이트초콜릿모카 한잔을 마셨다. 할인카드를 쓴다 해도 합이 1만원이다. 주말은 더 문제다. 종이컵에서 커피가 마르는 순간 써야 할 원고들을 위한 영감의 원천도 말랐다. 영하 10도의 추위를 이기며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달달한 휘핑크림을 몽블랑산의 만년설처럼 얹어놓은 모카를 들이켜자 기운이 치솟았다. 그 기운을 유지하며 원고 하나를 쓰는 데, 커피 석 잔이 소요됐다. 합이 1만5천원이다. 이걸 날마다 계속한다면? 한달에 30여만원이 커피로 흘러내린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한 잔 3달러짜리 스타벅스를 사서 마시는 대신, 집과 회사에서 손수 커피를 끓여 마시면 30년 동안 모두 5만5341달러를 절약할 수 있단다. 한국의 신문들은 “스타벅스 절약”이 불황을 이겨내는 훌륭한 재테크라고 떠들어댔다. 이걸 절약하고 저걸 아끼고 요걸 자제하라고 훈수 놓는 일간지 경제면은 항상 코웃음으로 넘겨왔건만 이번만은 좀 혹했다. 스타벅스로 향하는 발길을 끊는 순간 내 집도 마련하고 자동차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일 간판을 거대하게 내걸고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머신들이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의 얼굴처럼 반짝거렸다. 점원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요건 오토 카푸치노 버튼도 있어서 편해요. 완전 자동 방식은 간단하게 커피 캡슐만 넣으면 커피가 바로 나와요.” 머신의 가격은 30만원대였고 캡슐의 가격은 개당 1000원 정도였다. 스타벅스와 자판기 커피 사이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이 구애의 몸짓을 바르르 떨며 시음용 카페인을 내뱉었다. 아찔했다. 그러나 나는 구애를 거절하고 백화점을 걸어나와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걸어 들어갔다.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깨달았던 것이다. 머신을 산다고 할지라도 스타벅스로 가는 발길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머신은 저지방 우유를 스팀으로 끓이고 화이트 초콜릿 시럽을 곁들인 모카를 만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니 결국에 늘어나는 건 하루 커피 섭취량과 커피에 들어가는 비용이 될 터였다. 대신 나는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넣어두었던 패딩 점퍼를 영원히 삭제했다. 한달 커피 값을 절약하는 지혜를 터득했거나, 혹은 얼어죽어도 커피는 마셔야 하는 어리석은 된장남의 운명을 선택했거나. 김도훈 <씨네21> 기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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