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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1 18:38 수정 : 2008.12.12 09:24

국정감사가 열리면 국회 복도는 늘 관련 부처 공무원과 이해관계자들로 들끓는다. 사진은 2008년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10월24일 국회 복도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국토해양부 국감 상황을 지켜보는 관계자들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뉴스 쏙]

의원실-소속기관 갈등땐 ‘총알받이’
요청자료 빼내느라 친정서도 미운털
“전엔 승진코스 보직…요즘엔 3D업종”

국회를 상시 출입하는 이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국회 사무처 직원, 출입기자들이다. 이들은 국회 정문을 들어서면 각자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하지만 상시 출입증을 받고도 ‘갈 곳 없는’ 이들이 있다. 갈 곳은 없어도, 어디에나 나타나는 그들. 각 부처·기관의 ‘연락관’들이다.

이들은 소속된 정부 부처·산하기관과 국회의 소통을 담당한다. 각 의원실의 자료 요구를 받고, 가끔은 민원도 해결한다. 중앙 부처와 산하기관, 공기업과 국가정보원, 검찰·경찰 등에서 파견된 이들을 따져 보면 최소 500여명에서 최대 1000여명까지로 추산된다.

이들은 부처에선 5급 사무관급, 공기업의 경우 차장·부장급의 중견 간부들이다. 나름대로 연륜과 능력을 겸비해 선발된 각 기관의 ‘대표 선수’들이다. 이들은 평소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정도 국회로 출근한다. 아침 7~8시 사이에 열리는 의원들의 조찬 회동을 챙긴 뒤 오전에 상임위 소속 의원실을 돌며, 보좌관들의 자료 요청을 ‘접수’하고 정보를 수집한다. 점심은 대부분 의원 보좌관들과의 약속이다. 식사 뒤엔 다른 기관의 연락관들과 삼삼오오 만나 정보를 공유한다. 한 정부 산하기관 연락관은 이를 두고 “기관간 이해증진 및 친목도모의 시간”이라고 정리했다. 오후엔 오전에 못 챙긴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업무를 반복한다. 국회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특히 소속 기관장이 정치인 출신이면 원내대표회담, 국회 일정, 각 당 의원총회도 챙겨 보고해야 한다.

국회 안에서 누구보다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지친 몸을 기댈 곳은 마땅치 않다. “모든 곳이 다 내 방”(한 공기업 연락관)이라고 호기롭게 외쳐 봐도, 사실 주된 안식처는 국회 후생관 매점과 의원회관 각 층 귀퉁이에 놓인 작은 의자다. 후생관 옆 등나무 벤치도 ‘보금자리’였지만, 요즘엔 날이 추워져 오래 앉아 있긴 힘들다.

하지만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이런 작은 ‘여유’도 사치다. 해당 기관이 소속된 상임위 의원들의 질의서를 미리 입수하는 것은 연락관들의 가장 중요한 업무다. 질의서를 미리 받아 해당 부처·기관장들의 답변을 미리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한 연락관은 “의원실 앞을 기웃거리다 보좌관이 ‘이따가 오라’고 하면, 그 층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완성될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다. 보좌진들을 위해 초밥·피자·통닭 등을 나르기도 한다. 하지만 국감 과정에서 질의서에 없는 질문이 나와 기관장이 당황하면, 연락관들의 마음은 숯덩이가 된다.

게다가 의원실과 소속 기관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면 ‘총알받이’ 노릇도 이들의 몫이다. 나이 어린 보좌관과 갈등이 빚어질 때도 결국 굽히고 들어가는 건 연락관들이다.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일주일 내내 술 약속을 피하기 어렵다. 한 공기업 연락관은 “밤새 보좌관이랑 술을 마시고, 다음날 사장과 의원 조찬에 맞춰 달려왔는데, 사장이 ‘쟤 정체가 뭐냐, 왜 낮이고 밤이고 취해 있냐’고 질타해 섭섭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소주 3잔이던 그의 주량은 국회 출입 5년간 소주 3병으로 늘었다. 국회 앞 보도블록에서 잔 게 두번이다.

한때 국회 연락관이 주요 승진코스로 ‘각광’받기도 했지만, 요즘엔 ‘3D 업종’으로 꼽힌다. 선후배·동료의 의견을 묻는 다면평가가 도입되면서, 승진의 장점도 거의 사라졌다. 한 연락관은 “의원실에서 요구한 자료를 받아 내기 위해 해당 부서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데, 그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동료·후배들 점수가 거의 빵점”이라고 푸념했다. 또다른 연락관은 “예전엔 승진하면서 (국회를) 떠났는데, 요즘엔 보직변경으로 떠난다”고 털어놨다. 최소 5년이던 연락관 근무기간은 최근엔 평균 2~3년 정도로 줄었다. 반년도 못 견디고 나가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왜 굳이 힘들고 험한 길을 갈까. 이들은 국회 생활에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을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이다. 한 공기업 연락관은 “당장 인사에 반영되진 않더라도, 고위급으로 갈수록 그간 쌓아놓은 인맥이 큰 힘을 발휘한다”고 귀띔했다. 또다른 연락관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회사에만 있으면 할 수 없는 많은 경험을 하게 되니 그 자체가 훌륭한 공부”라고 말했다. 오늘도 국회 한 귀퉁이에서 마음 졸이지만, 연락관들의 시계는 어쨌든 오늘도 돌아간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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