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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31 22:49 수정 : 2009.01.03 15:23

[매거진 esc] 신년특집 한복여행단 고! 격투기 출전 큐!
괜찮아, 잘 될거야♬ 2009년 50인이 꿈 꾸는 첫경험

“계획을 지우자! 이기적이 되자!”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리를 텅 비우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며칠 전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눈은 말똥해져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껏 내 삶은 나보다는 남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나의 기가 세상에 뺏기고 만 것 같다. 그래선지 올해 1년만이라도 흔히 이야기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 보련다. 화내고 싶을 때 막 화내 버리고 울고 싶을 때 막 울어 버리는, 유치할 정도의 삶을 살아 봤으면 한다. 그런데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 절충이라도 해야겠다. 일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몇 달 전에 사놓고 아직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는 홈시어터로 영화를 맘껏 보고 싶다. 사진가들의 숙명인 일을 따내려는 노력보다는 머리를 쉬게 하는 2009년도가 되었으면 한다. ‘무계획’(No planning), 이것이 하고 싶다. 게으른 2009년이 되자. Relax! Relax! No planning! Be selfish!

준초이/사진가


“내 인생의 사진집, 누드도 있다네”


음, 내 생애 최초의 사진집을 만들고 싶어요! 사진처럼 이 시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건 없으니까. 내가 60년대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했어요. 매력 넘치는 뉴욕의 이스트빌리지부터 2008년 다이내믹한 서울의 모습까지 정말 내 카메라에 담아 왔거든. 서울과 뉴욕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중간에 여행했던 베트남, 콜롬비아, 모스크바, 유럽의 사진들을 쫙 넣는 거지, 야∼그럼 재밌겠다! 책이 처음은 아니지, <올드보이 한대수>는 스토리 위주의 책이었다구. 400페이지 정도의 사진책에는 에세이도 넣을 거야. 에세이가 사진을 따라가는 거지. 참 누드사진도 있다! 하하하! 내 인생의 사진집을 정리해 버릴 거야. 내 방에 필름이 가득 있거든, 포토샵도 해야겠지. 근데 출판사에서는 사진집이 잘 안 팔린대.

한대수/가수


“시어머니 함께 여행가요”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은 늘 다른 여자를 착취하며 살 수밖에 없다. 친정어머니와는 한동네에, 시어머니와는 같은 구에 살고 있는 이유다. 착취는 매일 하는데, 보상은 가뭄에 콩 나듯 해드린다. 몇 해 전 시어머니께 두 딸을 맡겨 놓고 친정어머니와 둘이서 일본 온천 여행을 다녀왔다. 료칸에서 내놓는 정통 일식을 마다하고 끼니마다 돌솥비빔밥을 찾아 나서는 친정어머니가 야속한 순간도 있었으나, 설경을 바라보며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던 일이며, 둘만이 있는 호젓한 노천탕 위로 녹아내리던 함박눈은 새록새록 그리움으로 남는다. 아직까지는 그 온천행이 우리 모녀가 단둘이 한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 여행길에서, 다음에는 딸 없이 아들만 셋 둔 시어머니도 함께 모시고 와야지 생각했는데 아직도 시도를 못했다. 동행하는 ‘엄마’가 둘이면 난감한 순간이 더 많겠으나, 그만큼 추억도 진해지리라.

송수정/사진기획자, 2009월드프레스포토 심사위원


“일년 한정 예술식당의 주방장 모십니다”

내겐 역시, 음식이다. 기간마다 예술가가 바뀌는 전시장, 시간마다 가수가 바뀌는 나이트클럽 같은 한시적인 식당, 게릴라식당을 열어보고 싶다. 1년, 시한부식당.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을 찾은 이들은 음식과 전시 혹은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즉 주방장은 예술가이고 공연자다. 한 계절 혹은 한 달씩 음식과 전시를 동시에 열고, 연극인은 음식과 공연을 한다. 예를 들자면 나 배병우는 생선요리를 한달 동안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내놓는 동시에 바다 사진과 섬, 물고기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다. 화가 주방장은 음식과 그림전을, 연주자는 음식과 연주를, 때마다 그림 사진 혹은 연주를 팔아 운영하는 것이다. 이익이 남는 것은 남을 돕고, 모자라면 운영자가 책임지면 된다. 이름하여 일 년 한정 예술식당. 글쎄, 난 이 아이디어와 한 번의 전시와 음식은 책임 질 수 있을 것 같다. 물주 나서 보세요.

배병우/사진가


“돌려받은 세금, 기부로 조직해봅시다”

고맙게도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고 한다. 집도 땅도 없으니 큰 도움이야 받지 못하겠지만, 한 푼이라도 덜 내게 된다면 그래도 고마운 일일까? 그럴 일만은 아닐 거다. 세금이 깎이는 만큼 사회복지가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어려운 사람은 더 어려워진다. 가난한 사람도 장애인도 비영리조직도, 보조금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모든 사람이 어려워질 거다. 올해에는 세금 깎인 사람들이 나서서 스스로 그 차액만큼 기부에 나서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뜻 맞는 사람 몇 명이 모여서 고생길에 나선 엔지오 활동가 한 명 먹여살리는 ‘활동가 계’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미국에는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이 함께하는 ‘책임 있는 부’(Responsible Wealth) 같은 모임도 있지 않나? 한국판 ‘책임 있는 월급쟁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경제와 음식을 버무린 맛있는 소설 집필”

직업적 일 외에는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지 않는 편이다. 만에 하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평생의 꿈인 소설 쓰기를 위해 소설 작법을 공부하고 싶다. 강단에서 물러난 뒤 소설을 쓰는 것이 평생의 꿈이다. 전공인 경영·경제는 물론 취미인 스키·식도락·와인 등의 소재를 ‘맛있게’ 버무린 소설을 쓰고 싶다. 무거운 주제보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로 쓰일 만한 가볍고 톡톡 튀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 이를 위해 소설 작법 책도 읽고 다른 소설가의 작법도 어깨너머로 공부하고 싶다.

두 번째 꿈은 영국의 권위 있는 레스토랑 안내서 <더 레스토랑>에 소개된 ‘50대 레스토랑’을 모두 방문해 맛보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이 잡지의 선정위원으로 뽑혔다. 올해 선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선정된 레스토랑을 다녀보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예종석/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 칼럼니스트


“임도 만나고 여행도 하고”

올해 생일이 지나면 만 40살이 된다. 만 40살이 되기 전, 30대의 마지막을 보내기 전에 멋진 사랑을 꼭 해보고 싶다. 외모도 전혀 무시할 순 없지만, 더 중요한 건 나와 기호가 맞아야 한다는 거다. 옷이나 음식·취미 등이 잘 맞는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가령 나는 텔레비전에서 스포츠를 보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드라마를 보자고 우기면 싸우게 될 거다. 사소한 채널 싸움이지만, 그런 것도 피하고 싶다. 만약 정말 사랑을 하게 된다면 여자친구와 여행을 가고 싶다. 예전에 연애하면서도 여행을 갔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항상 크게 싸우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둘의 사랑을 돈독하게 키우는 멋진 ‘사랑 여행’을 하고 싶다.

김성일/스타일리스트


“달리고 싶다. 아우토반을”

독일에서 2년 동안 맥주 양조 과정을 공부하면서 독일 곳곳을 여행했다. 그런 내가 못 해 본 게 있다. 바로 잘 달리는 차를 몰고 아우토반을 쌩쌩 달리는 것! 그래서 새해엔 꼭 아우토반을 질주하고 싶다. 그뿐이 아니다. 올 9월에 독일에 가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하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다. 맥주의 본고장답게 수백 가지에 이르는 맥주가 선보이는 최고 최대의 축제다. 비슷한 시기에 드림테크 행사도 열린다. 술은 물론 모든 종류의 음료와 음료 제조 기술이 선보이는 자리다. 올해 독일에 간다면 3년 만의 방문이다. 내가 공부하던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우토반은 얼마나 신날까? 독일 여행. 2009년의 꿈이다.

오진영/웨스틴조선호텔서울 하우스맥주 전문점 오킴스브로이하우스 브루마스터


“가족과 함께 오페라 감상”

올해 꿈은 ‘가족’이다. 매일 자료와 씨름해야 하는 탓에 딸·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공보관 업무까지 맡으며 이런 경향은 더 심해졌다. 매일 이어지는 기자들과의 술자리…. 새해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뮤지컬·연극·스포츠경기 가운데 어떤 것이든 꼭 한 가지는 가족과 함께 관람하겠다. 성악을 좋아해 오페라나 뮤지컬을 자주 보고 싶다. “나를 이해해 달라”는 아빠의 노력인 셈이다. 다행히 큰딸이 올해 대학 새내기가 돼 조건은 좋다. 자녀와 함께 보낼 시간이 너무 기다려진다.

오석준/대법원 공보관


“싸부님! 생일 축하드려요”

직업은 저술업자지만, 몇 해 전부터 춤에 푹 빠진 ‘초보’ 댄서이기도 하다. 올해 5월에는 꼭 뉴욕에 가서 프랭크 매닉의 95살 생일잔치에 참석하고 싶다. 프랭크 매닉이 누구냐고? 스윙 댄스(1930년대 미국에서 생긴 재즈의 한 양식인 스윙에 맞춰 추는 빠른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 없다. 그는 30년대 미국 최고의 스윙 댄서였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다 2차대전이 터지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참전해 독일군과 싸웠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조국에 스윙 열풍은 존재하지 않았다. 직업적인 스윙 댄서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프랭크 매닉은 결국 우체국에 취직해 공무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스윙에 빠진 일단의 젊은이들이 30년대 매닉의 스윙 댄스를 촬영한 영상을 보게 된다. 매닉의 마법 같은 춤사위에 놀란 젊은이들은 우체국 직원으로 살아가던 매닉을 찾아간다. 결국 80년대 부활한 스윙의 인기에 힘입어 매닉은 다시 스윙 댄스의 왕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5년마다 큰 생일파티를 연다. 95살 생일에는 꼭 프랭크 매닉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이명석/저술업자·<고양이라서 다행이야>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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