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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05 20:23 수정 : 2009.01.05 20:23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골목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층집이었다. 요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피식 웃을 일이지만, 그땐 이웃들이 중국집에 자장면 시킬 때나 쌀집에 쌀 배달 시킬 때면 우리집이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이층집 앞집이라거나 이층집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 집이라고만 하면 더 설명이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파트 개발붐이 일면서 훨씬 더 높은 아파트들이 바로 옆에 들어서고, 우리집도 아파트로 이사 가게 되면서 난 그 이층집을 떠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더는 아이를 콘크리트 숲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층집처럼 먼 훗날, 아이의 추억이 머무를 수 있는 집과 동네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주말마다 집을 지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고, 운이 좋게 6개월여 만에 우리가 원하던 동네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근교에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사서 고생한다며 말렸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 우리는 이미 마음속에 그린 집과 두근두근 사랑에 빠진 뒤였다.

그러나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도 엄연한 현실이 되는 것처럼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문제에 하나씩 부딪치기 시작했다. 건축비가 모자라 평수를 줄이기도 했고, 예상보다 건축기간이 길어져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완공된 집 앞에 서자 그동안의 모든 마음고생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물론 집은 당연히 이층집이었다.

그리고 ‘우린 그림 같은 집에서 그림처럼 살았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그림 같은 집에서 살게 된 대신 우리는 두 배는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집안만 치우면 끝났던 청소를 집 밖까지 해야 했으며, 집 안팎을 관리하느라 남편은 반목수가 되어야 했다. 여름엔 깎고 돌아서도 며칠을 못 가 무성해지는 잔디와 겨울엔 치우고 돌아서도 또다시 쏟아지던 눈과의 씨름 ….

그런데 그렇게 두 배로 부지런해지자 이제껏 놓치고 살았던 일상의 소소함이 주는 행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계절이 오고가는 것을 마당에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알게 되고, 뚝딱뚝딱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건강한 식탁을 차려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가르침들 …. 먼 훗날, 이 시절을 추억으로 꺼내 보는 날이 온다면 그때쯤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 같은 집에서 그림처럼 살았다고.

이경미/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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