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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 vs <가십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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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안인용의 연예가 공인중계소
만화를 그다지 즐겨 읽는 편도 아니고, 학원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데다, ‘팬질’에도 도통 취미가 없어 한창 <꽃보다 남자>(꽃남) 열풍이 바다를 건너 불어왔을 무렵에는 냉소로 일관했더랬다. 그러나 3년 전 일본판 드라마 <꽃남>을 우연히 한번 보고 난 다음 난데없이 꽃밭을 헤맸다. 뒤늦게 판타지 학원물의 마력인 끝없는 비현실성에 눈을 떴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도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꽃남>과 <꽃남>에 견줄 만한 또 하나의 미국판 판타지 학원물 <가십 걸>을 이번주 중계소에 초대했다. 일본판 <꽃남>은 시즌 2까지 마쓰모토 준과 오구리 슌 보느라 정신을 놓았고, 미드 <가십 걸>은 세레나와 블레어의 패션 구경에 넋을 놓았다. 한국판 <꽃남> 역시 시작 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니 정신을 놓기는커녕, 자꾸 정신을 차리게 된다. 상류층 학교의 퀸카 및 킹카 평범한 남녀의 ‘재산 보유 내역’을 뛰어넘는 사랑 얘기야 그러려니 하고 보겠는데, ‘상류층 학교’가 자꾸 눈에 밟힌다. 남의 나라 드라마에서는 상류층 학교라는 배경이 판타지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였지만, 막상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상류층 학교를 보니 이건 판타지가 아니라 징그러운 현실이다. 상류층 학교에 최상류층 아이들, 무심한 폭력, 흔적조차 없는 윤리성에 철저한 경제관념까지. 이 드라마가 ‘판타지 학원물’이라면 여기서 ‘판타지’란 상류층 남학생과 가난한 여학생의 사랑이 아니라 상류층 학교를 만들고 싶어 안달난 우리 정부가 교육에 대해 꾸는 꿈에 가깝다. <꽃남>에서 잔디(구혜선)가 도맡고 있는 ‘싸가지 남학생 사람 만들기’는 캔디 스타일 여주인공의 임무가 아니라 정부가 교육을 통해 해야 하는 책임이자 임무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한국판 꽃남 4인방에 대한 긍정적인 몰입을 자꾸 방해하고 있으니, 이러다가 피켓 들고 교육부 앞에 달려갈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드라마 몰입 방해하는 교육 정책 철회하라, 철회하라!” nico@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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