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07 20:50
수정 : 2009.01.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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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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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한겨레> 베이징·도쿄 특파원이 전하는 현지의 생생한 맛과 삶
언론사에서 외국 음식을 가장 자주 먹는 사람은 누구일까? 요리 담당 기자일까? 접대할 일이 많은 경영관리직 간부나 사장일까? 정답은 특파원이다. 이들은 현지인들 사이에서 현지 음식을 먹으며 일하기에 누구보다 현지 음식문화를 생생하게 접한다. 1946년부터 고정 요리면이 있고 수준 높은 요리기사로 유명한 <뉴욕 타임스>에서 외국 출장이 잦은 정치부 고참 기자가 종종 요리 기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강문 베이징 특파원과 김도형 도쿄 특파원이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훠궈(중국식 샤브샤브)와 일본식 도시락(벤토) 이야기를 전한다.
건륭제가 사랑한 훠궈
“훠궈 먹으러 가자!”
요즘 서울에서 온 친구들에게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적지 않은 이가 ‘훠궈’(火鍋)라고 답한다. 여의도나 신촌에서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참에 본고장 맛을 보고 싶다며 침을 꼴딱인다. 한국 사람들이 발음하기조차 힘든 이름까지 정확히 대가며 먹고 싶어하는 중국요리라니! 자장면과 탕수육에 이어 새로운 ‘중국 요리 스타’가 탄생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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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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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훠궈 맞아?” ‘둥라이순’(東來順)이라는 베이징식 훠궈집으로 안내하면 으레 듣는 핀잔이다. 훠궈가 서울에서 먹던 것과 영 딴판이라는 것이다. 훠궈 특유의 맵싸하고 얼얼한 맛도 없고, 무엇보다 국물이 빨갛지 않고 희멀겋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 집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훠궈의 명가’라고 다독여도 떨떠름한 표정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날 ‘하이디라오’(海底撈)라는 쓰촨식 훠궈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돈다. 혓바닥이 마비될 정도로 매운 빨간 탕에 양고기를 데쳐 꿀떡꿀떡 삼킨다. 젓가락 포장지에 ‘좋은 훠궈는 스스로 말한다’(好火鍋自己會說話)는 문구를 새길 만큼 맛에 대해서만큼은 배짱을 튕기는 이 집의 자부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훠궈는 몽골과 만주의 유목민들에게서 유래한 ‘중국식 샤브샤브’다. 솥냄비(鍋)에 맹물이나 육수를 넣고 불(火)로 끓여가며 양고기나 쇠고기·새우·배추·버섯·두부·국수 따위를 익혀 먹는다. 재료가 다양해 재료 접시만으로도 탁자가 가득 찬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접시를 놓을 때 ‘앞에는 날짐승, 뒤에는 길짐승’ ‘왼쪽에는 물고기, 오른쪽에는 새우’라는 식으로 줄을 세운다.
둥라이순의 훠궈는 그 원형에 가장 가깝다. 중국의 무슬림을 가리키는 회족 출신이 1903년 베이징 왕푸징에서 노점을 연 게 시초다. 이곳의 훠궈는 특별히 ‘솬양러우’라 한다. ‘양고기를 뜨거운 물에 씻어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둥라이순 훠궈를 먹을 때는 젓가락으로 양고기를 집어 탕에서 서너 번 저어 데쳐 먹는 게 제격이다. 이 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구중궁궐에 들어앉은 청의 황제들도 잊지 못했다. 특히 건륭제의 사랑이 유별났다. 양쯔강(장강) 이남 지방을 순시할 때도 항상 훠궈를 대령하도록 했다. 가경제 때는 정월 자금성에 백관들을 모두 불러놓고 훠궈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날 궁궐에 놓인 솥냄비가 1550여 개였다고 한다.
둥라이순의 창업자는 이 맛을 살리려 내몽골 초원에서 기르는 꼬리가 짧은 면양의 고기만을 썼다. 그 가운데서도 두세 살 된 거세한 숫양과 새끼를 한 번만 낳은 암양의 고기만을 고집했다. 이들의 양고기는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적절한데다 육질이 푸석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둥라이순 훠궈는 ‘비리지 않고 떫지 않으며 신선하고 부드럽다’는 명성을 얻었다.
훠궈는 지방마다 특색이 뚜렷하다. 훠궈의 탕과 넣어 먹는 재료가 각양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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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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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는 백가지고, 그 맛은 천가지다’(鍋百味千)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광둥성의 ‘해산물 훠궈’는 맛이 무궁무진하고, 쑤저우와 항저우의 ‘국화 훠궈’는 향기롭다. 저장성의 ‘개고기 훠궈’는 신선이라도 참지 못할 정도로 고소하다.
쓰촨식 훠궈는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다. 베이징에서도 훠궈집 하면 대개 쓰촨식 훠궈집을 가리킨다. 쓰촨성 특유의 향신료인 ‘마자오’(麻椒)를 넣은 탕에 양고기 따위를 익혀 먹으면 처음엔 혀가 얼얼하고, 다음엔 입 전체가 타는 듯하다, 나중엔 목구멍이 맵싸해진다. 한번 맛을 들이면 발길을 끊기 어렵다. 그들은 우스갯소리로 마자오를 ‘매운 아편’이라고 부른다.
글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경제불황에 250엔짜리 벤토도 인기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오늘 무슨 기사 쓰나?” 하는 고민보다 “오늘 점심 뭘 먹지?” 하는 배부른 고민을 한다. 도쿄 체류 2년이 넘어가면서 혼자 점심 먹기에 어지간히 익숙해졌지만 점심메뉴 선택은 늘 아쉬움이 남는다. 내 점심의 90%는 주오구 히가시니혼바시에 있는 도쿄지국 사무실 반경 200m를 넘어서지 못한다. 1인분 800엔대의 값싼 초밥집, 1000엔 안팎의 비교적 고급인 수타 소바·우동집, 싸고 맛도 괜찮은 한국 음식점, 1000엔짜리 생선 메뉴가 먹을 만한 스페인 음식점 등 네 곳을 주로 다닌다.
가끔 기사에 쫓길 때 많이 찾게 되는 곳이 라면집과 도시락(벤토) 가게다. 일본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것도 라면과 도시락이다. 일본에서 라면은 버젓한 끼닛거리다. 인스턴트식품이 아니라 가게마다 지역마다 면발과 국물을 직접 제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골라 먹는 맛이 상당하다. 가격도 500~800엔대로 한국 기준으로 싸진 않지만 일본의 점심메뉴 가격으론 적당하다.
일본인의 라면 사랑은 지극한 것 같다. 24년 전 이타미 주조 감독이 만든 영화<단포포> (민들레)는 파리 날리는 라면가게 아줌마가 우연히 만난 ‘라면의 달인’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아 일가를 이루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렸다. 일본 라면집의 또다른 특징은 맥주를 반주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라면과 맥주의 궁합은 언뜻 안 맞을 것 같지만 일본 라면 국물의 약간 느끼한 맛에 맥주의 톡 쏘는 맛이 어울려 의외로 먹을 만하다.
도시락은 일본 직장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점심 메뉴의 하나다. <한겨레> 도쿄지국 앞의 한 도시락 가게는 상호 없는 허름한 가게지만 낮 11시30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선다. 절임 반찬과 생선구이, 또는 쇠고기구이를 곁들인 반찬 네댓 가지에 돼지고기 국물에다 뜨근뜨근한 밥을 즉석에 퍼담아 주는데 500엔(약 7200원) 안팎의 적당한 가격이어서 주변 다른 가게보다 인기가 높다. 도쿄 다이토구의 도시락 전문점 ‘파쿠파쿠’는 250엔짜리 도시락을 내놓아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점심을 ‘자가 벤토’로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한국과 크게 구별되는 점심 풍경이다. 설문조사 기관인 인티지가 지난 12월 초 직장인 2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직장인 36%가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고 한다.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직장인들이 먹고 마시는 데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여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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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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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직장인들이 대개 혼자서 밥 먹고 술자리에서도 쫀쫀하게 나눠 내는 것은 문화적 측면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도 크다. 민간기업 직장인들의 급료는 1997년 평균 467만엔(약 6768만원)을 정점으로 9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다 2007년 10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래도 11년 전보다 30만엔 가량이 줄었다. 또 비정규직 확산으로 연봉 200만엔(2898만6000원) 이하의 저소득 직장인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올해 일본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등 금융위기의 여파에 휩싸여 일본 직장인들의 ‘값싼 점심’ 행렬은 더욱 길어질 것 같다.
글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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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식도락클럽(yepok.cyworld.com·클럽장 김한석)이 추천한 서울 시내 훠궈전문점 4곳
⊙ 중경신선로 : 오랫동안 꾸준히 인기가 많은 집임. 1인당 2만5000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추가고기는 9000원.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근방. (02)3775-1688(www.chinahotpot.com)
⊙ 동북화과왕 : 싸고 맛이 좋아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집. 큰 것이 2만5000원이고 추가고기는 5000원, 1만원, 1만5000원 순서. 1호선 동대문역 4번 출구 바로 옆 골목(1호점). (02)745-5168.
⊙ 불이아 : 위치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찾는 집. 1인당 1만6500원이고 추가고기는 1만원. 홍대역 1번 출구. (02)335-6689(www.bulia.co.kr)
⊙ 마오 : 고기양이 좀 적지만 분위기는 좋다. 1인당 2만원이고 추가 양고기 1만2000원이다. 강남 학동 사거리 무등산 골목. (02)514-8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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