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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낮기온은 25~26도를 넘나든다. 숲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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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 ①
1200㎞ 대장정 중 만난 일본인들의 따뜻한 마음과 선물
도보여행가 김남희씨가 일본 시코쿠를 걸었습니다. 절 88곳을 1200㎞로 잇는 불교 성지순례 길을 걸었습니다. 한국 여행자들에게 아직 낯선 일본의 보석길입니다.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을 이번주부터 연재합니다.
걷기 시작한 지 사흘째. 간결한 삶으로 돌아왔다. 산티아고를 걷고 난 이후 3년 만이다. 서른아홉의 가을, 1200㎞의 도보 여행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됐다. 마흔을 앞둔 하루키에게 들려왔다는 ‘먼 북소리’도 없었고, 절박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지도 않았다. 간절한 비원도 오랜 망설임과 긴 준비도 없었다. 6개월을 넘긴 서울살이가 지겨워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고 집을 나섰을 뿐. 일주일에 두 번씩 석 달 동안 일본말 공부를 하고, 구글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찾아 읽은 게 다였다. 무수히 떠났던 여행들 중 가장 하늘거리는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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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길은 ‘2인 동행’ 하는 길이다. 홍법대사가 늘 함께한다는 뜻이다. 본당에서 참배 중인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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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동행’ 표지판이 준 불안감, 제대로 오해했네
10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시코쿠의 낮기온은 25~26도를 넘나든다. 땀을 쏟으며 걷는 길, 길 건너편에서 고운 처녀가 달려와 “오헨로상, 오세타이데스, 도죠!”(순례자님, 선물이니 부디 받아주세요)라며 빵 봉지를 건넨다. 이 길이 품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비밀은 ‘오세타이’다. 오세타이는 시코쿠 주민들이 순례자들에게 주는 선물을 뜻한다. 주민들에게 오세타이를 주는 전통이 있다면 순례자들에게는 그 선물을 거절하지 않는 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걷기 시작한 첫날부터 쏟아진 음료수와 빵 같은 오세타이를 ‘전통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감사히 받고 있다.
내가 외국인, 그것도 일본어를 거의 못 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시코쿠 사람들은 유난한 호의를 보여준다. 내가 알아듣건 말건 계속 혼잣말을 하는데, 추측하는 내용은 이렇다. “워찌 아가씨 혼자 걸을랑가. 내 맘이 짠혀 죽겄네. 말도 못 함시롱 반벙어리로 워찌 돌아다니는겨.” “스코시 다이헨데스케도 다이조부데스!”(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유장하고도 화려한 시코쿠 사투리와 나의 참혹한 일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식으로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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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1번째 절 료젠지(靈山寺)에서 6일차 21번째 절 타이류지(太龍寺)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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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체 1200㎞ 중 가장 힘든다는 구간이다. 해발고도 700m 12번 절 쇼산사(燒山寺)는 ‘마의 산’을 넘어야 다다를 수 있는 곳. 가파른 오르막이 땀을 비 오듯 쏟게 만든다. 게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2인 동행’이라는 팻말이 소심하고 겁 많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길이 유난히 적막해서 사고가 잦은 걸까? 둘이서 함께 다니라는 경고판이 저토록 많이 붙은 걸 보니. 전나무숲 사이로 이어진 긴 오르막 끝에 홍법대사 동상이 서 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는다. 이럴 수가. ‘2인 동행’은 홍법대사님이 늘 함께한다는 뜻이란다. 나의 무지함에 손을 들고 만다.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친 끝에 마침내 절에 들어선다. 본당으로 가는 길, 우람한 삼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늙은 나무들 덕분에 절의 품격이 한층 높아졌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물집은 화끈거리고, 어깨는 내려앉는다. 죽음의 아스팔트 내리막이 끝나니 마을이 보인다. 햇살 환한 일요일 오후, 거리는 한적하다. 폐지 수집 안내방송을 틀어놓고 서 있는 트럭. 어디선가 진하게 풍겨오는 은행 냄새. 낚싯대를 메고 달려가는 소년들. 정원에서 석류를 따는 노부부가 건네주는 붉은 석류 한 알. 들판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 조용한 골목을 울리는 내 지팡이 소리.
여관에 들어서니 며칠 새 낯을 익힌 세쓰카 아줌마와 기미코 아줌마가 반갑게 맞아준다. 도쿄에서 온 두 분은 정년퇴직을 한 간호사다. 세쓰카 아줌마는 영국에서 1년 어학연수를 했다. 오랜 꿈이었기에 퇴직하자마자 혼자 영국으로 건너가 1년이나 머물렀단다. “나이 들어 공부를 하려니 정말 힘들었지. 이 나이에 웬 고생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무척 행복한 날들이었어!” 예순 나이에 꿈을 이룬 아줌마가 어여쁘다. 두 사람은 모두 독신이다. 한국에는 그 나이의 독신이 드물다고 하니 일본에는 많단다. 옆자리의 마쓰코 아줌마가 “나도 지금은 독신이야. 애들은 넷이나 되지만!”이라며 웃는다. 세쓰카 아줌마 왈, “일본 남자들은 정년퇴직하고 연금받는 60살만 되면 벌벌 떨어. 아내가 갑자기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중히 인사하고 가방 싸서 나가거든. 이혼 서류만 달랑 남긴 채.” 마쓰코 아줌마가 잔을 든다. “자, 그럴 일이 없는 우리 독신 여성들끼리 건배나 할까?” “건배!” 더운 밥이 있고, 등을 붙일 잠자리가 있고, 낯익은 얼굴이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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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향해 걸어오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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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우체국
지난밤 내내 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만 했지 처마 밑에 내건 빨래 생각은 미처 못했다. 본분을 잊고 낭만에 빠진 덕에 젖은 옷을 체온으로 말리며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구름이 몰려와 앞산의 이마를 희롱하는 모습이 가슴을 서늘하게 씻어준다. 오늘의 목표는 오사카의 친구 집으로 필요 없는 짐을 보내는 것. 단 한 권 챙겨온 하루키의 영문판 소설책도-이 책을 들고 온 건 오직 재생지라 가볍다는 점 하나였는데-, 아직은 필요 없는 겨울옷도-이곳의 날씨는 과연 겨울이 있을지 의심하게 한다-, 일어사전 때문에 들고 온 전자수첩도-사전을 써 가며 대화할 만큼의 수준이 절대 안 되므로 무용지물이다-, 여분의 카메라 건전지-여긴 매일 전기가 들어오는 나라다-도 모두 보내면 2㎏ 이상 줄일 수 있겠지. 우체국에 도착하니 청소 중이던 직원들이 반갑게 맞는다. 소포를 보내고 난 뒤 이 우체국이 문을 연 이래 가장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 우체국 안의 현금자동지급기(ATM)가 내 카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전직원(4명)이 기계로 몰려가 카드를 넣고 빼기를 수십 번, 머리를 맞대는 비상 회의가 이어진다. 곧 여러 곳과의 전화통화 끝에 영어를 하는 은행 직원을 연결해 주지만 그녀라고 해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별수 없이 짐을 챙겨 일어서는데 직원들이 한없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오늘 어디서 머무를지 결정했어요?” “아뇨, 하지만 17번 절 근처까지 가려구요.” 지도를 펴든 그들, 절 주변 10㎞ 내의 모든 은행의 이름과 위치를 꼼꼼히 짚어준다. 그 사이 우체국장님이 ‘오세타이’라며 작은 박스를 건넨다. 우체통 모양의 빨간 저금통이다. 예뻐서 잠시 만지작거리는 걸 보신 걸까. 소포 보내기 전에 주셨으면 더 좋았을걸. 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우체국을 떠난다. 동짜몽을 빼다박은 우체국장님과 이곳 직원들에게 ‘지구에서 가장 친절한 우체국’ 1등상을 드리며.
오늘 머물 곳은 순례자를 위해 절에 마련된 숙소 ‘슈쿠보’다. 저녁 예불차 본당으로 내려간다. 가사를 늘어뜨린 스님들이 일제히 경을 낭송하는 장엄한 모습을 기대했는데, 예상과는 다르다. 스님 한 분이 순례자들을 위해 반야심경을 읊을 뿐이다. 저녁상에는 놀랍게도 사시미가 올라 있다. 절간에 풍기는 생선 비린내라니. 우리 스님들이 이 공양을 받으셨다면 기뻐하셨을까, 노하셨을까? 저녁을 먹고 난 뒤 절마당을 혼자 거닌다. 하늘에는 보름을 갓 지난 살진 달.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밤이 내리고 있다. 고요한 평화가 함께 번지고 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공양간의 보살님이 사탕 한 움큼을 주신다.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는 정성껏 그린 지도를 나눠준다. 좋은 시작이다. 한 시간 남짓 걸었을까. 물집의 통증이 심해진다. 도로변에 주저앉아 물집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맞은편 가게의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가게로 들어가니 반창고와 녹차, 단과자를 내오신다. 이 아저씨, 알고 보니 과자공방을 하시는데 설탕으로 꽃조각을 만드는 명인이다. 가게 안에 전국대회에서 받은 상패와 작품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대상을 탄 꽃마차는 그 크기와 섬세함에 압도된다.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아저씨가 뿌듯한 표정으로 거드신다. “이거 다 먹을 수 있는 거야!” 가게를 나설 때 열쇠고리와 엄청나게 큰 기모노 인형을 오세타이로 주신다. 이상도 하지. 오세타이를 받을 때면 물집의 통증이 사라져 버린다.
여관에 들어서니 순례자들이 가득하다. 식사 중에 누군가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한국 어디서 오셨어요?” 이 산골에서 한국말을 듣다니. “서울요. 근데, 일본 분 아닌가요?” “네, 일본 사람 맞아요. 나고야에서 왔어요.” 친구들과 택시를 대절해 순례 중인 후리이상. 그녀는 한국을 사랑해 스무 번도 넘게 방문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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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낯을 익힌 길벗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기미코, 세쓰카, 마쓰코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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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줌마를 좋아하는 일본 아줌마와 친구 먹다
“왜 한국이 좋으세요?” “한국 사람들이 좋아요. 솔직하고, 액션도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해서요. 처음에 부산에 갔을 때 시장에서 아줌마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물을 끼얹으면서 싸우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어요. 일본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싸우고 또 금세 잊어버리고. 난 한국과 한국 아줌마들이 너무 좋아요. 음식도 정말 맛있고!” 그래서 3년 전부터 나고야의 어학원에서 한국말을 배웠단다. “한국인 친구는 있어요?” “아니요, 아직 없어요.” “그럼, 이제 한 명 생겼네요. 제가 친구가 될게요.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그래 주면 너무 좋죠.” 우린 서로 손을 맞잡고 기뻐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언니의 친구들이 “요카타!”(잘됐다)를 연발한다. “한국 남자들은 박력 있고 남자다워요. 근데, 연애할 때만 잘해 주고, 결혼하면 금방 변하죠?”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일본 사람 앞에서 한국 남자 흉을 보기는 싫으니. “그렇긴 한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결혼해서도 자상해요.” “시코쿠 걷는 동안 일본 남자랑 연애도 해봐요.” “근데, 누구랑 연애를 해요? 할아버지들밖에 못 만났는데 ….” “어, 이상하네, 나는 젊은 청년들도 만났는데 ….” 우린 다 같이 웃음을 터뜨린다. 밤이 깊도록 오랜만에 쓰는 모국어의 즐거움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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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화살표를 따라가는 88개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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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불교성지 순례
빨간 화살표를 따라가는 88개의 절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홍법대사(774~835)의 자취를 따라 절 88곳을 참배하는 순례길. 번호가 매겨진 88곳을 1번 절부터 시계방향으로 순례, 다시 1번 절로 돌아오는 1200㎞의 길.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순례자들은 ‘하쿠이’라 불리는 흰 웃옷을 입고, ‘스게가사’라 불리는 삿갓모자를 쓰고, 홍법대사를 상징하는 ‘즈에’라는 이름의 지팡이를 들고 걷는다. 절에 들어서면 수돗가에서 입과 손을 헹군다. 본당에서 향과 초를 바치고 종을 쳐서 도착을 알린다. 이름과 주소, 날짜를 적은 종이 ‘오사메후다’를 함에 넣고, 시주를 하고 반야심경을 읊는다. 대사당에서 똑같은 차례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납경소에서 납경장에 도장과 서명을 받는다. 순례를 마친 후에는 홍법대사가 입적한 고야산을 방문한다. 빨간 화살표(사진)로 전 구간이 안내되므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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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남희 도보여행가 skywaywal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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