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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14 22:33 수정 : 2009.01.14 22:36

커피향이 펼친 마법. 크룹스 제공

[매거진 esc] KRUPS 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8년 전 중국 산둥성 지난(제남)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의 일이다. 그때 지난은 후줄근한 시골이었지만, 나는 석탄가루가 날리는 시장통에서 서툰 중국어로 흥정을 하고, 난민촌 같은 기숙사에서 사람들과 정체불명의 음식을 해 먹는 일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날마다 소꿉장난 같았다.

그러던 중 자주 어울리던 한 일본인 고고학 박사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 위였는데, 스물두 살의 내게 그는 큰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는 줄곧 나를 “우리 막내” 혹은 “꼬맹이”라 불렀다. 나는 줄곧 ‘철부지 같은 내가 어서 성장해 그 사람처럼 속 깊고 신중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마치 고등학생이 학교 선생님을 짝사랑하듯 매일 그 사람 방을 훔쳐보며 가슴앓이를 했다.

어느 날 전할 말이 있어 그의 방에 찾아갔다. 마침 그 사람은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컵 하나를 더 꺼내며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예상치 못한 초대에 쭈뼛거리는 나를 앉히고 그는 찬장에서 원두를 꺼내 그라인더에 넣고는 느릿느릿 커피를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루를 여과지에 털어넣고는 컵 두 개에 한 번씩 드리퍼(여과기)를 번갈아 올려놓으며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부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이 방으로 들어와 수증기와 함께 희뿌연 먼지가 춤추듯 날리고, 허름한 방 안이 순식간에 커피향으로 가득 찼다. 마술과도 같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그의 손을 나는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건네는 잔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는 쓰고 진한 커피였다. 그래도 맛없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걸 먹고 있노라면 그와 오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머그컵 가득한 쓴 커피를 꾸역꾸역 비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는 설탕·크림을 넣어 달콤하게 먹는 줄만 알던 내게 신선하고도 괴로운 맛의 체험이었다. 그 후 몇 번 더 그는 나를 방으로 초대했고, 그때마다 나는 쓴 커피를 아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눈 날은 설렘으로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다.

1년 후 그 사람도 나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대학교 4학년 땐 취업과 학점 때문에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고, 그럴수록 지난에 머물던 때가 그리웠다. 어느 날 습관처럼 도서관 커피자판기에 동전을 넣다 문득 그 사람 방에서 마시던 커피가 그리워졌다. 과외비를 탄 날 그의 것과 비슷한 드리퍼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하던 것처럼 책상에 컵 두 개를 놓고 커피를 내렸다. 익숙한 향이 방 안에 가득 차고, 낯익은 장면이 펼쳐졌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보며, 아무 말 않고 와 버린 나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배웅 나와 손을 흔들어 준 그 사람이 생각나 눈물이 났다. 방문을 잠근 채 커피 두 잔을 다 비우고 오랜만에 잠을 설쳤다.

그 후 그 사람 생각이 날 때마다, 지난 시절이 그리울 때마다 혼자 쓴 커피를 마셨다. 졸업 뒤 취업을 했고 시간이 흘러 뜻하지 않게 잠시 중국에 머물게 되었다.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하루에 여러 잔씩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고, 가끔 중국의 어린 친구들이 내 방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고단하고 쓸쓸한 타향살이지만 라디오를 틀고, 물을 끓이고,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면 사치를 하는 듯 기분이 제법 우쭐해진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은 혼자여도 덜 외롭다. 나는 어느새 그때 그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렸고, 정말 어른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주명진/인천 부평구 삼산동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 + 원두분쇄기 산타페

〈esc〉가 160년 전통의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시작합니다. ‘커피 향기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을 주제로 사연을 보내 주세요.

⊙ 주제 : 연인ㆍ친구ㆍ가족 등 커피를 마실 때 떠오르는 사람과 그에 얽힌 추억.

⊙ 분량 : 200자 원고지 6장 안팎.

⊙ 응모 방법 :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사연을 남겨 주세요.

⊙ 상품 :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 + 원두분쇄기 산타페( 50만원 상당)

⊙ 발표ㆍ게재일 : 개별 연락/매주 요리면.

⊙ 문의 :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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