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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 앞 소나무숲길. 탐방객들이 산을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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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병학의 걷고 싶은 숲길
숭례문 복원에도 쓰이는 아름드리 황장목 울창한 삼척 준경묘 숲길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 숲길에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해 말 이 숲에서 베어낸 2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헬기가 오십천 둔치로 옮기는 중이다. 불탄 숭례문 복원에 쓸 소나무다. 아름드리 황장목(속이 누렇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들을 베어내 길이 20m 안팎으로 다듬었다. 오십천 둔치에서 다시 일정한 길이로 잘라 강릉 목재소로 옮긴 뒤 손질한 다음 서울로 옮겨지게 된다.“숭례문이 불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준경묘 숲해설가 이분희(43)씨는 숭례문 화재 뒤, 준경묘 숲의 자랑거리인 아름드리 소나무들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지역엔 100~200년생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조선말 경복궁 중수 때도 이곳의 황장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비온 뒤 소나무숲은 딴세상인 듯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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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숭례문 복원에 쓸 금강소나무 20그루를 베어냈다. 오십천 둔치에 부려놓은 소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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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리에서 준경묘로 오르는 숲길 첫머리는 활엽수림 울창한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다. 이분희씨가 자작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작나무는 목질이 단단해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이용됐습니다.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 마구장식 그림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입니다. 유럽 고대인 유적에선 자작나무로 만든 불씨통도 발견됐습니다.”
한동안 비탈 급한 굽잇길을 오르면 앞이 트인 평지가 나타난다. 잠시 땀을 식혀 가는 쉼터이자, 비로소 널찍하고 완만한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준경묘 1㎞’ 팻말 옆에 서자 맞은편에서 불어닥친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이씨는 “여름철 땀을 빼고 이곳에 올라오면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솔향 물씬한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며 “그 맛에 여기까지 온다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흙길은 왼쪽 가파른 사면의 활엽수림과 오른쪽 산 위의 울창한 소나무숲을 좌우로 거느리고 1㎞가량 이어진다. 잎 떨군 활엽수 빈 가지들만 바람에 흔들릴 뿐, 겨울 가뭄으로 쌓인 눈도 없는 산길이다. 그러나 걸어 들어갈수록 소나무숲은 빽빽해지고 푸른 기운은 짙어진다.
키다리 소나무들 사이로 묘역이 모습을 드러낼 무렵, 오른쪽 산기슭 흙계단을 오르면 유난히 늘씬하게 뻗어오른 이른바 ‘미인송’을 만난다. 지난 2001년 속리산 정이품송과 전통혼례식을 치른 소나무다. 정이품송의 품종 보전 교배용으로 전국을 뒤진 끝에 찾아냈다는, 수령 100년의 곧게 자란 소나무다. 이래서 얻은 2세 소나무 200여 그루가 보은의 산림과학원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준경묘 미인송을 시집보냈다고 하는데, 실은 이 나무 수술 꽃가루를 정이품송 암술에 뿌려줬으니 장가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묘역으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먼저 맞아준다. 왕족의 묘 앞에만 세우는 홍살문을 6대조의 묘 앞에 세웠으니, 후대에 왕의 배출을 기약한 명당에 쓴 묘로서 예우를 갖춘 것이다. 묘역은 좌우전후가 모두 울창한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봉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좌우 소나무들이 모두 가지를 묘 쪽으로 뻗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문무백관이 왕을 향해 조아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지만, 실은 소나무가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숲 바깥쪽으로 가지를 뻗었기 때문이다. 다른 얘기도 있다. 이씨는 “묘 위에서 볼 때 좌청룡을 우백호가 누르는 형상인데, 이 때문에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조선시대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한 사례가 일곱 차례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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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9일 헬기로 소나무를 날랐다. 하나의 무게가 5t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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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명당으로 꼽힌다는 삼척 활기리 준경묘 주변엔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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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준경묘 터는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내 최고의 음택 명당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곳 형세는 여인이 누워 무릎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무릎 사이 언덕에 묘를 썼다.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명당의 본모습을 알고자” 오거나 “기를 받으러 온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묘 앞으로 펼쳐진 널찍한 터는 비각의 뒤쪽에서 완만하게 솟아 언덕을 이루는데, 이는 명당의 기가 흘러내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장치라는 얘기도 있다.
이씨는 “비 온 뒤 묘 앞 소나무숲길에 서면, 짙은 안개가 숲을 가득 메우고 넘실거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이 느껴진다”며 “그게 바로 기 아니겠냐”고 말했다.
제각 옆엔 물을 마시면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는 샘이 있다. 샘물은 애초 묘 아래쪽 돌밑에서 솟았으나, 묘 훼손을 우려해 물길을 현재 위치로 돌렸다.
준경묘엔 얽힌 이야기가 많다. 목조 이안사는 고려시대 전주에 살다 모함을 피해 아버지를 모시고 삼척으로 이사해 1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때 세상을 뜬 아버지를 삼척의 명당에 장사 지내고 함경도로 떠났다고 알려진다. 이때 목조는 “백우금관(100마리의 소와 금관)을 써서 장사 지내면 5대손 안에 왕이 날 것”이란 도승의 예언을 듣고, 소 100마리 대신 흰소(백우)와 황금빛 나는 귀릿짚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장사 지냈다고 한다.
국내 최고의 음택 명당, 찾는 이 줄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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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의 걷고 싶은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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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사회과학대 차장섭(51) 교수는 “이양무의 묘가 다른 곳이라는 일부 설이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기록과 전해 오는 이야기, 당시의 풍수지리적 판단 등을 고려할 때 지금 터가 맞다”고 말했다.
준경묘 들머리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나오는 하사전리엔 이양무 장군 부인의 묘 영경묘가 있다. 찻길로 2.5㎞ 거리. 작은 물길 건너 산길을 100m 오르면 제각과 비각이 나오고, 왼쪽 소나무숲길로 다시 100m를 걸으면 영경묘에 이른다. 이곳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으로 역시 울창한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고종 때 준경묘와 함께 정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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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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