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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나서서 열 걸음만 걸어도 가을의 넓은 바다. 시키의 하이쿠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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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곪은 발로 지팡이 의지해 걸으며 만난 친구
크리스티나, 길에서 떠나간 사랑을 용서하다
순례자의 아침은 낫토와 함께 시작된다. 낫토에 날달걀을 섞어 간장에 비벼 먹는 이 음식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침 메뉴. 담백한 일본 음식에 반한 나이지만 끈적거리는 침덩어리 같은 낫토만큼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낫토도 끔찍한데 비릿한 날달걀까지 끼얹다니! 채식주의자에 음치인 내가 고깃집에서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뒤풀이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이번 여행의 ‘위시리스트’인 ‘낫토와 친해지기’는 결국 또 내일로 미뤄지고 만다.
발통증은 참을 수 있어도 낫토는 적응이 안 돼
날이 흐리다. 계곡물이 경쾌하게 따라오는 국도를 지나 산으로 향하는 길. 이른 아침 산은 침묵에 잠겨 있다. 산을 내려오니 작고 단정한 마을. 담장 옆 코스모스가 어여뻐 잠시 배낭을 내려놓는다. 집 앞을 쓸던 아주머니가 잠시 쉬어 가라고 일러주신다. 일기를 쓰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음료수와 과자를 내오신다. 언제 받아도 기쁜 오세타이. 빗줄기가 오락가락한다. 물집의 고통은 가파르게 상승 중. 신발을 벗고 물집의 상태를 본다. 역시나 발가락이 곪고 있다. 오늘은 눈앞으로 바다가 찾아왔고 바람의 냄새도 달라졌는데 눈을 감고 느낄 여유조차 없다. 패자의 몰골로 주저앉아 있는 내게 다가오는 자전거 한 대. 걸어서 순례를 끝낸 뒤 자전거로 관광 중인 청년. 자전거를 세우고 주섬주섬 배낭을 풀더니 한 움큼의 사탕을 건넨다. “감바테(기운내세요).” 그 한마디가 고맙다.
23번 절 야쿠오지(藥王寺)를 1킬로미터 남짓 남기고 길을 잃고 만다. 주차장에 차를 대는 여성에게 길을 물었다. 길을 알려주던 그녀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이라고 답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나, 한국 정말 좋아해요. 한국 드라마와 배우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라며 반색하는 그녀. 아아, 또 한류군. 어디를 가나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일본사람들을 지겹도록 만난다. 그녀가 묻는다. “오늘 저녁에 어디서 머무를 건가요?” “아직 모르겠는데요.” “그럼, 우리 집에서 자고 가요. 언니랑 둘이 사는데 바로 요 앞이에요.” 이거야말로 오세타이의 최상급, 내가 꿈꾸던 경험이 아닌가. 냉큼 그러겠다고 답하고 일단 절로 향한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 외국인 순례자와 마주쳤다. 스웨덴에서 온 크리스티나. 2005년에 파리에서부터 16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단다. “어, 그해 여름에 나도 산티아고 걸었는데.” 그 대목에서 우린 끌어안고, 손뼉 치고, 고함 지르느라 절간의 고요함을 완전히 깨고 만다. 왜 걷느냐는 내 질문에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야(to find myself)”라고 간단히 답하는 그녀. 일본어는 하느냐고 물으니 “사요나라, 아리가토, 곤니치와, 스미마셍, 이게 전부야”라며 웃는다. 마쓰요 아줌마가 데리러와서 곧 헤어져야 했기에 아쉬웠다. 그녀의 집으로 가니 언니 미치코씨가 반갑게 맞는다. 역시나, 텔레비전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처음 보는 배우가 나오는, 제목도 못 들어 본 드라마. 하긴, 중독의 위험이 무서워 텔레비전 없이 사는 내가 알 리가 없다. 거실에는 한국 배우, 드라마와 관련된 책이 세 권이나 있다. “누가 제일 좋아요?”라고 물으니 바로 “권상우와 이병헌”이라는 답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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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의 유명한 해산물 구이 가이조쿠 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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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팬이 선뜻 제공한 숙소는 최고의 선물 토닥토닥 도마질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양식과 일식 두 가지로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다행히도 낫토는 없다! 잔뜩 먹고 나니 과일까지 예쁘게 깎아 넣은 도시락을 내민다. 집을 나서긴 전, 그녀의 고토 연주를 들었다. 일본 전통 악기인 고토는 13줄짜리 현악기다. 고토의 음색은 재밌다. 정숙하고 단정한 소리를 내는 가야금에 비하면 고토는 교태가 가득한 게이샤의 노래 같다. 나도 그녀가 가르쳐 주는 대로 ‘사쿠라’라는 노래를 연주해 본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근처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는 언니가 찾아와 오세타이를 건넨다. 다리 위에서 마주친 동네 할머니 두 분도 오세타이라며 백엔씩을 건네주신다. 오늘도 낮 기온 25도. 덥다. 발바닥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 만한 길치에, 기형적인 발가락으로 물집을 달고 사는 ‘도보여행가’라니. 신의 장난치고는 잔인하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예정보다 일찍 여관으로 들어서고 만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안주인이 “오늘 저녁에 하나비가 있어요. 식사한 뒤에 보러 가세요” 하고 일러준다. 유카타를 입은 채 강변의 다리 위로 불꽃놀이를 보러 갔다. 불꽃놀이는 나이 든 어른들을 위한 위로가 아닐까. 고통도 영광도 실패와 성공도 여름밤 꿈처럼 짧게 스러져간다는 것을, 인생 그 자체가 덧없어 눈부신 거라는 것을 아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강변의 작은 동네는 조용히 들썩거리고 다리 위로는 포장마차가 늘어섰다. 여기는 일본. 차도 사람도 없는 텅 빈 도로에서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나뭇잎 사이로’부터 시작해 ‘언젠가는’ ‘청계천 8가’를 지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너를 보내고’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까지. 바다가 왼쪽으로 따라온다. 내 노랫소리에 출렁이는 파도. 어느 순간 바다의 색깔이 변했다. 서핑보드를 든 젊은 남자들이 가득한 바다. 파도와 함께 일렁이던 그들이 어느 순간, 몸의 균형을 잡고 파도 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달려온다. 해변을 향해 질주하듯. 그들은 파도 위에서 날고, 춤추고, 달리고 있었다. 팽팽한 몸의 긴장이 여기까지 전해질 듯 황홀한 몸놀림이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들의 아름다운 비행을 지켜본다. 몸을 쓰는 일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단련된 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야생의 기억이 남아 있는 인간의 몸은 얼마나 아득한 그리움인가. 그들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달리고, 뛰고, 사냥하던 시절의 기억을. 그리고 날아보겠다는 인간의 오랜 꿈을. 저렇게 춤을 추듯 걸을 수는 없는 걸까. 대지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단단하고 경쾌하게 걷던 시절이 그립다. 지금의 나는 지팡이에 의지해 절룩거리고 있으니. 내 몸의 고통과는 달리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맨홀 뚜껑에는 고래가, 문패에는 물고기가 그려진 바닷가 마을. 민박집이 여러 채 보인다. 여기서 다음 민박촌까지는 20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20킬로를 걸었으니 4킬로만 더 걷자. 일단 차를 얻어타고 민박집으로 갔다가 내일 멈춘 자리로 돌아와 다시 걸어야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크리스티나를 만났다. 다시 만나게 된 기쁨이 서로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발의 고통을 잠시 잊은 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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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길에서 외국인 순례자를 처음 만났다. 크리스티나는 2005년에도 파리에서부터 1600킬로미터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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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바닷가를 따라 마을로 이어진다. 작고 단정한 바닷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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