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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18:30 수정 : 2009.01.21 18:30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댓글 피학증이란 질병이 있는 거 같다. 안 보면 그만인데 꼭 스스로 클릭해 상처를 받고야 만다. ‘기사를 발로 썼냐’는 고전적 야유부터 ‘감봉 3개월에 처한다’ 등 최신형까지 댓글의 트렌드를 섭렵할 정도로 확인하고야 마는 건 대체 무슨 쓸데없는 성실함이란 말이냐. 댓글 보고 분해 “××야, 니가 써라” 따위 치졸한 댓글을 이어 달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정체 들통나면 개망신 당할까 참은 적도 여러 번이다. 올해엔 정말 밑천 드러나는 분기탱천 그만하고 “자신을 믿을 뿐, 신경 안 써”라고 지적으로 말해 보고 싶다만, 정초부터 댓글 챙기기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이다.

다른 사람 마음이 참 내 맘 같지 않다는 거, 세상에 의도대로 되는 일 별로 없다는 거, 댓글을 보며 깨닫게 된다. 예전에 스노보드 체험기를 쓰고 가공할 댓글 공포를 체험했다. 남자 중학생 사촌동생 옷을 빌려 입고 모자도 얻어 쓴 채 엉성한 기마 자세로 사진을 찍어 기사도 썼다. 편집기자가 얼굴 정면까지 나온 그 사진을 넣을지 말지 고민에 빠져 돌아다니며 의견을 구했다. ‘기사 콘셉트에는 맞지만 이런 추한 사진을 올려 장래를 망칠 수는 없지 않나’라는 인간적인 의견과 ‘그래도 신문이 먼저’라는 비인간적인 견해가 부닥쳤다. 참으로 마음 따뜻한 편집기자는 신문에서 그 사진을 뺐다. 그런데 이럴 수가, 포털 사이트에는 그 장래 훼방용 사진이 버젓이, 그것도 메인 화면에 떠 있었다. ‘제발 빼달라’ 사정해 포털 쪽에서 그러겠다는 약속 듣고 그 밤 편히 잤다. 그런데 또 이럴 수가, 다음날 기사는 사라진 채 사진 속 나는 홀로 여전히 기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댓글은 “너네 별로 돌아가”였다. 돌아갈 곳만 있다면 나도 돌아가고 싶었다.

댓글 중에서도 가장 섬뜩한 걸 남기는 부류는 아이돌 그룹 팬클럽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 수를 하나 보태 틀렸더니 다음날 한 누리꾼은 틀린 부분과 내 이름에 붉은 줄을 그은 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글을 남겼다. 그 뒤 4년이 지났으니 원수도 아니고 용서해줬으면 좋겠다.

남의 기사에 붙은 댓글 보며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기자랑 술 한잔하며 시름을 달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리투아니아의 상황에 대해 쓴 기사를 보고 난 뒤였다. 정치인들 이름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운데다 상황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었다. 뭔가 굉장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원고지 8장 분량도 넘게 설명해 놓은 기사에 댓글은 달랑 하나, “뭔 소리야”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쓸쓸한 건 아마 이럴 때인 듯하다. ‘아, 내 기사지만 감동적이다’ 싶을 때 기대에 차 클릭해 보면 ‘무플’이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꼭 엄마나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온다. “너, 요즘 기사 통 안 쓰던데 살아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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