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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신’이 디자인한 새로운 개념의 가구 ‘테셀’. 매트나 목마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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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수입가구 유행 속에서 미학적, 기능적 실험에 도전하는 디자이너 가구의 세계
내가 그린 오리 그림으로 실제 의자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동그란 소반 위에 앉을 수 있다면? 국내외 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에게 이런 상상은 곧 현실이 된다. 고정관념을 뒤집어 다리가 세 개뿐이어도 멋스런 의자를 만들어 내는 이들에게 가구 디자인은 소신 있는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몇 해 전부터 수입 가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최근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의 적극적인 행보는 가구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을 만큼 흥미롭다.
전통 가구 장인과 협업으로 완성한 신구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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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상하이의 번드18갤러리에서 열렸던 하지훈 디자이너의 전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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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디자이너는 소반의 원형성을 잃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재료를 선택하고 기능을 고려해 꼭 필요한 요소들만 남겼다. 화려한 무늬가 돋보이는 ‘화조도 테이블’은 유리에 자개를 접착시켰고, 김춘식 나주 소반장과의 협업 과정에선 신소재 알루미늄 패널을 전통 목재에 결합해 신구의 만남을 시도했다. 12각 소반의 상판을 사용한 보조테이블은 세련미가 느껴지는 작업. 하지훈씨는 “평생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내 가구도 새로운 시대성을 반영하게 된다”며 “골동 소반의 유니크함을 오늘날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은 흥미롭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일상의 가구가 현대인의 생활 습관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의 문제. 전통 공예품인 채상으로 만든 그의 의자는 앉는 부분이 특히 길게 뻗어 있다. 이유인즉 거실에서 티브이를 볼 때면 많은 사람들이 소파에 앉지 않고 바닥에 널찍하게 앉아 등을 소파에 기대기 때문이란다. 하 디자이너는 “좌식 생활 습관을 반영해, 양반다리를 해도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구는 이러한 철학을 담고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잘 정리된 정갈한 느낌을 준다. 하 디자이너는 “덴마크 유학 시기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이유 있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배웠다”며 “새로운 시대적 정체성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고유의 정취를 지닌 특별한 가구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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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자개를 결합해 만든 `보자기 테이블’과 채상의자.(하지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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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세환의 `뫼비우스 체어’(Mobius chair)
2. 오세환의 `리프 체어’(leaf chair) 3.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의자로 만든 `이와 신’의 `드로잉 체어’(drawing chair). |
아직은 국내 가구 산업계에서 젊은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에게 가구 제작이나 판매의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와 신’에게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선정된 것이 하나의 좋은 기회였다. 그 일환으로 2008년 ‘밀라노 가구 인테리어 박람회’에 참여하게 된 이들은 그들이 디자인한 새로운 개념의 가구 ‘테셀’(tessell)의 바이어를 만나 국외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신’의 신장현(29)씨는 ‘테셀’이라는 가구를 만들게 된 것은 “바닥 매트도 좋은 가구로 변형될 수 있는데 왜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걸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었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펀지 계열의 고밀도 소재를 쌓고 분리해, 목마도 의자도 매트도 될 수도 있는 놀이형 가구”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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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과 협업해 제작한 하지훈의 `소반 라운지’.
(오른쪽)하지훈은 나주소반을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소반 사이드 테이블’로 디자인했다. |
대기업 가구 브랜드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접목
디자이너가 가구업체의 제안을 받아 기업과의 협업을 거쳐 특정 가구를 디자인하는 경우도 많다. 손꼽히는 국내 가구 대기업의 주방가구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는 오세환(38)씨는 “최근 기업들은 디자인의 질을 높이고 급변하는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외부 디자이너와의 작업을 환영하는 편”이라고 했다. 대량 생산·유통되는 가구 디자인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회 경제 상황, 생활 패턴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완성된 디자인을 넘겨주고 제작이 확정되면 이후의 작업은 온전히 기업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자신이 디자인한 기업체의 가구를 만나면,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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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환의 `필로우 라이트’(pillow light), 쿠션과 조명을 결합시킨 재밌는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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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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