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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19:11 수정 : 2009.01.21 19:13

크룹스 제공

[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물 건너로 향하는 걸음이 ‘출장’이라면, 도무지 즐거운 ‘여행’일 수는 없다. 한 손에는 서류 뭉치로 그득한 트렁크를, 한 손에는 구식 노트북을 들고, 물설고 말선 곳에 고생하러 떠나는 마당에 무슨 낭만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일을 한답시고 쿠바로 떠날 수 있었던 2006년의 여름만큼은 달랐다. 쿠바라면, 살인적인 국외 출장의 일정조차 낭만적인 해외여행의 여정으로 둔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가 아니던가.

쿠바에 발을 딛자마자 국제회의장 안에서 잡무를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일 중간중간 여유가 날라치면 회의장 너머에서 넘실거리고 있을 카리브해를 보고파 까치발을 하거나, 헤밍웨이의 (남아 있을 리 만무한!) 체취라도 맡아보려 코를 숫제 킁킁거리거나, 업무로 몸이 노곤해진다 싶으면 주전부리를 푸짐하게 제공해 주는 식당으로 달려가 달짝지근한 디저트와 함께 쌉쌀함으로 와락 정신을 일깨워 주는 쿠바산 에스프레소를 들이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쿠바라면, 출장도 여행일 수 있는 거라고!’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우며 행복하다는 자기암시로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 회의 휴식 시간에 진작 제공되었어야 하는 음료들이 제시간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회의실을 책임지는 현지인 담당자에게 음료수 문제의 해결을 요청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음료는 도통 나올 생각을 않고,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갈증의 기색이 역력해지고 있었다. ‘내가 직접 음료 담당 직원에게 요청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음료 카운터로 걸음을 옮겼다. 나를 보자마자 음료 담당 직원은 주문도 받지 않은 채 반사적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을 내려주었고, 커피를 받아 든 나는 감사의 인사로 미소까지 띠며 “음료가 제공되질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에스프레소 압착기에서 손을 차마 떼지 못한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황은 말이지요… 가능하면 윗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하시면… 저희가… 곤란해져요.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그가 뽑아준 크레마(커피 거품)의 향내가 짜디짠 땀내로 물큰 풍겨왔다. 그제야, 외국인 자본가들의 사치와 허영을 오롯이 키워내야만 유지되는 쿠바 관광사업의 현실과 그 관광사업에 복무하는 숱한 쿠바인들의 침묵 속 노동, 그리고 그들을 감시하는 눈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쿠바산 에스프레소의 맛은 환상이었기에 온전히 달콤할 수 있었음을, 환상 밖 현실은 언제나 커피의 슬픈 끝 맛임을 깨닫는 순간, 나의 ‘해외여행’은 어느새 ‘국외 출장’이 되어 쿠바의 일상 바닥 깊은 곳에 가라앉고 있었다.

정일심/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 묘동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esc〉가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연인ㆍ친구ㆍ가족 등 커피를 마실 때 떠오르는 사람과 그에 얽힌 추억’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의 사연을 보내 주세요.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응모하시면, 매주 한분을 뽑아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과 원두분쇄기 산타페(50만원 상당)를 드립니다. 문의 :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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