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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1 21:47 수정 : 2009.01.25 16:39

예쁜 길을 만나면 걸음은 절로 느려진다.

[매거진 esc]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 ③
인도 여행 중 만난 친구의 깜짝선물에 물집의 고통이 기적처럼 줄어들었네

지금 이 순간, 이 길의 어딘가를 걷고 있을 순례자들을 떠올려 본다. 저마다의 슬픔을 등에 지고, 채 나누지 못한 사연을 품은 채 걷고 있을 사람들. 그들은 왜 집을 떠나 1200킬로미터를 혼자 걷고 있는 걸까. 수많은 순례자들의 눈물과 웃음이 고스란히 번져 있는 천년의 길. 이토록 먼 여정에 오르게 만드는 이 길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건 우리가 길 위에서 걷고 있을 때만큼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기 때문이 아닐까.

다리 위에서도 들지 못했던 지팡이

길 위에서 우리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을 들여다볼 뿐이다. 걷고 있을 때 우리는 머리를 쓰지 않는다. 찾아오는 모든 만남에 정직한 몸으로 반응할 뿐이다. 걷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평은 줄어든다. 가야 할 길이 험하고 고달플수록 감사할 일은 늘어난다. 눈은 밝아지고 마음은 담백해진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고,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이 보인다. 천년 전부터 오늘까지, 욕심도 없이 순하게 걷고 또 걸어 자기 자신이 되었던 익명의 순례자들. 그들이 지금 나를 붙잡아 주는 걸까. 지구 위에 이토록 영적인 길들이 있다니 고마울 뿐.

시코쿠 도보여행 지도

24번 절 호쓰미사키지(最御崎寺)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11시. 영혼의 충만함도 몸의 허기 앞에선 잠시 흔들린다. 길가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 먹으며 옆의 밀감나무를 흘깃거린다. 한 달쯤 지나면 떨어진 밀감을 주워 먹으며 걸을 수 있으려나. 투명하도록 파란 하늘 아래 붉은 감들의 긴장이 쨍쨍하다. 들판에는 고개를 숙인 벼들. 가을의 절정은 단풍의 붉은빛이 아니라 여문 벼들로 출렁이는 저 황금빛으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세상에 아름다운 게 사무실에서 주식을 팔고 사는 이들의 고운 손이 아니라 벌판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의 고단한 등인 것처럼. 고요히 차오르고 있는 가을 들판이 나를 위로한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왜 단명하는 걸까. 일찍 저물고 가뭇없이 사라진다. 그렇기에 길 위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걸음을 멈추고 오래 들여다보기, 좀 심하게 하고 있다. 삼십 분마다 물집과 눈 맞추기를 하고 있으니. 곪아서 피 흘리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몸 전체의 균형을 깨고 있다. 발가락에 힘을 주지 않으려다 보니 저절로 뒤꿈치에 힘이 들어간다. 그 결과, 발바닥 전체가 몹시 쓰리다. 그렇게 깨어진 몸의 균형이 마음의 균형마저 흔들고 있고. 순례자들이 ‘홍법대사’로 여기고 애지중지하는 지팡이를 나는 몸을 의지하는 도구로 쓰고 있다.

순례자들에게는 지켜야 할 몇 가지 전통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다리 위를 걸을 때면 지팡이를 땅에서 떼야 한다는 것. 그 옛날, 홍법대사님이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해 다리 밑에서 하룻밤을 지샌 적이 있다. 그 이후 순례자들이 다리를 건널 때면 혹여 지팡이 소리로 잠든 대사님의 영혼을 깨울까 싶어 지팡이를 들고 건넌다. 나는 오늘 다리를 건널 때마저도 지팡이를 들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만났던 순례자들은 앞서 간 지가 오래고, 낯익은 이들과도 다시 만나기 어려울 만큼 뒤처져 버렸다. 괜찮아. 지금은 그냥 견디는 거야. 달팽이의 속도로 걷는 일, 처음도 아니잖아. 이 새끼발가락의 물집은 오늘이 절정인 거야. 그러니까 오늘만 지나면 고통도 줄어들 거야. 아무 효과도 없는 자기암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본다.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을 뿐이다.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 상태가 됐군. 절뚝거리며 발을 옮기는데 다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그 오토바이다. 오토바이 위에는 미동도 않고 있는 헬멧 쓴 남자. “앗, 헨타이(변태)다!” 영화나 책에서 보던 그 유명한 일본의 변태 아저씨. 얼마 전에 밤을 새우며 읽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소설 <모방범>이 떠오른다. 취미로 살인을 일삼던 주인공들,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남자들이었지. 며칠 전 길가의 수배자 명단에서 본 ‘영국인 여성 살해 용의자’의 얼굴도 떠오른다. 치매 수준의 내 기억력이 이렇게 엉뚱한 순간이면 쓸데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증폭되는 상상력과 더불어 상승하는 공포지수. 저 남자가 쫓아오면 난 뛸 수도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하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헬멧을 쓴 변태가 말을 건다. “남희!” 이건 내 이름인데… 도대체 내 이름을 어떻게 안 거지? 겁을 먹은 채로 뒤돌아본다.

오토바이에 앉아 웃고 있는 변태는 놀랍게도 내 친구 히데키. “히데키? 너, 정말 히데키 맞아?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믿기지가 않는다. 오사카에 있어야 할 이 남자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말했잖아. 착한 아이라면 선물을 받게 될 거라고.”

27번째 절 고노미네지의 일주문.

여관집 할머니는 누구에게 도라지타령을 배웠을까

오토바이로 세계일주 중이던 히데키를 만난 곳은 4년 전 인도의 자이살메르. 그때 나는 오랜 친구 마미코와 함께 여행 중이었다. 우리는 모두 개띠 동갑내기여서 금세 가까워졌다. 이틀을 함께 보낸 후 저마다의 길을 향해 떠났었다. 그 후 몇 번의 이메일이 오가다가 자연스레 소식이 끊겼다. 9월 말께 오사카에 간다고 불쑥 그에게 메일을 보낸 건 3년 만의 연락. 히데키는 공항으로 데리러 나왔고, 나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시코쿠 순례를 시작했다. 그 후로 히데키는 종종 전화로 나를 격려하고 있었다. 요 며칠간의 전화통화에서 히데키는 선물을 주겠다더니 정말 여기까지 위로 방문을 온 거였다. 그것도 연락조차 없이 달려와 길 위에서 나를 찾아내다니.

“이걸 타고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근데 지금 이 오토바이 상태가 좀 심각해서 돌아갈 일이 걱정이야. 엔진에 이상이 생겨서 속도가 안 나.” 나는 왠지 마음이 서글퍼져 낡은 오토바이를 어루만진다. 히데키와 함께 6년간 세계를 떠돌며 지구를 여섯 바퀴 반 돌았던 그 오토바이다. “얘가 꼭 지금 나 같네. 늙고, 병들고, 땀에 절어 더럽고… 이제 얘랑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거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지.” “익숙한 것들과 헤어져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니까.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야.” 히데키가 이 섬에 상륙한 이후 기적처럼 물집의 고통이 줄었다. 나는 그에게 가방을 맡긴 채 걷는다. 그는 최대한 천천히 오토바이를 끌고 달리다가 가끔씩 멈춰 서서 기다린다. 히데키의 오토바이와 나, 지금 모두 가장 느린 속도로 걷고 있다.

담장 너머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기웃거리며 걷는다. 일본 문화 중 내 눈에 불편한 것 하나는 분재다. 화분의 작은 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정원의 큰 나무들까지도 똑같은 모양으로 싹둑싹둑 잘라놓은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나무조차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저 강제된 획일성이 결국은 전쟁이나 식민지에서의 극단적인 집단주의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나는 분재에 관한 그런 내 생각을 히데키에게 털어놓는다. “저 나무들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해. 누군가 나에게 옷은 검정색만 입고, 머리는 귀 밑 2㎝ 길이로 유지하라고 한다면 난 미쳐버릴 텐데… 저 나무들도 지금 그런 일을 당하고 있는 거잖아.” 히데키는 내 말을 듣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본인은 한 명도 없을 거야”라며. 내가 지구에서 가장 사랑하는 생명체가 나무인 탓에 아무래도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다. 이건 단지 우리와 다른 문화일 뿐인데.

오토바이를 타고 6년 동안 세계일주를 한 히데키. 그는 시코쿠 순례길에 찾아왔다.

이제 숙소를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나하리의 여관을 찾아가니 예약을 하지 않아 곤란하다고 한다. 음식을 준비할 수 없으니 잠만 자는 일만 가능하단다. 저녁식사가 없는 여관은 앙꼬 없는 찐빵이기에 머물고 싶지 않다. 놀라운 건, 이 집 주인 할머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그녀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가사 하나 안 틀리고 부른 노래는 민요 ‘도라지’. 시코쿠의 시골 여관에서 듣는 도라지타령이라니.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 만주에 살았던 그녀는 그곳의 한국 여성들에게서 이 노래를 배웠단다. 한국말 ‘어머니’ ‘아버지’도 기억한다. 또렷한 발음이다. 식민지 치하였으니 그녀에게 한국말과 노래를 가르쳐준 건 군대위안부들이었을지도 모른다. 타국에서 피지도 못한 채 지고 있던 조선의 처녀들은 어떤 마음으로 일본인인 그녀에게 ‘도라지타령’을 가르쳐줬을까. 그 여성들이 누구였느냐고, 왜 그곳에 와 있었느냐고는 차마 물을 수 없다. 그 뒤에 이어질 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돌아서는 길, 할머님이 ‘오세타이’라며 감을 몇 개 주신다. 나도 답례로 귤을 몇 개 드린다. 다시 1킬로미터를 더 걸어 ‘상고 료칸’에 들어선다. 목욕과 저녁식사는 순례자들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사랑하는 일. 이 집의 ‘오후로’(목욕탕)는 히노키 나무로 만든 욕조. 욕조에 몸을 담그니 나무의 은은한 향이 코끝에 감겨온다. 저녁을 먹으며 반주를 곁들였다. 나는 따뜻한 사케를, 히데키는 찬 사케를. 그리고 정원에서 히데키가 준비해 온 폭죽으로 불꽃놀이를 즐겼다.

히데키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스무 살, 텔레비전에서 파리~다카르 랠리를 본 후 사하라를 횡단하는 건 그의 꿈이 되어 버렸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건축설계사무소 취직을 포기하고, 택배회사의 트럭 기사로 10년을 일했다-당연히 트럭 기사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억원이 모이자 바로 800만원짜리 혼다 오토바이를 사서 세계일주에 나섰다. 그때 히데키의 나이는 서른셋. 두 번이나 사하라사막을 횡단하고, 6년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게 작년 가을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 그를 붙잡았던 꿈에서 깨어나니 청춘이 지나갔다. “내 자신이 텅 빈 것처럼 느껴져.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될지도 잘 모르겠고.”

“물집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잠시 부처님께 간구하고 돌아선다.

트럭 운전 10년간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 떠난 히데키

‘empty’라고 말할 때의 히데키의 마음. 나는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건 세계일주를 끝낸 후에 나도 겪게 될 감정인지도 모르니까. 꿈을 이루고 난 후의 허무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하지만 히데키도, 나도 세상을 잘도 혼자 떠돌아다녔다. 그 길에서의 기쁨과 웃음뿐 아니라 외로움과 눈물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감당해 왔다. 그러니 우리들의 내면에는 이런 마음의 격랑조차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으리라고 믿는다.

어느새 밤이 깊어간다. 옆방에는 히데키가 잠들어 있다. 낯선 마을의 허름한 여관에 혼자 머물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안심을 하던 밤들이 있었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이여도 그 존재만으로 마음이 더워지곤 했었다. 오늘 미닫이문 건너편으로는 내 친구가 누워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운이 난다. 내일은 좀더 씩씩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글·사진 김남희 도보여행가 skywaywal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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