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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할퀴는 ‘종교적 색안경’.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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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검증안된 괴담에 ‘혼란세력’ 선입견 덧씌워‘무슬림 공포’ 재생산…외교마찰까지 불러 다문화 시대 한국사회 또다른 흉터로 남아
“일부 개신교, 반이슬람 정서 악용” 비판도 “한국 침투 전략이요? 그러잖아도 몇번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당무계한 정도가 아니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퍼뜨리니까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하는 겁니다.” 이슬람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요즘 ‘이슬람 한국 침투 8단계 전략’이란 소문이 떠도는 것에 대해 묻자 한숨부터 쉬었다. “어처구니없는 정도를 넘어서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원화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최근 국내에 늘어난 이슬람 신자들을 음해하는 근거 없는 비방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을 경계하는 일부 종교 주변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런 비방들은 대부분 상식을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내용들이지만 검증 없이 퍼지고 있다. 이슬람이 몰래 한국을 장악 중이다? CIA 보고서도? 현재 가장 많이 나오는 이슬람 비방론은 외국 이슬람 신자들이 유학·이민·결혼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해 국내에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이슬람이 국내 ‘좌빨’들과 힘을 합쳐 사회 혼란을 부추긴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가장 널리 퍼진 이야기는 이슬람교가 한국을 ‘접수’하기 위해 전면 공세를 펼친다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이슬람 선교사가 무려 1만~2만명에 이르고, 국내 이슬람 신자가 30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동의 석유 부자나라들이 막대한 자금으로 이를 뒤에서 지원하면서 국내에 이슬람 은행과 대학 건립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도 따라붙는다. 여기에 ‘결혼·출산 전략설’도 나돈다. 2007년 한 해에만 한국 여성 2500여명이 한국에 이주한 이슬람 신자들과 결혼했다는 소문이다. 이런 음모론은 점점 발전해 “이슬람은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한국을 찍어두고, 2020년 이슬람화 목표를 세웠”으며, “2005년 11월 이슬람 한국 전래 50주년 기념식에 모인 이슬람권 지도자들이 2020년까지 한국을 이슬람화하려는 ‘비전 2020’을 발표했다”는 그럴듯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로 살이 붙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보고서라는 것도 등장했다. 이희수 교수가 우려한 이른바 ‘이슬람의 8단계 침투 전략’이 바로 이 문건에서 나왔다는 소문이다. 이슬람교 인구가 1% 안팎일 때는 평화를 사랑하는 소수그룹을 지향하며 잠복(1단계)하다가, 이슬람 선교를 서서히 진행시켜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면 이슬람을 강요하고 급기야는 인종청소와 대학살까지 자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00%를 이루게 되면(8단계) 이슬람 율법이 헌법에 우선하는 신정일치체제를 구현한다는 주장이다. 범죄꾼 외국인들을 몰아내라-소문이 부르는 혐오 이런 음해를 배경에 깔고 인터넷 등에서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인 이슬람 신자들이 각종 범죄행위를 저지른다는 ‘아니면 말고’식의 글들이 무성하다. 대표적인 것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외국인들의 강력범죄 사건 목록’으로, 여기저기 사람들이 퍼나르면서 이슬람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이슬람 신자가 많은 나라 노동자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어 이슬람 신자가 아닌 외국인들까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외국 노동자들의 범죄에 대한 괴담들은 ‘외국인범죄 근절 모임’ 등의 인터넷모임들을 비롯해 각종 블로그 등에 다양한 버전으로 복사돼 유포 중이다. 내용은 거의 대부분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한국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들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쪽 출신 외국인들의 범죄에 대한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소문들이 서민들의 공포와 맞물려 자칫 외국인에 대한 공격 심리로 이어질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에서는 파키스탄 유학생의 성추행 사건으로 외국 유학생들이 캠퍼스를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는 권고를 듣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 자파르 케말(31)은 “길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나를 보고 테러리스트다, 알카에다 지나간다고 떠들 때가 많다. 이럴 때마다 화가 나고 힘들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30대 노동자는 “마치 우리를 범죄자처럼 쳐다보고 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한국말로 들리게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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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이슬람 신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국이슬람중앙성원에서 예배하는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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