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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근대식 박물관이 태동했던 창경궁 양화당의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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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일제때 ‘제실박물관’ 뿌리 인정국립중앙박물관 기념사업 추진 ‘한국 박물관 100주년’. 우리 문화유산의 가장 큰 요람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올해 이 슬로건에 ‘올인’한다. 이땅에 근대 박물관 제도가 들어온 지 딱 한세기를 맞는 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기념하겠다는 뜻이다. 한일병합 직전인 1909년 11월1일 대한제국 황실은 양화당 등 창경궁 경내 여러 전각들을 그간 수집한 서화 유물 컬렉션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꾸고 동물원, 식물원과 함께 백성들에게 공개했다. 흔히 ‘창경원’, ‘제실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 시설을 기점으로 시대별 문화유산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정리하고 대중 앞에 전시하는 한국 근대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본다. 최광식 관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14일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모든 박물관 사업을 100주년 프로젝트와 연계해 벌이겠다고 밝혔다. 한국박물관협회와 같이 100주년 특별전, 박물관 엑스포, 국제학술대회, <한국 박물관 100년사> 발간 등 7대 사업들을 일년 내내 추진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11일 <연합뉴스>인터뷰에서는 “국립박물관은 제실박물관의 뒤를 이었다는 점에서 박물관의 뿌리”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명분에도 문화재 동네가 전적으로 맞장구 치는 기색이 아니다. ‘뜨악하게’ 보는 시선들이 적지않다. 박물관 안에서도 기념사업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무슨 곡절일까. 사실 지난해 초 최 관장 취임 전만 해도 박물관 안에서 100주년 얘기는 감히 꺼낼 엄두도 못내는 분위기였다. 100주년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이왕가 박물관의 식민지 컬렉션 역사를 포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침략 사관 아래 타율적으로 전개된 식민지 박물관의 역사를 굳이 한 뿌리로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겨레와 함께 한 국립박물관 60년’이라는 특별전을 열었고, 이듬해 <국립중앙박물관 60년사>를 간행해 박물관의 역사적 정통성은 해방 이후라는 사실을 못 박은 바 있다. <…60년사>를 보면, 식민지 시대의 박물관 역사는 부록에 실려 있을 뿐이다. 중앙박물관의 한 학예관은 “해방 뒤 국립 시절만 역사로 인정하자는 관점이 압도적이었다”며 “해방 이전 역사는 피했다기보다 주목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런 맥락 때문에 문화재동네에서는 불과 1년만에 식민지 박물관 역사를 전적으로 인정하며 100주년 사업을 주도하겠다는 박물관쪽의 갑작스런 ‘전향’이 어떤 배경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최 관장의 100주년 구상은 지난해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을 비롯한 박물관의 원로에게서 근대 박물관 100주년의 의미에 대한 조언을 받으면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우리 박물관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홍보하는 이벤트 계기를 만들자는 발상도 작용했다는 게 박물관쪽의 설명이다. 사실 1909년 이래 근대 박물관 역사는 간단치 않은 곡절을 거쳐왔다. 원래 조선 왕실에는 선초부터 이어져내려온 방대한 왕실 컬렉션이 존재했다. 창덕궁 내 승화루를 일종의 수장 기관으로 삼으면서 조선 말기 5만점 이상의 미술품을 수장할 정도로 규모를 자랑했지만, 일제가 구한말 소장품을 분산시키면서 90%이상이 사라져버렸다. 이 상태에서 다시 거액을 들여 도굴 혹은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사들이며 출범한 것이 바로 창경궁의 제실박물관이다. 한일병합 뒤엔 이 박물관을 모태 삼은 이왕가 박물관과 1915년 경복궁 내 물산공진 박람회를 계기로 건립된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원화되어 근대 박물관 계보가 이어 내려왔다. 컬렉션 이원화는 해방 뒤에도 이어져 구왕실재산총국이 관리하는 덕수궁미술관과 문교부 산하 국립박물관의 분립 체제가 1969년 덕수궁 미술관이 흡수될 때까지 지속됐다.
이처럼 굴절된 한국 박물관 역사를 현 국립박물관의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관점에 따라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근대 박물관의 효시는 분명히 1909년 황실이 창경궁 전각 등에 차린 궁중박물관이지만, 조선 침략 원흉이자 숱한 문화유산을 도굴한 당시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입김 아래 일본 관리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합병 뒤 이왕가 미술관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뒤 덕수궁 미술관으로 바뀐 이 박물관이 나라를 대표하는 공공 컬렉션으로서 역사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지는 뜨거운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1915년 건립된 총독부 박물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최 관장이 추진중인 100주년 기념 사업은 박물관 역사에 얽힌 민감한 관점의 문제에 대해 숙고하지 않고 접근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없지 않다. 실제로 <…60년사>의 편찬위원장이었던 이영훈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 박물관 컬렉션을 기반으로 국립박물관이 출범했지만, 그건 역사적 계승이 아니라 재편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100주년 사업도 그런 관점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최 관장과 미묘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해방 60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박물관의 변천사와 계통에 대한 연대기적 연구가 매우 미약했다는 점도 부끄러운 허물이다. 제실 박물관의 설립 배경과 이후 이왕가 박물관의 운영, 곧 수집·연구·전시 과정 등에 대한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 60년사>와 단편적인 소수 논문들이 고작이다. 체계적인 통사나 종합 연구서는 없다. 그나마 가장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았다는 <....박물관 60년사>도 제실 박물관 개관 시점을 1908년으로 잘못 표기하는 등의 결정적 오류들이 보이는 실정이다. 이왕가 미술관 변천사를 연구했던 송기형 건국대 교수는 “치욕의 역사라는 생각 때문에 식민지 박물관 변천사는 소외되어 왔다”며 “백주년 사업은 분명히 기념할만한 명분이 있지만, 구한말과 일제시대 어떤 방식으로 왕실 컬렉션 등이 운영됐는지 전모를 파악하는 체계적인 연구 작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연초부터 100주년 사업의 대외적 홍보에 이례적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올해 예산 7억원을 책정해, 100주년 기념사업팀을 내부에 신설하고, 명예위원장에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추진위원장에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이대 석좌교수를 위촉하는 등 명망가 중심의 추진 기구를 구성해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초창기 식민지 박물관 역사에 대한 자료 아카이브 구축과 박물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공감대를 모으고 조율하기 위한 움직임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재 학계에서는 돌출적인 100주년 사업의 배경을 놓고 여러 뒷말들이 무성하다.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에 기댄 현 이명박 정부의 근대화 인식이 또다르게 표출된 것이라거나, 문화부 장관설, 고대 총장 도전설이 돌았던 최 관장이 100주년 대형 사업을 명분으로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들이다. 최 관장은 지난해 사석에서 <한겨레>기자에게 “고대 박물관장 시절 개교 100주년 기념전 등으로 나름 재미를 봤다. 100주년 같은 분기 사업은 침체된 박물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조직 위상을 알리는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여러모로 근대 박물관 100주년 논란은 외세의 손길 아래 세워져, 해방 뒤에도 이리저리 이삿짐 싸느라 자기 발자취를 돌아보지도 못했던 우리 박물관 문화의 후진성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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