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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8 17:17 수정 : 2009.01.31 11:05

너 어제 그 경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 경기 봤어?

한국 축구계의 거물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이 16년 만에 조중연 신임회장에게 왕좌를 물려줬다. 이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건 축구계 ‘왕자’ 카카의 이적을 둘러싼 ‘쩐의 전쟁’이다. 카카의 이적 여부는 팀 AC밀란의 재앙이라는 말부터 그의 이적 반대 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서형욱 문화방송(MBC) 축구해설위원(사진 왼쪽)과 이민선 <포포투> 수석에디터가 축구계 인물들의 주목할 만한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조중연 축구협회장 세컨드맨 이미지 벗어날 수 있을까
환전 안 되는 팀 이름값, 뼈대 있는 부자와 졸부의 차이

서형욱(이하 서) 지난주 22일 조중연 축구협회 전 부회장이 제51대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선출됐다. 1993년부터 16년 동안 자리를 지켰던 정몽준 회장이 물러났으니 한국 축구계의 새 전환점이 될 만한 변화다.

이민선(이하 이)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렸던 선거 현장에 있었는데 정몽준이 눈시울 붉히는 걸 봤다.


차범근 월드컵 감독 경질로 이미지 안 좋아져

정 전 회장은 ‘이럴 때 감정이 흔들리지, 언제 그렇겠느냐’고 말했다던데.

“시원섭섭하다”는 게 그의 감정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단어였다. 축구협회장으로서 그간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고생했던 일들을 말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축구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지만 축구 인프라를 확장한 건 평가받을 일이다. 취재 현장에서 새삼 느낀 건, 대중들에게 비난만 받을 사람만은 아니라는 거였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겠지만 축구에 대한 깊은 사명감이 없었더라면 못 했을 일이다.

신임회장이 탄생했어도 축구 발전에 정 전 회장의 인맥이나 유산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거다. 2011년까지는 피파(FIFA) 부회장직을 계속 맡는다. 한국 축구에 여러 모로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번 선거는 쉽게 말해 정몽준파와 안티 정몽준파 사이 대결이었다. 축구협회 부회장이었던 조중연 회장이 당선된 건 결국 정 전 회장파가 성공했단 의미다. 정 전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한다고 하더라. 정몽준의 영향력 안에 있던 조중연 신임 회장이 당선됐고, 집행부도 큰 틀의 변화가 없어 정 전 회장의 영향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한국 축구에 하나의 전기가 찾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조중연 회장 당선 당일엔 네티즌들이 기사에 근조 표시를 해놓는가 하면 ‘한국 축구 망했다’는 식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조 회장의 대중적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 경질에도 전면에 나섰다. 그때 대중적 이미지가 더 안 좋아졌다. ‘조중연이 회장됐는데 축구계 뭐하고 있는 거냐!, 축구 기자는 뭐하냐’는 메일도 받았다.

안 그래도 기자회견 중에 이제껏 알려진 독단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할 건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미 조 회장도 축구계 화합이 시급한 문제란 걸 알고 있었다. 반대파가 주장했던 인적 화합과 정책의 질을 그 자신도 강조했다.

조 회장에 비판적이었던 이들도 경기인 출신 첫 회장이라는 점에선 대부분 평이 좋았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축구협회가 축구계 밥그릇 챙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중연 회장은 이제껏 정몽준의 ‘세컨드 맨’ 이미지가 강했다. 본인도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듯했다. 정회장 체제에서 전무이사, 부회장을 했기 때문에 2인자로서 회장을 보조했던 면이 컸다. 이제 자기 자리에서 어떻게 축구계를 진두지휘할 건지 보여줘야 할 때다.

축구협회장 선출 못지않게 최근 가장 큰 화제는 해외 이적시장의 돈 문제다. 지난해엔 중동의 거부 아부다비그룹이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팀을 인수했다. 인수를 하고 나서 이적 시장이 닫히기까지 하루 시간이 있었는데 팀에 브라질 선수 호비뉴를 3천만파운드가 넘는 돈을 주고 사왔다. 그야말로 돈의 위력을 잠깐이나마 맛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 누굴 사네 아니네, 세상에 있는 모든 축구 스타들의 이름이 다 거론됐을 만큼 선수 이적과 돈 문제가 최근 이슈다.

또 최근엔 쿠웨이트의 거부가 리버풀 팀을 인수하겠단 말도 나왔다.

러시아 재벌 이어 아랍 거부까지 구단주로


맨시티로부터 천문학적인 금액의 이적 제의를 받았던 카카. 에이피 연합
무엇보다 공 잘 차고 잘생긴 축구계 ‘엄친아’ 카카를 두고 최근 전세계 축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맨시티가 카카에게 주급 10억원(50만파운드)을 준다는 제안을 했다. 호날두가 3~4억을 받는 판에 놀라운 액수였다. 카카가 경기를 뛰고 나서 이례적으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동료들과 스킨십을 했는데, 이게 떠나는 징표니 뭐니 말이 많았다.

팬들도 울고불고 그야말로 난리였는데, 지난주 카카가 창문을 열고 팬들에게 안 가겠다고 말하는 걸로 일단락이 됐다. 이후에도 세계 축구선수 이적시장에 계속 많은 선수들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유럽과 한국 모두 축구를 돈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과연 옳은가 라는 지적부터 축구는 원래 돈으로 했다는 의견까지 여러 논란이 오가고 있다.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도 돈 많은 실력파 팀이고, 첼시도 러시아 재벌이 인수하고 나서 1등을 했다. 스포츠가 돈을 만드는 부분도 있겠지만 스포츠 구단 자체가 감세 혜택이 워낙 많다.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걸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카카의 선택을 보면서 팬들이 쾌감을 느꼈던 건 돈으로 유혹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단 걸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명예를 지켜줬다랄까. 선수들이 돈에 따라 움직이지만 돈 이외의 것도 생각한단 걸 보여줬다. 카카가 맨시티에게 역제안한 게, 자신이 요구하는 선수와 같이 뛸 수 있으면 가겠다는 거였다고 한다. 돈이 아니라 우승과 좋은 경기에 대한 열망도 크다는 의미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돈 이외의 어떤 것들도 카카의 선택에서 중요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처음 러시아 거부가 축구 구단을 인수했을 때는 축구에 대한 단순한 열정과 의지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 일종의 축구 순수주의자들에겐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실력을 쌓아서 세계적 명성을 확보하고 좋은 선수 데려오는 게 축구의 정상적인 역사라고 믿는 시각에서 보기엔 불순한 돈이 끼어든 셈이니 말이다.

팀에 남기로 한 카카를 향해 박수 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나온 것 이외에 다른 사연이 있을 거라며 안 믿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는 그 정도 액수를 제안한 게 아니라는 말도 있고 이번 시즌 끝난 후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는 말도 있다. 지금처럼 축구선수들이 이적하는 데 돈을 주는 시스템은 채 100년이 안 됐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축구도 많이 발달해왔다. 예전엔 축구에 관계없어 보이는 기업이나 개인이 축구에 투자하는 걸 안 좋게 봤는데 요새는 이런 인식이 거의 희석됐다. 더욱이 근래 들어 점점 굳어지는 강약 구도를 무너뜨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이를 반기는 팬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거액이 아니면 언제 중하위권 팀들이 선두 경쟁을 꿈꾸겠느냐는 거다.

선수들 역시 아무리 명예를 지킨다 해도 욕심 날 수밖에 없을 거다. 카카가 협상장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흔들린다는 증거 아니었을까.

최근에는 유로 2008에 맹활약했던 러시아 선수 안드레이 아르샤빈 이적 여부가 관심이다. 아르샤빈을 노리는 아스널은 중위권팀 맨시티와 달리 선수 영입에 필요 이상의 돈을 들이지 않는다. 팀의 이름값이 주는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맨시티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갑자기 순위가 올라가기는 어렵다.

가난한 케이리그 올해는 허리띠 더 졸라맬 판

진짜 부자와 졸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웃음)

축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지금처럼 빈부 격차 크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때는 더욱 직설적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해외에 비하면 케이리그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올해엔 많은 축구팀들이 계열사의 부서 형태가 아니라 법인으로 따로 분리되면서 적은 예산이 더 깎이는 추세다. 수원삼성의 경우엔 선수 수도 줄이고, 우승했는데도 감독 연봉도 깎였다. 아쉬운 일이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 정몽준 축구인생 최고의 순간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2002 월드컵 4강 때다. 히딩크를 데려오고, 이용수 교수를 기술위원장에 앉히면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조합인 명장과 스태프를 만나게 했다. 4강 진출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고군분투했던 정몽준의 몫도 컸다.”(서형욱)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 월드컵 예선 경기를 했던 순간! 정몽준 인생 지옥에서 천당으로 간 찰나다. 우리가 북한을 꺾고 이라크가 일본과 무승부를 한 ‘도하의 기적’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니까. 그때 그 골이 아니었다면 월드컵 유치는 물론 지금의 정몽준은 없었을 거다.”(이민선)

■ 정몽준 축구인생 최악의 순간

“2005년 축구협회 국정감사 시기, 한 티브이 프로에서 축구협회 비리를 추적하는 내용을 ‘쎄게’ 방영한 적이 있다. 협회에 대한 대중적 신뢰가 급하락했고 정몽준 개인에 대한 비난도 상당했다. 그때 정몽준은 축구협회장을 그만두려 했다더라.”(이민선)

“2002년 대통령 선거일, 당시에도 축구계에 몸담고 있었으니까 정치 인생이자 축구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당시 축구장에서 세운 공헌 덕분에 엄청난 대중적 지지도를 얻고 이상적인 리더로 부각됐다. 정말 꿈만 같던 2002년의 열한 달~ 그런데 마지막 한 번의 선택으로 축구계에서 쌓았던 지지가 상당 부분 타격을 받았다.”(서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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