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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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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나지언의 싱글 라이프
얼마 전 방 안에서 하는 운동 게임 ‘위 피트’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 추운데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시작하자마자 ‘몸뚱아리’가 이게 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당신은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군요’ 어쩌고저쩌고. 내가 왜 이름도 없이 화면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트레이너에게 혼나야 할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시때때로 혼나고 있었다. 미용실에서는 언제나 ‘왜 트리트먼트를 안 하냐, 머릿결 손상이 이 정도면 너무한 거 아니냐, 드라이를 할 때는 두피부터 말려야 한다’라고 혼난다. 이건 꽃봄 미용실의 세리 원장님이나 뉴욕헤어살롱의 제니퍼 원장님이나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마찬가지다. 병원에 가면 ‘양치질을 너무 세게 한다’ ‘자세가 너무 구부정해 이렇게 살다간 허리에 문제 온다’ 등등 전문적 지식과 암호 같은 병명 앞에서 또 혼나야 한다. 이런 잔소리의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조에 이를 때는 은행에 가거나 개인 투자 상담사를 만날 때다. ‘이렇게 살다간 30대에 파산한다’ ‘버는 것에 비해 소비가 너무 심하다’ 등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인생 자체를 애초부터 잘못 살았단 생각마저 드니까 말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짐승도 못 먹을 몸에 해로운 걸 지금껏 먹어왔다거나 영어 공부 방법이 잘못됐다고, 신문을 펴면 책을 너무 적게 읽는다거나 선진국 의식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또 혼난다. 물론 잔소리의 베테랑은 잡지다. 성공하지 못하는 당신의 잘못된 습관, 피부의 적들과 멀어지는 방법, 당신이 다이어트를 끝끝내 못하는 이유, 도쿄 여행에서 놓치면 평생 후회하는 것들 등 잡지는 독자들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만들어진 게 분명하다. 심지어 홈쇼핑이나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로부터 ‘왜 지금껏 바보같이 밤을 직접 칼로 깎았냐’는 핀잔을 듣는다.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은 건, 입시 앞둔 고등학생만의 생각인 줄만 알았다. 집 안의 묵은 때 제거하는 법부터 이태원에서 헛돈 안 쓰고 알뜰 쇼핑하는 법까지 매체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주려고 한다. 해가 갈수록 일은 점점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만날 혼나야 할까? 행복하게 살자는 방법인 줄은 알지만, 언제나 우리는 잘못 살고 있다는 충고를 듣는다. 혹시 이성을 상실한 인터넷 댓글들은 날마다 이렇게 잔소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잔소리 해방구’일까?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왜 서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걸까? 오늘도 나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전혀 모르는 아주머니 4명으로부터 ‘옷 단추를 잘못 끼웠다’라는 잔소리와 얼굴도 잘 기억 안 나는 아저씨로부터 ‘왜 예수를 안 믿느냐, 어쩌려고 그러냐’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다시 말해 두건대, 일부러 멋 내기 위해 단추를 잘못 끼웠고, 교회 다닐 생각이 없다. 나지언 자유기고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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