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8 18:45
수정 : 2009.01.28 18:45
[매거진 esc] 하우 투 스킨십
회식 후 젊은 여직원이 과장에게 뛰어온다. “한잔들 더 하려는 것 같은데 같이 안 가?” “이제 젊은 애들은 별로예요.” 살짝 웃으며 돌아가는 여직원.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서 있다 얼굴에 홍조를 띠는 과장. 그리고 흐르는 내레이션. “OLD IS NEW.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은 아니다.” 또 다른 스토리. 도시락집 여주인은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을 반긴다. “매일 우리 집 도시락만 먹으니 질리죠?” “도시락 때문만은 아니니까”라고 말하며 돌아가는 청년. 그리고 흐르는 내레이션 “OLD IS NEW.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은 아니다.” 일본에서 방영된 한 위스키 회사의 광고다. 10년도 더 된 광고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카피의 힘도 있겠지만, 광고 속 상황이 너무 있음직하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이 특별한 의도 없이 던진 말이 중년의 그들에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다. 강퍅한 현실을 잊게 하는 로맨스의 힘이다. 적어도 나는 이 광고를 보고 위안을 받았다.
이 광고가 갑자기 생각난 건 요즘 최고의 화제를 일으키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때문이었다(요즘 내 주변 여자들은 모이기만 하면 ‘꽃남’ 이야기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에 환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만화 주인공 같은 외모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만화 같은 스토리’라는 게 주효한 듯하다. 리얼리티가 없다는 게 전제가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캐릭터만을 즐길 수 있다는 거다. 돈 많은 순정남, 게다가 외모까지 완벽한 남자가 평범한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벌이는 로맨틱한 소동은 불안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판타지임에 틀림없다. 입시, 취업, 결혼, 그리고 생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요즘 아닌가. 스트레스를 잊는 방법은 두 가지다. 현실과 거리가 먼 상황에 몰입해 망각하는 것, 또 하나는 현실과 비슷한 상황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이래저래 로맨스가 필요한 때다.
김현주/<코스모폴리탄>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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