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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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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보기만 해도 기운이 나는 좋아하는 그림 하나쯤 있으세요? 지금 한국엔 겨울방학을 맞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세기의 명화’들이 총출동했습니다. 렘브란트·피사로·마티즈·클림트까지 그야말로 눈이 호사스러워 지는 ‘볼 것 많은’ 겨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미술관 관람 습관은 어떤가요? 혹시 광활한 전시장을 열심히 돌고 나왔는데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적은 없으십니까? 전시장을 찾아가지만 실은 전시장 옆 분위기 근사한 카페의 맛난 커피 생각이 더 간절하지는 않은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누구나 세잔의 사과에 감동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전시를 즐기는 방법도 백인백색입니다. 이참에 나의 전시 관람 취향을 알아보면 어떨까요? 난 어떤 전시가 재밌는지,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는지, 전시 설명을 들어본 적은 있는지 〈esc〉의 전시취향 게임을 풀어보세요. 전시장 속 당신에게 거울을 비춰보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전시 관람 취향을 격상시킬 팁을 기억하세요. 교과서에 나왔던 유명한 이름 확인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전시를 찾아서 놀이처럼 즐기는 것, 진짜 관람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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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결과가 나오셨나요? 당신이 생각하던 자신의 모습과 결과가 얼마나 맞아떨어지나요? 당신의 행동반경과 스타일을 하나하나 예측하며 유용한 정보들을 모았습니다. 다른 전시 취향도 놓치지 말고 재밌는 정보로 활용하세요. 주변 친구나 가족들의 취향은 어떤지, 함께 전시장 갈 날을 상상하며 질문해 봐도 좋겠죠.
A 표준전과형
전시장 긴 줄 서서 애타게 정답을 찾아…
참고서 도움받아 재미와 지식을 두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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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전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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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전시장은 아직 미개척지에 가깝군요. 당신은 표준전과와 같은 믿을 만한 가이드가 있어야 전시장을 찾을 확률이 큽니다. 확실한 목적과 전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당신의 망설이는 발길을 움직이는 데 성공하겠네요.
당신은 낯선 현대미술보다는 다가가기 쉬운 르네상스 미술, 인상파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형’ 전시는 사실 백화점식 진열에 막상 ‘가 보면 판화뿐이었다’는 식의 실망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주말이면 줄이 길어 아침조회 서듯 앞사람 몸통에 딱 붙어 보는 것도 고역이었으니까요. 사람이 많은 시간을 피해 ‘피사로와 인상파 화가들’(고양 아람미술관, 3월25일까지), ‘렘브란트를 만나다’(예술의 전당, 2월26일까지), ‘매그넘 코리아’(광주문화예술회관, 3월29일까지) 같은 볼거리가 많은 전시장을 찾아보세요. 지역 곳곳의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을 찾아 기획전시실과 소장품 전시실 등 한 미술관에 구성된 2~3개의 전시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수요일·토요일 야간개장을 하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다양한 기획특별전과 테마전을 살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관람객이 별로 없는 시간, 역사와 이야깃거리가 있는 전시장에 서 있는 기분도 꽤 괜찮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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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 도움받아 재미와 지식을 두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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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이제껏 전시장의 긴 줄 속에서 정답을 애타게 찾는 하이에나였을지도 모릅니다. 미술을 보는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선, 우리에게 그림을 곱씹어 맛있는 성찬을 제공해준 전문가들의 힘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미술의 첫사랑을 만들어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보는 방법에 대한 열정적인 주석을 담은 존 버거의 ‘어떻게 볼 것인가’(way of seeing),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추천합니다. 이들처럼 마음껏 대상을 음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면, 당신만의 창의적인 전시장 관람은 이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
B 놀러가형
그림 보고 커피 마시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심서 떨어진 유원지 미술관 소풍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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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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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운이 좋은 관람객이로군요. 볼 것이 많은 세상, 전시장엔 특별히 관심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갤러리 주변의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 산책길에 솔깃했던 거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의외로 괜찮은 전시를 놓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말에 당신이 놀러 간 삼청동과 인사동, 평창동 등에는 골목 곳곳이 반짝이는 전시장들로 가득하니까요. 놀고 보는 것엔 두 손 들고 나서는 당신이 만약 유리창이 유독 ‘큰’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섰다면 몇 분만 더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그야말로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그림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가 될 테니까요.
한껏 여유롭게 주말 나들이용 마음자세를 들고 나온 당신, 작품보다는 함께 있는 상대방에게 더 관심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혼자 보는 것보다는 함께 대화하면서 전시를 감상하는 습관을 갖게 될 확률이 큽니다. 삼청동의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고풍스런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다가 ‘금호미술관’의 전시를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정독도서관을 나침반 중심에 두고, 지하극장에선 영화가 상영되는 ‘아트선재센터’, 카페가 있는 ‘국제갤러리’, 원서동 ‘가갤러리’도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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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고 커피 마시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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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덕수궁 돌담길이 눈에 들어온다면 ‘덕수궁미술관’의 전시도 외면하지 마세요. 광화문 내수동교회 쪽으로 내려가 ‘성곡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르거나 경복궁역 부근 통의동까지 산책한다면 ‘갤러리팩토리’, 서점 ‘가가린’ 등을 들르는 것도 근사한 코스입니다. 언덕이 가파르긴 하지만 그림같은 집이 즐비한 평창동을 찾으면 ‘가나아트센터’, ‘가인갤러리’, ‘김종영미술관’ 등을 한꺼번에 볼 수도 있지요.
이왕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섰다면 도심에서 떨어진 미술관들을 노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동물원과 놀이동산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경기도엔 산과 강 곁으로 하루 놀러 가기 좋은 미술관이 많으니까요.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경기도 미술관’,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건물도 볼거리인 양평의 ‘닥터박 갤러리’, 조각공원이 있는 ‘장흥아트파크’ 등도 꽤 괜찮은 놀이터 후보겠네요.
C 블로그형
보여주기 위해 보러 가는 열성 기록파
주요 미술 관련 누리집 정보도 챙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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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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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적극적인 관람자군요. 당신이 블로거라면 십중팔구 미술관에서 찍은 사진과 전시 감상문이 주요 메뉴로 올라와 있을 확률이 큽니다. 혹시 집안 어딘가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엽서나 <해바라기>가 프린트된 냉장고용 자석이 붙어 있지는 않은가요? 당신은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기억을 수집하는 데 열정을 아끼지 않습니다. 엽서나 책갈피를 통해서라도 명화의 흔적을 생활 곳곳에 안착해 두는 거죠.
미술 전시는 기본적으로 ‘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전시회가 담고 있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갈지 모르겠네요. 전시장 벽에 적힌 기획 의도를 읽고 전시 팸플릿을 챙기는 당신은 그림과 이야기가 만났을 때 더 흥미진진하다는 걸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전시를 본 후 당신은 만담꾼이 된 듯 가족들에게 전시의 뒷이야기를 풀어놓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보고 잊어버리기엔 아까우니까”, “흥미로운 곳에 갔었다는 확인증인 셈”이라고 말하는 블로거 김혜영씨는 때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미술관을 찾습니다. 주객전도라고요? 지금 포털 사이트에서 ‘렘브란트 미술전’을 쳐보세요, 당신처럼 그림일기를 쓴 이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화가들의 천국’이라는 부제를 단 ‘퐁피두센터 특별전’(서울시립미술관, 3월22일까지)만 해도 이야기가 무궁무진합니다. 기계에서 혁신을 찾고자 했던 페르낭 레제나 동시대 작가 딕스트라의 바다 사진 등 현실인 동시에 신기루 같은 풍경들이 놀랄 만치 가득합니다. 이야기의 결을 세운 또다른 전시로는 덕수궁미술관의 ‘근대를 묻다’(3월22일까지)가 시선을 끕니다. 20세기 초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어떻게 시대를 뚫고 나왔는지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 일기가 쓰고 싶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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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위해 보러 가는 열성 기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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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규모가 크고 소장품도 있는 공간에서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기획전시를 여는 편이지만 갤러리 여러 곳을 방문한 후 그날의 에피소드를 묶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달진닷컴(www.daljin.com)에서는 주목할 만한 전시 사냥이 용이하고, 관심 있는 미술관 누리집을 찾아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도 흥미로운 전시 소식을 지속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전시 출품작과 설명을 담은 도록이나 전시 팸플릿도 놓치지 마세요. 평소 아트카이브(www.artchive.com)나 아트사이클로페디아(www.artcyclopedia.com)처럼 외국 사이트를 무작정 방랑해보는 것도 당신에겐 즐거운 일 아닐까요?
D 백남준형
내 멋대로 4차원, 앞서가는 방랑자
홍대 앞 대안공간을 즐겁게 놀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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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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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전시장은 진귀한 모험이자 놀이군요. 당신에게 중요한 건 전시장 자체를 즐기는 일이며, 그 안에서 새롭고 자극적인 무언가를 만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은 전시장의 무법자일 수도 있고 숨은 지휘자일 수도 있겠네요. 무방비 상태에서도 우연한 관람이 가능하고, 적극적인 호불호를 보이는 참여자이기 때문이지요.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실험정신이 두렵지 않은 당신은 백남준의 유전자를 2% 이상은 타고난 후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성적이든 후천적이든 ‘올드 보이’ 보다는 ‘샛별’이 궁금할 겁니다. 정답이 있는 수학보다는 때론 호기심 자체가 정답인 미술의 아이러니를 즐기려는 거겠죠. 한때는 샤갈과 드가를 좋아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설치미술과 퍼포먼스가 더 당기는 당신을 주변에선 ‘4차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는데 어쩌겠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처럼 재빨리 이곳저곳 점프할 수밖에.
현대미술의 점프력이라면 지난해 개관한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과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협업, 퍼포먼스뿐 아니라 후예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이 모여 도발적인 전시를 만들어내는 공간입니다. 작가들이 참여한 세미나와 토론회가 지속으로 열리기도 합니다. 최근엔 기차가 다녔던 서울역 공간이 미술 전시장이라는 특이한 장소성을 갖게 된 것도 실험적인 전시장으로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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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4차원, 앞서가는 방랑자. 아르코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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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부근 ‘루프’를 비롯한 대안공간이나 인사동의 다방을 개조한 ‘사루비아 다방’ 등엔 진부한 것들은 들어서기 힘듭니다. 호경윤 <아트인컬처> 기자는 “전시 자체가 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형식적인 실험이 흥미롭다”며 “그 안에서 미술을 잘 데리고 놀고 게임도 하고 미로도 찾는 전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는 한국 그룹사운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 ‘괴짜들’(2월15일까지)이 열리고, ‘인사미술공간’이나 아트선재센터 1층 ‘더 북스’처럼 보기 힘든 외국 서적들도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할 겁니다. 당신에게 전시장은 미술이라는 하나의 장르에 귀속되지 않습니다. 미술정보사이트 네오룩(www.neolook.com), 이플럭스(www.e-flux.com)에 올라오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사실은 그런 트렌드를 보여줍니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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