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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8 21:52 수정 : 2009.02.01 11:34

시코쿠 순례길은 지도 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바다와 산과 마을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매거진 esc]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 ④
콩알만한 간 때문에 혼자 찍은 공포영화,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서 감동의 반전을 맛보다

“아나타… 칸고쿠진데스네?”(당신, 한국 사람이죠?) 논두렁 위에서 말을 걸어온 료타. 이마에 “나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쓰여 있는 그는 이 길에서 만난 가장 어린 청년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일하는 스물네 살의 청년. 5일간의 휴가를 내고 이 길을 걷고 있다. 료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한국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래서 영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몇 마디 한다. “괜찮아?” “피곤해 죽겠어.” “취했어.” 이런 말들. 료타의 집안은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이 많다. 열렬한 한류 팬인 어머니는 혼자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고, 형은 한국 기업의 나고야 지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내 친구 료타와 맛본 일본 최고의 음식

우리는 어제 기차를 타고 고치현의 수도인 고치 시내로 나가 모처럼 화려한 도시의 밤을 즐겼다. 최고의 경험은 고치가 자랑하는 생선 숯불구이 ‘가쓰오(가다랭이) 타타키’와 ‘사바(고등어) 타타키’를 먹은 일. 짚불에 재빨리 구워 겉만 익히는 이 생선구이는 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린다. 뜨겁고 차가운 것, 익은 것과 날것의 조화가 낯설면서도 저릿하다. 날것을 즐기지 못하는 내 미각을 통째로 전복하는 맛이다. ‘일본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에 가쓰오 타타키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29번 절로 돌아와 어제 멈춘 곳부터 걷는다. 스쿠터를 몰고 가던 할머니가 차를 세우고 다가온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시더니 료타와 나에게 500엔씩을 건넨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세타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지.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거든.” 료타와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럴 때면 미소를 띤 채 얌전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수줍은 내 일본어가 원망스럽다. 30번 절 젠라쿠지(善樂寺)에서 잠시 양말을 벗고 통풍을 한다. 지나가던 순례자가 내 물집을 보더니 배낭을 푼다.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유쾌하지 못한 내 발가락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례자의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이 아저씨는 일본 전역을 걸어서 여행 중이란다. 물집에 도움이 될 거라며 발가락 양말을 건네주신 다른 아저씨는 이번이 11번째 순례. 10번은 차로 했고, 도보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멋진 남자들이다.

역 앞에서 나고야로 돌아가는 료타와 헤어졌다. 따뜻하고 속 깊은 친구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됐다. 여행을 한다는 건 매일매일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 삶이 곧 이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는 것. 더 머물고 싶어도, 더 함께하고 싶어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결국 ‘진심으로 지극한 것들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익히는 것. 나는 오늘도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배낭을 멘다.

대숲 사이를 걷는 순례자들.
비가 내린다. 산도, 들도, 바다도 젖어들고 있다. 비 오는 날, 세상은 흔들린다. 우산도 없이 달려가는 자전거 위의 앳된 소녀도, 짐수레를 끌고 가는 굽은 등의 노인도, 운전대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중년의 여인도 흔들려 보인다. 세월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아온 모든 생명들, 쓸쓸한 얼굴로 다가온다. 비 오는 날, 길은 흐려진다. 아직 가야 할 세상의 먼 길도, 애써서 닦아온 마음의 길도 흐릿해진다. 남의 집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유목을 멈추고 정착하고 싶어진다. 종일토록 가는 비 내리는 오늘, 흐려진 길을 흔들리며 걷고 있는 나. 젖은 걸레처럼 늘어져 길가의 카페에 들어선다.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기꺼이 화장실을 내준 그녀가 “오헨로상(순례자님), 좀 쉬었다 가세요.”라며 나를 앉힌다. 곧 커피와 빵, 녹차를 내온다. 비 내리는 날의 오세타이는 젖은 몸과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말려준다. 이제 32번 절 젠지부지. 바다와 산 아래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시원하다. 31번 절에는 복을 부르는 고양이가 서 있더니 여긴 행운의 너구리가 서 있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민간신앙을 흡수한 게 아니라 민간신앙에 불교가 흡수된 것 같다. 날씨 때문인지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있다. 걷기 시작한 지 보름째. 1200킬로미터의 여정 중 이제 3분의 1쯤 걸었을까. 아무 생각도 없이 발을 옮기는 이 일의 의미는 뭘까. 지쳐가는 나. 끝도 없이 살아나는 물집에 지치고, 나도 모르게 오세타이를 바라는 기대에 지치고, 매일 밤마다 빨아야 하는 냄새 나는 옷에 지치고, 자판기의 110엔짜리 물 한 병을 못 사 먹는 소심함에 지치고,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짐꾸리기에 지치고, “와카리마센”(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을 반복하는 일에도 지친다. 부처님께 기원한다. 처음의 그 마음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그게 어려우시다면, 제발 비라도 멈춰 달라고.

노천욕탕에서 바라보는 풍경. 나를 완벽하게 무장해제시켰다.

발 밟힌 사람이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오늘 아침,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러닝 타임 두 시간 반. 주인공이 길 위에서 온갖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 가는,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로드 무비. 무대는 새벽의 인적 없는 둑방길.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주인공을 뒤따라오는 정체불명의 남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한 시간째 따라오고 있다. 길 위에 사람이라고는 그 남자뿐. 정신없이 걸음을 빨리 하는 여주인공의 앞쪽으로 트럭과 한 남자가 보인다. 계속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쫓아온 자신감의 이유가 이거였던가. ‘2인조 강도’라는 본능적인 확신에 무너지는 여주인공.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그녀, 주머니의 스위스칼을 꼭 움켜쥔다. 트럭 옆을 통과하는 순간, 다가오는 남자. “오헨로상, 간바테 구다사이”(순례자님, 기운내세요) “…”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여주인공 뒤로 여전히 걷고 있는 남자, 페이드아웃. 또 ‘간질환’이 도졌다. 인간의 몸에 토끼의 간을 달았는지 터무니없이 작은 간 때문에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둑방길을 빠져나오니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 그제야 길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멀쩡한 남정네 둘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아댄 대가다. 여기저기 길을 물어도 대답은 한결같다. “그 절은 산 넘고 물 건너 저 머나먼 어디께인데…” 누구도 순례길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절망 끝에 시도한 차 얻어타기도 출근시간이라 실패. 결국 무작정 걷는다. 세 시간을 쉬지도 않고 걸어 35번 절 기요타키지에 들어서니 그제야 다리가 풀린다. 도로변의 중국집 ‘누란’에서 교자세트로 점심을 먹는다. 징벌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만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 인생 최악의 만두다. 24시간 배가 고픈 순례자에게 맛없는 만두라면 ‘막장 만두’다. 36번 쇼류지(靑龍寺) 참배를 마치고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간다. 샛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오르막을 이십여 분 오르니 이름도 거창한 ‘국민민숙’. 가쁜 숨을 내쉬는 내 앞으로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진다. 망망한 푸른 바다, 그 바다에 기대어 몸을 내민 산들과 산 밑에 늘어선 작은 마을들. 프런트에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부탁하니 “오늘은 손님도 별로 없으니 좋은 방을 드리죠”라며 웃으신다. 열쇠를 건네던 아저씨, “몇 년 전에 경주에 가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꼭 다시 가고 싶은데…” “제가 제일 사랑하는 도시예요. 참 예쁜 곳이죠?” “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의 많은 것을 파괴했죠. 정말 슬픈 일이에요”라고 덧붙인다.

마을축제 마쓰리에서 사자춤을 추는 아이들.

이 나라를 걷는 동안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 유명한 일본인의 친절과 미소에 관한. 이곳에서 만나는 일본 사람들은 일류 기업의 ‘올해의 친절 사원’으로 뽑힌 사원들을 모아놓은 ‘고객 감동을 위한 집중 연수 과정’에서 최우등상을 탄 사람들 같았다. 공손한 인사를 건네고, 오세타이를 제공하고, 묻기도 전에 길을 알려주는 이들의 친절 의식. 그토록 철저히 몸에 밴 친절과 배려는 몇 번의 일본 여행 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는 말을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는 사람들. 일본인들의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일본의 많은 공중화장실은 문을 안쪽으로 밀면서 열게끔 되어 있다. 당연히 공중화장실은 비좁기 때문에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몹시 불편하다. 불편을 감수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식 배려가 아닐까. 여관의 화장실 앞 실내화는 늘 다음 사람이 신기 편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순례자로 가득 찬 여관의 다다미방에 누워 있으면 단 한 번도 옆방의 소음이 넘어오는 일이 없다. 이 모든 일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도쿄의 지하철에서 받은 충격이 생각난다. 퇴근 시간이라 ‘푸시맨’이 필요할 정도로 붐비는 모습은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지하철 내부가 너무나 고요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침묵에 가까운 고요함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균형을 잃고 옆 사람의 발을 밟는 순간, “미안합니다.” 내 사과보다 발을 밟힌 남자의 사과가 더 빨랐다. 그날, 일본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 남자가 사과한 거야?” “그 사람은 자기가 발을 잘못 놓아서 밟게끔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휴, 나는 발을 밟은 사람조차 미안하다고 잘 말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터였다. 그런 나라에서 코흘리개 시절의 밥상머리에서부터 ‘흉악한 왜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니까 이 친절은 가식이거나 가면일 뿐이라고 애써 폄하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폄하해서, 설령 마음에 없는 예의와 친절이라고 해도, 그게 뭐 어떤가. 작은 예절을 지킴으로써 서로를 배려할 수 있다면.

31번 절에서 만난 목조 좌상.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슬픔이 배어들 것만 같다.

개인적 친절과 국가적 민폐, 그 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늘 미안하고, 실례이고, 죄송한 사람들이 왜 정작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일에는 침묵하는지도 늘 의문이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옆 나라에 끼친 최악의 민폐라니. 이 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일본에 대한 내 끌림은 아직까지 반쪽짜리 혼란한 끌림에 머물고 있다. 시코쿠를 걷는 동안 내게 “한국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던 많은 사람들. 나는 늘 그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뭐가 좋은데요? 당신이 좋아하는 한국이라는 건 결국 드라마의 주인공이거나 허상 아닌가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의 웃는 얼굴뿐 아니라 우는 얼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거 아닌가요? 정말 한국을 좋아한다면 우리의 상처와 자존심도 생각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왜 군대위안부 문제나 교과서 왜곡 문제에는 침묵하는 거죠?”라고. 물론 한 번도 되묻지는 못했다. 그토록 수준 높은 말을 구사할 수 없어서거나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까 싶어서. 처음으로 역사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곳 주인 아저씨. “정말 슬픈 일이죠.” 그 한마디 말이 허물어져가던 내 안의 마지막 장벽을 무너뜨리고 만다.

14일차 27번 절 고노미네지부터 18일차 36번 절 쇼류지까지

짐을 풀고 목욕탕으로 간다. 이곳의 ‘로텐부로’(노천 욕탕)는 완벽하게 나를 무장해제 시킨다. 경계를 지운 하늘과 바다, 그 아래 산과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욕탕에 몸을 담그고 저물녘 바다의 얼굴을 바라본다. 바다의 색이 조금씩 더 푸르러지고 깊어진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분홍빛으로, 붉은빛으로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간다. 사위는 완벽한 정적에 잠겨 있다. 뺨에 와 닿는 서늘한 공기, 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 온몸과 마음에 고루 퍼지는 나른한 행복감. 내 몸에도 바다의 향기가 밴 푸른 물이 들 것만 같다.

글·사진 김남희 도보여행가 skywaywal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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