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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순례길은 지도 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 바다와 산과 마을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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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 ④
콩알만한 간 때문에 혼자 찍은 공포영화, 바다가 보이는 여관에서 감동의 반전을 맛보다
“아나타… 칸고쿠진데스네?”(당신, 한국 사람이죠?) 논두렁 위에서 말을 걸어온 료타. 이마에 “나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쓰여 있는 그는 이 길에서 만난 가장 어린 청년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일하는 스물네 살의 청년. 5일간의 휴가를 내고 이 길을 걷고 있다. 료타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한국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래서 영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몇 마디 한다. “괜찮아?” “피곤해 죽겠어.” “취했어.” 이런 말들. 료타의 집안은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이 많다. 열렬한 한류 팬인 어머니는 혼자 한국말을 공부하고 있고, 형은 한국 기업의 나고야 지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내 친구 료타와 맛본 일본 최고의 음식
우리는 어제 기차를 타고 고치현의 수도인 고치 시내로 나가 모처럼 화려한 도시의 밤을 즐겼다. 최고의 경험은 고치가 자랑하는 생선 숯불구이 ‘가쓰오(가다랭이) 타타키’와 ‘사바(고등어) 타타키’를 먹은 일. 짚불에 재빨리 구워 겉만 익히는 이 생선구이는 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버린다. 뜨겁고 차가운 것, 익은 것과 날것의 조화가 낯설면서도 저릿하다. 날것을 즐기지 못하는 내 미각을 통째로 전복하는 맛이다. ‘일본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에 가쓰오 타타키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기차를 타고 29번 절로 돌아와 어제 멈춘 곳부터 걷는다. 스쿠터를 몰고 가던 할머니가 차를 세우고 다가온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시더니 료타와 나에게 500엔씩을 건넨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순례자를 보면 반드시 오세타이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지. 그건 이 섬의 오랜 전통이거든.” 료타와 할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럴 때면 미소를 띤 채 얌전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수줍은 내 일본어가 원망스럽다. 30번 절 젠라쿠지(善樂寺)에서 잠시 양말을 벗고 통풍을 한다. 지나가던 순례자가 내 물집을 보더니 배낭을 푼다.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유쾌하지 못한 내 발가락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례자의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이 아저씨는 일본 전역을 걸어서 여행 중이란다. 물집에 도움이 될 거라며 발가락 양말을 건네주신 다른 아저씨는 이번이 11번째 순례. 10번은 차로 했고, 도보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멋진 남자들이다.
역 앞에서 나고야로 돌아가는 료타와 헤어졌다. 따뜻하고 속 깊은 친구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됐다. 여행을 한다는 건 매일매일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것. 삶이 곧 이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는 것. 더 머물고 싶어도, 더 함께하고 싶어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결국 ‘진심으로 지극한 것들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익히는 것. 나는 오늘도 머무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다시 배낭을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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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사이를 걷는 순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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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욕탕에서 바라보는 풍경. 나를 완벽하게 무장해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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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러닝 타임 두 시간 반. 주인공이 길 위에서 온갖 풍파를 겪으며 성장해 가는, 스릴러적 요소가 가미된 로드 무비. 무대는 새벽의 인적 없는 둑방길.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주인공을 뒤따라오는 정체불명의 남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한 시간째 따라오고 있다. 길 위에 사람이라고는 그 남자뿐. 정신없이 걸음을 빨리 하는 여주인공의 앞쪽으로 트럭과 한 남자가 보인다. 계속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쫓아온 자신감의 이유가 이거였던가. ‘2인조 강도’라는 본능적인 확신에 무너지는 여주인공.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걷는 그녀, 주머니의 스위스칼을 꼭 움켜쥔다. 트럭 옆을 통과하는 순간, 다가오는 남자. “오헨로상, 간바테 구다사이”(순례자님, 기운내세요) “…”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여주인공 뒤로 여전히 걷고 있는 남자, 페이드아웃. 또 ‘간질환’이 도졌다. 인간의 몸에 토끼의 간을 달았는지 터무니없이 작은 간 때문에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둑방길을 빠져나오니 차가 쌩쌩 달리는 국도. 그제야 길을 잃었음을 깨닫는다. 멀쩡한 남정네 둘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아댄 대가다. 여기저기 길을 물어도 대답은 한결같다. “그 절은 산 넘고 물 건너 저 머나먼 어디께인데…” 누구도 순례길이 어디인지는 모른다. 절망 끝에 시도한 차 얻어타기도 출근시간이라 실패. 결국 무작정 걷는다. 세 시간을 쉬지도 않고 걸어 35번 절 기요타키지에 들어서니 그제야 다리가 풀린다. 도로변의 중국집 ‘누란’에서 교자세트로 점심을 먹는다. 징벌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만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 인생 최악의 만두다. 24시간 배가 고픈 순례자에게 맛없는 만두라면 ‘막장 만두’다. 36번 쇼류지(靑龍寺) 참배를 마치고 예약해 놓은 숙소를 찾아간다. 샛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오르막을 이십여 분 오르니 이름도 거창한 ‘국민민숙’. 가쁜 숨을 내쉬는 내 앞으로 믿기지 않는 풍경이 펼쳐진다. 망망한 푸른 바다, 그 바다에 기대어 몸을 내민 산들과 산 밑에 늘어선 작은 마을들. 프런트에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부탁하니 “오늘은 손님도 별로 없으니 좋은 방을 드리죠”라며 웃으신다. 열쇠를 건네던 아저씨, “몇 년 전에 경주에 가봤는데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꼭 다시 가고 싶은데…” “제가 제일 사랑하는 도시예요. 참 예쁜 곳이죠?” “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의 많은 것을 파괴했죠. 정말 슬픈 일이에요”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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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축제 마쓰리에서 사자춤을 추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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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 절에서 만난 목조 좌상.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슬픔이 배어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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