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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28 22:01 수정 : 2009.01.28 22:01

원두분쇄기는 선배 거~. 크룹스 제공

[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정떨어질 정도로 똑 부러지는 말투와 차가운 인상, 도도하고 세련된 옷차림. 사내 혁신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 받고 특진해서 본부에 온 P 선배. 동기들 승진할 때도 물먹는 무능한 사원이자 만원에 두 장짜리 리어카 와이셔츠 애호가인 나와 그 선배가 어울릴 구석이 있으리라 상상도 안 했다. 능력 있는 선배한테 찍히지나 말아야지. 이렇게 다짐하고 마주칠 때마다 공손히 고개만 숙였다.

어느 날 업무상 P 선배의 사무실에 들렀다. 똑 부러지는 답을 내놓는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던 중 책상 한편에 놓인 하얀 커피 드리퍼를 봤다. 패션지에서 뛰쳐나온 듯한 커리어 우먼 이미지에 어울리는 세련된 제품이 아니었다. 조악한 중국산 싸구려였다. 선배도 이런 걸 쓰는구나! 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키득대며 물었다. “저거 마트에서 파는 2350원짜리 맞죠?” 순간, 그녀의 도도한 표정이 한순간에 무장해제됐다. 연이어 쪽팔린다는 듯, 선배는 누가 들을세라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쓰는 게 저거니까요.” 생각지도 않게 발견한 선배의 알뜰하고 인간적인(?) 면모 덕택에 오후 내내 웃느라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날 이후 괜찮은 커피를 구할 때마다 나눠 먹으며 P 선배와 말을 텄다. 고소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선배는 흙 맛을 좋아하는 나와 취향은 달랐지만, 둘 다 지독한 카페인 중독자였다. 그렇게 죽이 맞은 선배와 나는, 가끔 커피 한잔 앞에 두고 직장 뒷담화는 물론 서로의 연애 상담까지 이야기를 즐겁게 섞는다.

서른 넘어 몸으로 배운 속설 중 하나가 남녀 사이에 우정 없다는 말이다. 그 소리에 고개 끄덕이면서도, 가끔 몽상에 빠진다. 커피 나눠가며 같이 나이 먹는, 속 깊은 이성 친구로서의 선배와 나 말이다. 가끔 수줍은 얼굴로 ‘아저씨’ 이야기를 하는 선배가 야속하기는커녕 귀엽게만 눈에 비치니, 그런 관계가 됐지 싶다. 그러니 선배, ‘아저씨’와 함께 부디 행복하시라. 괜찮은 커피 생길 때마다 ‘아저씨’ 몫까지 챙겨 드리리다.

(p.s. 이 매력적인 여성이 웨딩카 타는 날이 하필이면 올 밸런타인데이 저녁이다. 내 데이트 스케줄 방해해서 미안하다면서도, 애인님 모시고 와서 사진 찍으라고 웃으며 총각 염장을 지른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나 반성해 보니, 내겐 있고 선배에겐 없는 핸드밀을 유난스레 자랑한 죄지 싶다. 그 업보 털기 위해서라도 이 글이 뽑히면 원두분쇄기를 선배와 ‘아저씨’에게 상납할란다.)

김대중/서울 중구 신당5동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esc〉가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진행합니다. ‘연인ㆍ친구ㆍ가족 등 커피를 마실 때 떠오르는 사람과 그에 얽힌 추억’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의 사연을 보내 주세요.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응모하시면, 매주 한분을 뽑아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과 원두분쇄기 산타페(50만원 상당)를 드립니다. 문의 :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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