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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4 19:31 수정 : 2009.02.04 19:31

커피의 면역작용. 크룹스 제공

[매거진 esc]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스물두 살 여름, 그 아이와 헤어졌다. 이별의 첫맛은 의외로 밍밍했다. 흔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에이, 별거 아니잖아. 까짓것 괜찮아. 모두 겪는 거잖아. 이것도 공부지 뭐. 잘 배웠습니다. 이건 정말인데 저 진짜 괜찮거든요?

쿨하게 먼저 뒤돌아 이어폰을 꽂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가슴 아랫부분이 불에 지핀 것처럼 뜨거워졌다. 다 타서 구멍이 뚫려버릴 것 같이 화끈거렸다. 게다가 땡볕의 아스팔트 위로 이글거리는 아지랑이는 왜 그렇게 어지럽던지. 치밀어 오르는 현기증에 딱 쓰러질 것만 같던 와중에도 “괜찮다”라고 되뇌고 있었다. 이 등신, 괜찮긴 뭐가 괜찮아. 괜찮을 턱이 없잖아.

그러고는 탈탈거리는 샌들 뒷굽을 보도블록에 부딪히며 앞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어갔다. 에어컨 바람이 잘 오는 쪽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땀에 젖은 앞머리를 날리며 한참을 앉아 있다가 주문대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그날따라 왜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시커먼 에스프레소를 시켰을까.

그 아이와 붙어 다닐 때 커피도 참 어지간히 마셨더랬다. 학교 앞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팔짱을 끼고 들어가 커피 두 잔을 시키고 새로 온 손님들이 앉을 자리가 있든 없든 몇 시간이고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 수다나 떠는 게 그 시절 갈 곳 없는 캠퍼스 커플 데이트 코스의 트렌드였다. 자연스레 유명 커피숍의 메뉴는 거의 다 맛보게 되었으나 커피가 목적이 아니었던 데이트에서 에스프레소만은 왠지 건드릴 수 없었다.

에스프레소에만은 그놈과의 기억이 녹아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걸까? 시커먼 액체에 입술만 갖다 대었다. 커피를 맛보며 “망할 놈의 커피네”라고 인상을 찌푸려도 테이블 맞은편에 내 짜증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이 굉장히 낯설었고 차가웠고, 아렸다. ‘바닥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어둠과 쓴맛으로 무장하였으면서 고소한 향기로 유혹하는 이 액체보다도 더한 건, 남자야!’란 생각과 동시에, 에스프레소를 원샷 하였다. 에스프레소는 예상보다 훨씬 진했고 눈물이 왈칵 볼 위로 쏟아졌다.

그날 밤 남자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커피가 너무 써서 우는 거라며, 달이 저물 때까지 엄마 품에 기대어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한 바가지쯤 쏟아냈다.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뀐 이제,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눈물이 나오진 않는다. 커피도 마시면 면역력이 생기는구나. 커피에도 면역작용이 있다는 사실, 사랑이 내 삶을 관통하며 가르쳐준 비밀이다.

이연혜/서울 광진구 화양동



KRUPS와 함께하는 커피 사연 공모전
〈esc〉가 독일 명품 소형가전 크룹스와 커피 사연 공모전을 두번째 주제로 진행합니다. 이달 9일부터 ‘당신의 기억 속에 커피가 가장 맛있던 순간·에피소드’를 주제로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의 사연을 보내 주세요.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 접속해 esc를 클릭한 뒤 커피 사연 공모란에 응모하시면, 매주 한분을 뽑아 크룹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엑스피4050과 원두분쇄기 산타페(50만원 상당)를 드립니다. 문의 : (02)710-0335, (02)2193-0655(상품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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