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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숨바꼭질하듯 사라졌다 나타난다. 해변을 걷고 있는 쓰즈미상과 요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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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남희의 시코쿠 도보여행 ⑤
순례자의 길 벗어나 온천에서의 달콤했던 한때…물집 사라지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네
더 이상 나는 순례자가 아니다. 지팡이를 내려놓고, 흰옷을 벗고, 무거운 배낭도 팽개쳤다. 오늘부터 사흘간, 나는 ‘관광객’으로 돌아선다. 서울에서 벗들이 날아왔다. ‘격려방문’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에히메현의 수도인 마쓰야마로 건너왔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의 무대로 유명한 도시. 나쓰메 소세키는 젊은 시절 이곳 중학교에서 1년간 영어교사로 재직했는데 그 경험을 소설 <봇짱>에 담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도련님은 내가 만난 일본 소설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철없고, 다혈질에, 직선적이고, 제멋대로인, 하지만 왠지 사랑스러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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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의 하나인 도고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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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를 가득 채운 소세키의 유산
일본인들도 그런 봇짱을 사랑해 도시 곳곳에는 소설의 흔적이 가득하다. 주인공 봇짱이 ‘성냥갑 같다’고 묘사한 ‘봇짱 열차’가 달리고, 지조 없는 여주인공 ‘마돈나 버스’가 운행 중이고, 매시 정각마다 소설 속 인물들이 튀어나오는 시계탑도 서 있다. 그 앞에서는 봇짱과 마돈나의 차림을 한 자원봉사자들이 기념 촬영도 해준다. 도시 곳곳에는 주인공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이 걸려 있고, 기념품용 타월이나 티셔츠에도 어김없이 주인공들이 찍혀 있다. 상업적이긴 해도 이토록 문학의 향기로 가득한 도시가 있다니 멋지다. 그렇게 봇짱의 흔적이 가득한 시내에서 버스를 타는 휠체어 장애인을 만났다. 버스에서 발판이 스르르 내려오고 장애인은 별 어려움 없이 혼자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강렬한 부러움이 밀려든다. 내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 정도다. 이곳 일본의 신호등이 놀랍도록 긴 것만 봐도, 지하도에 늘 장애인용 길이 따로 있는 걸 봐도, 휠체어 장애인의 이동권이 확보된 것만 봐도, 이들의 약자에 대한 처우는 우리 사회보다 훨씬 낫다. 봇짱 열차와 노면전차를 갈아타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우리는 그 유명한 도고(道後) 온천으로 향한다.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소세키가 즐겨 찾던 곳이자 ‘도련님’이 빨간 수건을 목에 걸고 매일 밤 찾아가던 온천이다. 또 소세키의 절친한 친구이자 유명한 하이쿠 시인 마사오카 시키가 한때 머물기도 했던 곳. 무엇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귀할멈 유바바가 운영하는 온천의 모델이 된 곳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고풍스런 3층 목조건축물은 위풍도 당당하다. 벗의 배려로 가장 비싼 표를 끊고 들어선다. 3층의 별실에서 유카타로 갈아입고 1층과 2층을 오가며 온천욕을 즐긴다. 부상을 입은 백로가 바위 틈새에서 솟아나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자 씻은 듯 상처가 나았고 그 뒤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온천수다. <봇짱>에서도 도쿄 출신의 주인공이 “무엇을 보아도 도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온천만은 훌륭하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온천욕을 마친 뒤에는 별실에서 소세키가 즐겨 먹었다는 ‘봇짱 경단’을 먹으며 잠시 쉰다. 아, 오늘로써 확실히 망했다. 지난 20일간 1킬로그램이라도 빠졌다면 앞으로 사흘간 3킬로그램은 불어버릴 게 틀림없다. 걷지도 않고 매일 먹기만 하고 있으니. 오늘만 해도 아침은 호텔의 뷔페, 점심은 홋카이도산 대게 코스 요리, 저녁은 스시와 우동, 야식은 사발면에 맥주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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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는 소설 <봇짱>으로 먹고사는 도시다. 아직도 운행 중인 봇짱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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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의 배려로 사흘간 잘 먹고 잘 놀다가 다시 순례자로 돌아가는 길. 구름 낀 산을 끌고 기차는 달려간다. 산들의 이마마다 붉고 노란 점들이 번져 있다. 가을이 물들고 있다. 나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를 읽다가 가끔씩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소설 속은 봄빛이 자욱하지만, 현실의 가을색도 나쁘지 않다. 마침내 도사 이리노 역, 사흘 전 그 자리다. 몸과 마음에 낀 기름때를 벗기고 다시 간소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숨바꼭질하듯 사라졌다 나타나는 바다의 고운 얼굴. 바다에서 불어와 산으로 향하는 맑고 깨끗한 바람. 어깨로 내려앉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내 앞에는 앉았다 일어섰다 휘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제멋대로 자유로운 길. 두 팔을 땅에서 떼고 등을 곧추세워 처음 두 발로 걷던 순간, 인간의 기분은 어땠을까? 자유로워진 두 손, 넓어진 시야가 척추의 아픔을 잊게 했을까? 오랜만에 물집의 고통에서 벗어난 지금, 두 발로 처음 걷는 최초의 인간 루시라도 된 것 같다. 게으르게 뒤척이는 바다도, 아직은 초록이 짙은 나무들도, 길을 알려주는 빨간 화살표도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이 순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가야 할 길이 있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몸을 쓰는 일은 얼마나 정직한 일인가. 여기에는 얄팍한 계산이나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걷는 일에는 프로도 없고, 경쟁도 없으니.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한 응시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 따위야 아무 상관도 없이 나는 그저 길의 끝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목이 마르면 건네주는 녹차를 마시고, 배가 고프면 쥐여주는 빵을 먹는다. 게다가 오늘은 이야기를 나눌 동행까지 있다. 오사카에서 온 쓰즈미상과 요코상. 딸의 친구인 요코상과 함께 걷는 쓰즈미상은 두 번째 도보 순례다. 점심도 그들의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내가 애용하는 편의점의 300엔짜리 초밥 도시락-환율이 솟구친 터라 점심은 무조건 편의점의 도시락이 되어버렸다-보다 양도 많고 50엔이나 싼 도시락이라니. 참을 수 없이 궁금하다. 어디 편의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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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타를 입은 채 도고온천 상점가를 걷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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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은 푸세식이라도 인생극장은 흥겹구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걷고 있는 순례자와 마주쳤다. 절룩거리며 걷고 있는 할아버지 순례자. 뇌출혈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른팔과 다리가 많이 불편한 상태다. 할아버지의 속도로는 한 시간에 1.5킬로미터나 걸을 수 있을까. 그래서 하루에 12킬로미터씩 걷는 게 목표라고 하신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이 길의 끝에 섰을 때 그분과 나의 1200킬로미터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겠지. 인간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슬픔을 감추고 웃을 수 있고, 고통을 참으며 전진할 수 있으니. 고작 물집 몇 개로 그토록 비명을 질러댔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오늘 우리가 머무는 민박집의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77살과 78살이시다. 취미는 손님들을 상대로 ‘인생극장’ 상영하기. 지금껏 머문 숙소 중 최악의 시설-화장실도 ‘푸세식’-이지만, 저녁 식사 자리는 흥겹기만 하다. 요코상은 진양조로 늘어지는 주인 할머니의 길고 긴 인생 이야기에 잘도 장단을 맞추고 있다. 남편이 은퇴한 후 시코쿠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게 꿈인 쓰즈미상은 할아버지와 여관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내 앞자리에 앉은 가가야상은 지난해 3월에 정년퇴직한 예순의 남자. 지금까지 살아온 60년 인생에 감사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뭔가를 달라고 빌고 싶지는 않아요. 감사할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선한 인상만큼이나 욕심 없는 마음이다. “조직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해요. 40년을 일했으니까. 이젠 남의 눈이 아닌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고 싶어요. 지금껏 미뤄온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좋아하는 등산도 실컷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깊어가는 이야기만큼 까맣게 짙어지는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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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를 입은 이 여인들은 마쓰야마성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무료로 사진을 찍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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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쓰즈미상 요코상과 종일 함께 걷는다. 39번 절 엔코지(延光寺)는 한껏 멋을 부렸지만 격이 확연히 떨어진다. 초록 페인트칠을 한 홍법대사 동상이며 반들거리는 불탑과 조각들이라니. 게다가 경내의 바닥을 전부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자갈까지 박아 넣었다. 안목 없는 주지스님이 갑자기 돈벼락이라도 맞으신 걸까. 절간의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 쓰즈미상이 부러운 듯 나를 바라본다. 두 사람은 사흘째 볼일을 못 보고 있단다. 지난 사흘간 우리가 머문 여관의 화장실이 전부 쪼그려 앉는 화장실인 덕분에. 나는야 세계여행가. 화장실의 위생 상태나 구조 따위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 내가 겪은 ‘세계 최악의 화장실’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일본 화장실의 훌륭함을 역설한다. 영어를 조금 하는 쓰즈미상, 요코상과 이야기할수록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간다. 이들에게 느끼는 내 고마움을, 길 위에서 얻는 가르침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개월 공부하고 온 내 일어로는 생존만이 겨우 가능할 뿐이다. 물론 일어를 하지 못해도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말을 하지 못해도 사람을 만나고 진심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뜨겁게 나누고 싶다. 소통이 있어야 여행의 기쁨이 배가되고,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만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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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야마성에서 내려다본 마쓰야마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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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됐다. 닷새를 함께 걸은 쓰즈미상은 오사카로 돌아갔다. “오사카에 오면 꼭 우리집에서 머물러야 해요. 날 엄마라고 생각하고. 나에겐 이제 한국인 딸이 생긴 거네.” 그렇게 말하며 나를 포옹하던 쓰즈미상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차다. 아직 단풍도 물들지 않았는데 겨울이 오는 건 아니겠지. 노숙을 한 후 막 출발하는 순례자의 뒤를 따라 한동안 걸었다. 지난밤 얼마나 추웠을까. 아침 식사는 했을까. 지쳐 보이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리다. 말을 건네니 그는 이탈리아에서 온 로자리오. 지난 며칠간 다른 순례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터라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다. “너에 대해 많이 들었어. 하루에 300엔으로 생활한다는 거 진짜야?” “설마, 그럴 리가. 조금 더 써. 500~600엔 정도.” “닌자 스쿨에 갈 거라는 것도 사실이야? 그럼 프로페셔널 킬러가 되는 거야?” “닌자 스쿨에 가는 건 맞는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어. 킬러 양성학교가 아니라 수행을 하는 곳이야.” “노숙하면서 걷는 거 힘들지 않아?” “지금은 괜찮아. 첫날은 버스정류장에서 잤는데 일주일 정도는 잠자리 걱정으로 하루가 다 갔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더라구.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는 건데 말이야. 지금은 걱정 안 해. 내 방식대로 살면서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 거지.”
로자리오에게 오세타이를 선물하다
어느새 40번 절 간지자이지(觀自在寺) 입구다. “근데, 일본 절에는 왜 스님이 보이질 않는 거지? 여쭤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뭘 물어보고 싶은데?” “글쎄…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 “흠. 그거 좋은 질문이네.” “어, 농담이었는데… 난 이제 그 주제에는 별로 관심 없어.” “왜?” “고통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걸 아니까. 나름대로 파란만장했던 내 인생을 통해서 배운 게 있다면, 고통이야말로 가장 큰 스승이라는 걸 깨달은 거야. 물론 힘든 일을 겪을 때면 아픔은 늘 새롭지만 그리 두렵진 않아. 고통과 마주할 용기가 조금은 생겼거든.” 잠시 말이 없던 로자리오가 말한다. “널 만나서 기뻐. 오늘 좀 지쳐 있었는데 기운이 났어.” 헤어지기 전, 절 앞의 빵집으로 뛰어가 빵 한 봉지를 사들고 와 그에게 건넨다. 나도 그를 만나 기뻤으니까. 로자리오도, 나도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고통을 겪게 되겠지.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성장을 계속하리라는 것도 믿는다. 늘 그랬듯, 결국 이 이야기도 여전히 성장통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의 소소한 이야기일 뿐이다.
글·사진 김남희 도보여행가 skywaywalk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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