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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범 CCTV ‘일계급 특진’을 허하라?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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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쏙]
‘연쇄살인범 강씨’ 검거에 결정적 역할
경찰, 내친김에 ‘CCTV 공화국’ 만들 태세 폭발적 증가속 인권침해 대책엔 무방비
“CCTV보다 범죄 증가율 높아” 무용론도 저, 폐쇄회로텔레비전입니다. 제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꽉 막힌 인상으로 보십니다. 사실 제 이름은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만 ‘폐쇄’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제 반대는 ‘개방회로텔레비전’이 되겠습니다. 그건 뭐냐구요. 여러분들이 늘 보시는 텔레비전 방송입니다. 좌우지간 저희들이 이번에 ‘한 건’ 했습니다. 경기 서남부를 공포로 몰아넣은 희대의 살인마 피의자 강아무개(39)씨가 저희 덕분에 잡혔잖습니까. 사실 저희가 해결한 사건만 2000년 이후 300건도 넘습니다. 꼭 1년 전,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피의자인 채아무개(71)씨가 어떻게 붙잡혔는지는 가물가물하시죠? 사건 당일 사다리 메고 버스 타고 숭례문 있는 태평로로 가는 모습이 찍혀서 검거됐습니다. 지난해 일산 아파트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도 마찬가지죠. 제가 해결한 다른 사건도 수도 없습니다. 에헴. 이번 군포 여대생 실종사건은 특히 저희 공이 컸다고들 합니다. 우리 폐쇄회로텔레비전이 그사이 놀라실 정도로 발전했거든요. 요즘 새로 오는 후배들은 정말 성능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우리의 놀라운 능력만큼이나 우리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더군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우리 폐쇄회로텔레비전 세상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CCTV에도 급이 있어요
연쇄살인 피의자 강씨 검거에 일등공신이 된 친구는 경기 안산시 건건동 도로변에 달린 폐쇄회로입니다. 이 친구는 우리와 좀 달리 아주 잘난 녀석입니다. 저희 폐쇄회로텔레비전들은 경찰이 관리하는데, 우리는 방범용 시시티브이이고, 새로 나온 이 친구는 광역형 시시티브이라고 해요. 왜 그러냐면 우리보다 성능이 훨씬 좋거든요. 제 친구들은 주로 도로에서 차량 흐름을 파악하거나 과속 차량을 찍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기 아래를 지나가는 모든 차들의 번호판과 운전자를 4장씩 찍어냅니다. 차량번호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시스템도 갖췄어요. 달려오는 차량 속도를 일찌감치 감지해 화면이 흔들리는 폭과 각도를 미리 예상해서 흔들리는 영상을 순간적으로 보정해주는 겁니다. 저희들은 흉내도 못 내는 꿈의 기술이죠. 세상 참 좋아진 건가요? 군포 여대생을 유인 납치해서 태우고 가던 강씨 승용차도 바로 이 기술을 써서 번호판을 선명하게 찍었습니다. 이 첨단 시시티브이가 새로 달리지 않았더라면 사건은 아직도 미궁이었을 겁니다. 이 잘난 후배들은 몸값도 저희보다 3배 이상 비싸요. 한 대당 3500만~4000만원 정도 합니다. 고급 승용차 값이죠. 안산 상록구 관내에 달랑 2대뿐인 고가 장비입니다. 그런데 요즘엔 또다른 시시티브이도 있어요. 특정 수배자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정말 똘똘한 녀석도 나왔다고 하네요. 우리나라가 기술을 가지고 있고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외국에선 공항이나 역에서 쓰고 있다고 합니다. 대신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수배 차량의 번호판을 인식해 바로 경찰에 연결해주는 친구들도 국내에 80여대가 가동 중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장 잘나가는 친구들이죠. 강남에도 아날로그 CCTV 있다 그럼 평범한 우리 ‘방범용’들은 어떤 녀석들이냐구요? 우리 폐쇄회로티브이가 국내에 처음 방범용으로 들어온 건 월드컵의 해 2002년이었어요. 서울 강남에 처음 달렸죠. 그때만 해도 저희는 아날로그가 대세였어요. 얼마 전 서울 양재동 빌라 살인사건에서 범인들이 타고 온 차량을 희미하게 찍은 친구 있죠? 그 선수가 30만화소짜리예요. 아날로그 친구들이 사실 야간 촬영에 좀 약하죠. 원격제어도 불가능해서 ‘답답이’라고 놀림도 많이 받아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대신 아날로그는 능력 부족을 외모로 만회합니다. 긴 막대형이어서 카메라가 달려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줄 수 있는 거, 요즘 나온 초소형 애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죠. 그래서 아직 저희들이 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디지털카메라 세상이 되면서 시시티브이도 200만 화소 해상도에 25배 줌 기능이 기본이 됐습니다. 360도 회전 스캔! 앞뒤 200미터 정도는 팍팍 잡아주는 줌! 이런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후생가외’가 아니라 완전 세대교체 당하게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지자체 어머니는 경찰? 저희들의 본고장은 서울 강남구입니다. 2002년 설치를 시작해 2004년에는 관제센터까지 만들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시시티브이의 21%인 412대가 강남구에 달려 있습니다. 저희 시시티브이가 이름 때문에 흔할 것 같아도 유지비가 좀 세서 그리 흔하지 않다는 거. 우리 시스템은 카메라와 모니터, 연결하고 제어하는 통신망에 서버로 팀을 짭니다. 대당 설치가격은 1000만~1500만원이고, 대당 운영비가 연간 150만~200만원 선입니다. 안산 최신형 친구보단 저렴해도 웬만한 지자체는 저희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값은 지자체가 내고, 관리는 경찰에서 한답니다. 일단 저희가 설치되면 관제센터가 인터넷망으로 제어를 합니다. 저희는 유통기한이 아니라 근무기한이 있어요. 5년이 저희 수명입니다. 5년 동안 24시간 내내 찍은 영상을 관제센터 서버로 보내야 합니다. 관제센터에서는 우리의 줌과 스캔 기능으로 골목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행범들을 제법 잡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의 오토바이 절도나 자판기 야간 절도 같은 건 우리가 잘 잡죠. 범죄예방 효과 있나 없나? 범죄 막자고 데려온 저희가 과연 일을 제대로 하느냐는 논란이 요즘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청이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강남구 총범죄량은 2002년 3만2294건에서 2007년 2만9352건으로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설치된 2004년에는 오히려 건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보면 별무효과죠. 하지만 분명 뚜렷하게 줄어든 범죄도 있습니다. 절도 사건은 처음 시시티브이가 달린 2002년 5864건이었지만 2007년에는 1680건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같은 기간에 강도도 303건에서 95건으로 줄었습니다. 제일 줄어든 것은 방화 사건입니다. 76건에서 8건으로 무려 10분의 1로 급감했습니다. 에헴. 하지만 저희가 다 막을 수야 있나요. 살인, 강간, 폭력 같은 범죄들은 저희가 눈을 부릅뜬다고 줄어드는 범죄가 아닌 탓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국감에서 박대해 한나라당 의원은 “시시티브이 증가율보다 범죄증가율이 더 높다”며 “대당 1500만원이나 하는 시시티브이 설치보다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이 통계대로라면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저희가 최선은 아니란 것이겠죠. 범죄율과 이동 경로 등을 고려해 시의 경계 주변에 차량번호와 운전자를 확인할 수 있는 고성능 시시티브이를 설치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늘어나는 CCTV…관련법은 없다 논란이 어떻게 진행되든 저희는 요즘 숫자가 팍팍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만 서울에서 488대가 증가했습니다. 경기도는 2007년보다 3배 이상 많은 1129대로 늘어났어요. 경기도는 내친김에 올 한 해에 지금까지 설치된 것보다 더 많은 1700대를 들여놓겠답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에 공공기관이 설치한 우리 식구들은 15만6249대라고 합니다. 또 은행이나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민간용 시시티브이까지 합치면 300만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데도 저희의 설치에 관한 구체적은 법률은 없답니다. 골목길 목욕탕에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는데도 어떻게 설치되고 어떻게 운용돼야 하는지 정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저희 탓은 아니어도 참 신경 쓰입니다. 인권침해 논란도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관리하시는 여러분들, 저희가 시민들이 원하시는 대로 효과 내면서 몸값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하루빨리 결론 좀 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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