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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1 18:52 수정 : 2009.02.11 19:22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나도 내가 10년 동안 버틸 줄 몰랐다. 입사 직후부터 “나 죽는다” “사표 쓴다” 입에 붙이고 사니 말리던 친구들도 요즘엔 “대체 언제 그만둘 거냐,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몇 명은 내가 이렇게 아픈 다리 절며 고개 넘듯 회사 다니다 정년퇴직할 거라고 점치고 있다.

그렇다, 나에겐 아직 풀어야 할 사건이 있다. 1999년 겨울 경찰서를 돌며 본 조서 가운데 잊지 못한 사건이 있다. 재봉틀 달랑 몇 대 들여놓고 코딱지만한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은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다 공장 앞 단골 밥집 아줌마한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 사장님, 이사 가?” 이게 무슨 아닌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시골에서 올라온 뒤 갈 곳 없어 작업실에서 먹고 자던 종업원 춘호가 재봉틀을 트럭에 실어 갔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라면을 말아올리던 젓가락을 내던지고 바로 춘호에게 삐삐를 쳤다. 희한하게 곧 전화가 왔다. “춘호야 니가….” 춘호는 울먹이며 답했다. “사장님, 나중에 전화드릴께유….” 뚜뚜뚜. 사장은 한동안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사장이 삐삐 쳤다고 도둑질하고 전화할 정도로 허술한 춘호는 대체 왜 재봉틀을 가져갔을까? 춘호가 그럴 리 없다며 삐삐 쳐 확인하는 물렁한 김 사장은 결국 춘호를 잡았을까?

그 겨울, 추적하다가 놓친 개도 있다. 어느 날 초등학생 박양은 동네 골목을 들어서다 똥개에게 물렸다. 문제는 그 개가 누구 집 개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개는 김씨네 집 문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며 앉아 있었고, 김씨 집 앞 슈퍼마켓 아저씨나 세탁소 아줌마나 모두 “저 개는 김씨 개가 맞다”고 증언했으나 김씨만은 완강하게 “내 개가 절대 아니다”라고 잡아뗐다. 귓불을 찢어낼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나는 개가 김씨 소유임을 증명하려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경찰은 사람을 문데다 주인도 누군지 모를 그 개는 결국 안락사될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 개가 김씨의 개라는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희한한 미스터리는 대체 내가 어떻게 안 잘리고 사표 안 내고 버티냐는 거다. 기사 쓰다 보면 “왜 이렇게밖에 못쓰냐” 자괴감이 치밀어오르고, 전화통 붙들고 똑같은 거 수십 번 묻다 보면 진저리나게 지겨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속상하다가도 이상하게 술 퍼마시고 정신이 해롱해롱해져 욕지거리 뱉고, 옆사람 지분거리며 추태를 한 다스 벌이고 나면 또 속이 좀 후련해지면서 “이렇게 사는 게 뭐가 또 굳이 그렇게 싫은가” 싶어진다. 다음날 꾸역꾸역 출근하면 또 정신없어 사표 쓰는 걸 깜빡 잊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겠나, 사람 물고 비명횡사했을 개만 빼고, 배신감에 서러웠을 김 사장, 죄책감에 괴로웠을 춘호, 기삿거리 없어 똥줄이 타는 나에게도 내일의 태양은 꼭 그렇게 뜨고야 마는 것을….

이번 회를 끝으로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 여기자 k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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