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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핑 범벅이 아닌 쫀득한 육질의 와플을 맛볼 수 있는 대구 ‘커피마루’. 사진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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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카페정키
몇 해 전 체코의 온천도시 마리안스케라즈네에 들렀을 때다. 나와 친구는 눈발이 휘날리는 저녁 어스름 속에 숙소를 나섰다. 오래된 온천탕이 있어 들어가 볼까 고민하던 차에 눈 덮인 공원 너머의 거대한 유리건물이 우리를 불렀다. 건물 안은 작은 도자기잔으로 온천수를 마시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친구는 고양이, 나는 쥐 모양의 잔을 사서 그들 사이에 끼었다. 맙소사! 시큼떨떠름한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부리나케 얇은 과자 속에 달콤한 크림이 든 와퍼(wafer)로 입가심을 해야만 했다. 서울에 돌아오니 와플 붐이 일고 있었다. 우리가 체코에서 먹었던 와퍼가 한쪽으로는 과자로 진화해 웨하스(wafers)가 되었고, 다른 쪽으로는 도톰한 빵으로 변신해 와플(waffle)이 되었다는 사실도 그즈음 알게 되었다. 와플 붐은 아마도 <섹스 앤 더 시티>가 데리고 온 뉴요커 스타일의 브런치 붐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휴일의 느긋한 시간에 근사한 카페에 가서 커피와 함께할 수 있는 식사 대용의 푸짐한 먹을거리. 게다가 다채로운 토핑이 뒤덮인 화려한 자태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블로그나 미니 홈페이지에 올리기에 아주 적격이다. 간판부터 달짝지근한 소녀풍의 카페나 브런치 전문 카페에서 이 메뉴를 발견하는 건 별 위화감이 없다. 그러나 오랜 전통의 드립 카페의 메뉴판 제일 앞자리에 그 이름을 새겨 넣을 만큼 이 녀석이 대한민국 카페를 지배할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효모를 써 가볍고 바삭거리는 간식용의 벨기에 스타일,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두툼하게 식사 대용으로 먹는 아메리칸 스타일 등 와플에도 개성은 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과 생크림 토핑 범벅으로 테이블에 올라와 와플 자체의 쫄깃한 육질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 과잉된 맛이 커피의 진미를 뒤덮어버리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어쨌든 우리의 카페 가계부에서 배보다 훨씬 큰 배꼽임에는 틀림없다.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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