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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1 19:52 수정 : 2009.02.14 11:17

젊은 남성들이 인터넷에서 직접 옷을 구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인터넷 쇼핑 마니아 남성 3인의 좌충우돌 쇼핑 편력기

기자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싫어하지만, 조금이나마 미국 국방부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들이 1960년대에 처음 만든 인터넷의 원형 ‘아르파넷’이 쇼핑에 쓰일 줄 예상이나 했겠냐는 말이다. 지금 인터넷은 히피룩에서 정장까지 없는 옷이 없는 쇼핑몰이 됐다. 남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마켓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해 남성복 전체 시장은 약 5조원으로, 이 가운데 온라인 남성 패션은 약 11%(5500억원)를 차지한다.

그러나 인터넷 쇼핑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마구 클릭했다간 ‘싼 게 비지떡’임을 느끼고 눈물 흘리기 십상이다.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남자들’ 이야기를 준비하며, 인터넷 옷 쇼핑에 중독됐던 세 30대 남자의 편력기를 먼저 싣는 까닭이다. 30대 미혼의 후줄근한 <한겨레> 남자 기자가 인터넷 패션 스타일링을 통해 거듭난 비법도 정리했다. 봄에 스타일을 바꿔보고 싶은 남성은 쇼핑 요령도 놓치지 말길.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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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 오류 적은 신발 쇼핑 믿을 만

나름 멋을 추구하는 나도 인터넷으로 옷을 사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지금의 인터넷 옷 쇼핑 기술은 이런 경험에서 태어났다. 내가 인터넷으로 옷을 살 때 늘 신경 쓰는 부분은 소매 기장과 바지 기장이다. 나는 키가 182㎝에 몸무게가 75㎏인데(자랑은 아니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뜬 제품은 보통 한 가지 치수나 두 가지 치수(스몰과 라지)로만 나와 모델이 입은 모습이 예뻐서 샀다가 종종 낭패를 봤다.

값이 ‘착해서’ 흰색 와이셔츠와 면바지를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적이 있다. 조금 작았지만 워낙 값이 싸고 디자인이 예뻐 서너 번 입고 말았다. 결국 생각만 하다 반품 시기를 놓쳤고, 세탁을 하고 나니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 크기 때문에 가슴을 치며 그냥 버렸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한 명품 구매도 많은가 보다. 나도 딱 한번 발리 지갑을 산 적이 있는데 사진상의 상품 이미지와 안에 인쇄된 디테일이 진품을 의심하게 할 정도라 지금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내심 찜찜하다. 수년간의 인터넷 쇼핑 ‘수행’ 끝에 옷과 명품은 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치수 오류가 생기기 어려운 인터넷 신발 쇼핑이 내 앞에 나타났다.

박재상(36·외국계 회사 근무)


내 다리를 절망하게 한 부츠컷 청바지

백화점이나 매장으로 옷을 사러 간 게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항상 인터넷으로 옷을 사는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 인터넷으로 사면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 쇼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사진 속 모델이 표준 사이즈를 입고 있어 속기 쉽다는 점.

남들이 말하는 ‘숏다리’인 나는 성공 구매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해야 했다. 7~8년쯤 됐을까? 부츠컷을 유달리 좋아하는 나는 최초로 부츠컷 청바지를 인터넷으로 사는 모험에 나섰다. 허리부터 무릎까지는 폭이 좁은데 무릎부터 끝단까지 넓어지는 스타일인 부츠컷은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고마운 ‘착시 현상’을 낳는다.

색이 적당히 빠진,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했다. 나름 재봉선과 마감을 꼼꼼히 살펴 주문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설레는 맘을 누르고 퇴근해 받아든 부츠컷 청바지는 항상 나를 절망하게 했다. 허리에 맞춰 적당히 기장을 자를 생각으로 샀지만, 기장을 자른 부츠컷 청바지는 중간에 끊긴 느낌을 줬다. 산 게 아까워 한동안 입고 다녔지만 길거리 사람들이 “저 녀석 다리가 짧은데다 굵은 하체를 가졌네”라고 놀리는 환청에 시달려야 했다. 그날 이후로 부츠컷을 살 때는 절대로 총기장을 다리에 맞춰 산다. 내게 인터넷 옷 쇼핑은 매순간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험이다.

백상훈(34·유학생)


똑같은 짝퉁 만났을 때의 망신이라니

“외모로 사회계층을 알아채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조지 오웰은 이미 두 세대 전인 1944년에 이렇게 썼다. 적어도 옷의 영역에서 계급은 가고 스타일만 남은 건 사실로 보인다. 1920년대까지 영국에서는 셔츠에 칼라가 있고 없음으로 귀족과 노동계급을 구별했다. 도포로 양반·상민을 구분하던 조선 말기보다, 도포를 금지하고 양반과 상민이 함께 입도록 두루마기로 개량한 갑오개혁 무렵의 구한말이 더 민주적이며, 구한말보다 지금이 더 민주적인 것 같다.

그러나 ‘구별짓기’를 둘러싼 싸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짝퉁 가려내기가 다른 저작권 분쟁에 비해 유독 화제가 되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나의 짝퉁 인생도 인터넷 쇼핑으로 시작했다.(내가 산 옷들이 죄다 짝퉁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질 샌더 셔츠가 4만2000원일 리는 없잖은가) 그러나 짝퉁을 사서 민망해본 적이 거의 없다. 스스로 계층 차별과 싸우는 투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대충 괜찮은 옷을 싸게 사면 그걸로 족했다. 2005년 초봄 겪은 일을 빼고는 말이다.

그해 겨울 디 스퀘어(짝퉁으로 추정되는) 점퍼를 샀다. 칼라와 소매에 털이 달린 항공점퍼 스타일에 어두운 와인색 계통이었다. 인조 냄새가 물씬 나는 털을 빼면 나머지 부분은 질감도 좋았다. 가격마저 저렴한 나만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었다. 한동안 득의의 미소를 머금고 입고 다녔다.

그해 2월 주말 오후 2호선 신촌역에서 이대입구역으로 친구와 걸어 올라가던 길이었다. 대충 얼마 전에 한 소개팅 따위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2열 종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인도 맞은편에서 휴가 나온 군인인 듯 머리가 짧은 20대 초반 남자가 똑같은 점퍼를 입고 내려오고 있었다. 처음 녀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 기분이 묘했다. 같은 집을 털다 우연히 도둑들이 마주친 느낌이랄까? 종종걸음으로 사라진 걸 보면 녀석도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같은 서민으로서 연대감이라도 느꼈어야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이후 아무리 좋은 물건으로 보여도 너무 많이 팔린 제품은 사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길 가다 두리번거리는 버릇도 함께.

고나무(34·<es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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