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2.12 19:11 수정 : 2009.02.13 11:05

21세기 최고의 스타 산업디자이너로 베엠베를 이끌어온 크리스 뱅글. 그의 파격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은 요즘 자동차 디자인의 새로운 흐름이 됐다.

뱅글 엉덩이: BMW 7시리즈에 처음 선보인 디자인
[뉴스 쏙]

자동차 디자인 혁명가 뱅글, BMW에 사표 주목
차에 보톡스 대신 주름살 입혀…한국행 소문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디자이너를 넘어 가장 유명한 산업디자이너로 불리는 자동차회사 베엠베(BMW)의 디자인 총책임자 크리스 뱅글(53)의 움직임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17년간 몸담아 온 베엠베에 최근 돌연 사표를 낸 것이다. 업계에선 그의 거취를 놓고 여러 설이 무성하다. 현대자동차가 그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미확인 추정도 나돈다.

뱅글이 시도한 새 베엠베 시리즈들은 기존 자동차와는 다른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발표 초기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결국 새 베엠베는 라이벌 벤츠를 판매량에서 앞서며 뱅글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2000년대 자동차 디자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그의 디자인 세계와 성과를 알아본다.

베엠베의 디자인 대장, 크리스 뱅글은 사표를 던지면서 자동차를 넘어 새로운 분야로 뛰어들 것이라고 했다. 역시 특이한 사람이다. 한국인의 눈엔 무모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뱅글은 이력부터 평범하지 않다. 대학(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이어 산업디자인(미국 아트센터 대학)을 전공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그의 인터뷰는 다른 자동차 디자이너와 확실히 다르다. 인문학자처럼 논리가 똑 떨어지고, 쉽고, 스타일이나 유행보다 인간과 문화에 기반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만나면 꼭 이런 질문을 했다. “요즈음 차들은 너무 멋을 부린다. 당신의 차도 그렇지 않나?” 디자이너들은 호탕하게 웃거나, 한참을 망설이거나, “철판 가공 기술이 발달해서 그렇다”고 차분하게 답하거나, “정말 그렇게 보이나? 나는 안 그런데”라고 뒤틀거나, “고맙다. 그렇게 봐줘서”라고 김칫국 비슷한 것을 마시기도 했다. 크리스 뱅글은 주저없이 “제아무리 잘 달리는 베엠베라도 생애 80%는 정지해 있다. 그래서 자동차는 그 자체로서 아름다워야 한다”고 답했다. 명문이었다.


베엠베 디자인연구소에서 매진하던 그가 유명해진 것은 2001년. 당시 출시된 4세대 베엠베 7시리즈 디자인이 혹평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욕을 심하게 많이 먹었다. 7시리즈의 판매가 경쟁모델인 벤츠 S클래스에 밀리는 상황에서 암살 협박까지 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과 함구 속에서 2년 뒤 새로운 5시리즈(지금 한창 굴러다니는 모델)를 발표하는 자리에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7시리즈에 던져졌던 호된 혹평을 여유롭게 긍정했다. “당신들의 지적이 모두 맞다. 7시리즈의 디자인은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기어노브 자리에 붙은 아이드라이브나 와이퍼 스위치 자리에 붙은 시프트 레버, 버튼식 주차 브레이크도 모두 적응하기 힘든 장치들이다. 7시리즈는 그렇게 만든 차다. 시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콘셉트로 만들어졌다. 너무 새로워서 난해했던 장치들이 적응될 즈음이면 7시리즈의 디자인도 눈에 익을 것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7시리즈에 처음 시도된 ‘뱅글 엉덩이’(Bangle Butt)는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가 되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엉덩이도 그렇게 생겼다.

전문가들은 그의 디자인을 업적으로 추대하기도 한다. 볼록한 면만 가득했던 자동차 표면에 오목한 면의 가능성을 설파한 것이 좋은 예다. 2천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팽팽하게 볼록한 면으로만 차를 덮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차가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당차게 보이고, 태양 아래서 간결한 반사면을 만들어 내며, 프레스로 찍어낼 때도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뱅글은 5시리즈와 Z4 등에 오목면과 볼록면을 교차시키며 고정관념을 힘껏 비틀었다. 예상대로 생산이 쉽지 않았고 반사된 빛도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그 모습은 훨씬 당당하고 독보적이었다. 이후 오목한 면은 트렌드가 됐다. 현대자동차 아이써티(i30), 링컨 엠케이에스(MKS) 등의 어깨 부분(측면 유리창 바로 아랫부분)이 그렇게 움푹 파였다. 하지만 몇 대의 베엠베와 몇 개의 트렌드로 그를 칭찬하긴 어렵다. 그의 성과를 조목조목 따지자면 신문 양면을 펼쳐도 모자랄 것이다. 디자이너답게 크리스 뱅글도 그림을 잘 그린다. 2004년 서울오토쇼로 방한한 그와 식사를 할 때 등 뒤에 A4 크기 스프링 노트를 봤다. “불편하지 않나, 등 뒤에 노트가 있던데”라고 했더니, 그제야 등에서 꺼냈다. 잘 때 빼고는 늘 등에 넣어 다닌다는 그 스케치북엔 놀라운 그림들이 가득했다.

뱅글은 멋진 그림에 감탄스러운 언변, 곤충과 비행기의 관계도 파헤칠 법한 인문학적 논리, 디자인을 향한 한없는 열정으로 무장한 천재적인 디자이너다. 최근 몇년간 베엠베의 변화가 그의 저력을 증명해 준다. 보수적인 공학박사 집단인 베엠베가 가장 멋진 회사로 진보했으니 말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거든 인문학부터 공부하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잠시 지구에 떨어져 베엠베를 움직인 우주인 같다. 이제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려는 걸까?

장진택/〈GQ〉 피처디렉터ㆍ전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한겨레 주요기사]
▶ 군포 연쇄살인 취재에 유난히 친절했던 경찰
▶ 삼성 이재용씨 부부 수천억대 이혼 소송
▶원세훈·현인택 임명 강행, 인사치레 청문회?
▶ 외국인 떠나고…집값 폭락하고 ‘바이바이~ 두바이’
▶ OBS 노조 “낙하산 철회” 투쟁 돌입
▶ 돈은 안 도는데…금리 1% 시대 눈앞
▶ 특목고 매달리는 고대 3등 콤플렉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