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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굽·장식 ‘킬힐’ 자신감 유혹
땅에 붙은 듯 ‘플랫’ 실용·멋 함께
세련된 ‘컴포트’ 젊은사랑 듬뿍
힐(heel·굽) 아니면 솔(sole·창). 올봄 여성 구두는 양극화 추세다. 안 그래도 높은 하이힐이 올핸 정말 화끈하게 높아졌다. 패션모델도 못 견디고 넘어질 정도로 위협적인 ‘킬힐’(kill heel·굽높이가 10㎝가 훨씬 넘는 하이힐)이 올봄 거리로 쏟아져나올 기세다. 반면 아주 납작한 창이 붙은 ‘플랫 슈즈’도 인기가 높다. 요즘 서울 명동 거리의 ‘신상’ 구두들은 대부분 킬힐 아니면 플랫 슈즈다. 발이 편안한 컴포트화도 ‘효도신발’ 굴레를 벗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편한 신발을 찾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불황에 따른 우울증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암울한 현실을 화려함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와 고달픈 일상에 지친 심리가 중층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 올봄 구두의 유행 경향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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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의 뒷굽은 발목을 높여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고 신체의 굴곡을 돋보이게 한다. 높은 하이힐을 신게 되면 가슴을 펴고 등을 꼿꼿하게 세워야 몸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하이힐이 여성의 자신감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이유다.
국외 유명 컬렉션을 거쳐 상륙한 ‘킬힐’은 불황기에 기죽은 젊은 여성들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유혹한다. 특히 앞굽의 거대한 플랫폼(가보시)은 자못 구조적이기까지 하다. 뒷굽의 장식도 더욱 화려해졌다. 10㎝가 훨씬 넘는 굽의 표면엔 금속코팅을 하거나 크리스털을 박아넣은 것들이 많이 나왔다. 타임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보석장식 굽을 한 ‘주얼 슈즈’를 선보였다. 젊은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드레스살롱슈즈 카메오의 유지현 디자인실장은 “예전엔 7~8㎝의 굽이 많았지만 올해는 플랫폼(앞부분을 지탱하는 통굽)이 들어오면서 10㎝가 넘는 게 대세”라고 설명했다. 굽은 더 두꺼워져 안정감을 높이면서 복고풍 느낌이 난다. 유 실장은 “발등을 덮는 글래디에이터 슈즈와 강렬한 형광색이 많아질 전망”이라고 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씩씩한 ‘여전사형’ 신발들이다. 표면도 에나멜이나 뱀가죽무늬 등 강렬한 소재가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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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행하는 플랫 슈즈는 둥근 앞코에 리본이 달린 귀여운 스타일과 발가락 쪽이 개방된 ‘토오픈 스타일’이다. 불황 탓에 철마다 구두를 사기 힘든 소비자들이 하나로 여러개 효과를 낼 수 있는 구두를 선호하는 추세다. 오픈 슈즈는 한여름까지 시원하게 신을 수 있어 인기다. 금강제화 마케팅팀의 이현정씨는 “오픈 슈즈의 강점은 계절과 상관없이 신을 수 있는 전천후 아이템이라는 점”이라며 “쌀쌀한 날씨에는 레깅스와 함께 신고 여름엔 맨발에 신어 시원하다”고 설명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밝고 선명한 비비드 컬러가 시각적으로 산뜻해 보인다. 감색이나 검정 등 어두운 색은 둔한 느낌이 나지만 반짝이 소재의 글리터링 슈즈로 선택한다면 조금 가벼워 보일 듯하다. 시각적으로 명랑해 보이는 에나멜 플랫슈즈 또한 잿빛 불황의 기운을 뚫고 올봄 거리를 수놓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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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컴포트화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22.1% 증가해 전체 구두매출 증가율(18.3%)을 훨씬 앞질렀다고 밝혔다. 이 회사 정재욱 대리는 “컴포트화의 구매 연령층이 30~40대로 낮아졌다”고 말한다. 컴포트화 브랜드 락포트도 10% 이상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힌다. 락포트 코리아 홍보담당 김정운씨는 “불황과 구조조정에 따라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편안하고 기능적인 신발을 찾는 추세”라고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BMW족(버스·지하철·걷기족)과 자출족(자동차 출퇴근족)이 늘어나면서 컴포트화가 편안한 비즈니스용 신발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헬스클럽 등 운동시설 이용률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따로 운동시설을 찾는 대신 평소에 걸으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기능성 신발로 편한 구두를 찾는다는 것이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구두소품 협찬: 금강제화, 락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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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굽 3-4cm…컴포트 슈즈 너무 물렁하면 발목 위험
예전 페라가모, 발리 등 ‘명가’들의 구두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놀랄 만큼 편안하다는 데 명품으로서의 가치가 매겨졌다. 하지만 최근 명품 브랜드 구두들은 착화감에서 악명이 높다. 너도나도 높이의 미학에 치중하면서 구두를 편안함보다는 길고 매끈한 신체의 시각적 완성이라는 목표에 복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선 까치발을 만드는 데다, 발가락을 안쪽으로 억지로 끌어모으는 ‘킬힐’은 걷기에 무척 어렵고 따라서 넘어질 가능성도 크다. 세계적 유명 모델들까지 무대에서 넘어진 뒤 손에 들고 워킹을 마쳐야만 했을 정도다. 킬힐은 발목뿐만 아니라 장딴지 근육을 뭉치게 하고 짧아지게 만든다. 무릎에도 무리를 준다. 발바닥 근육을 혹사시켜 걸을 때 뒤꿈치가 아픈 족저근막염이 올 수도 있다. 엄지가 안쪽으로 휘어진 엄지발가락가쪽휨증도 걸릴 가능성이 크다.
플랫 슈즈도 마찬가지. 울퉁불퉁한 땅바닥의 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밑창이 얇아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발 안쪽의 아치가 지지되지 않아 피로감도 오기 쉽다. 신은 지 반나절이 지날 때쯤부터는 발볼과 발가락도 편하지 않다.
명품 킬힐이나 플랫 슈즈는 대부분 발이 길고 비교적 두께가 얇은 서양인들의 발에 맞게 디자인돼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대체로 발볼이 넓기 때문에 무턱대고 킬힐이나 플랫 슈즈를 신게 되면 아예 예쁜 구두를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발에 편한 구두를 신고 싶다면 굽은 3~4㎝ 정도가 이상적이다. 정 굽을 높이고 싶다면 6㎝까지는 무방하다. 발가락이 구두 안에서 편하게 쉴 수 있어야 한다. ‘효리 신발’로 유명해진 레저운동화처럼 발볼이 넓은 것이 정답에 가깝다. 컴포트화를 고를 때도 굽이 지나치게 물렁한 것은 피하도록 한다. 발목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도움말: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신정빈 박사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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